“예술은 세상속에 있는 어떤 것이지, 말해주는 텍스트나 논평이 아니다."
“스타일은 예술작품안의 결정원칙이요, 예술가가 자필로 서명한 의지다.”
수전 손택 - <해석에 반대한다.>
예술은 설명서가 아니고 논평도 아니다.
예술가가 작품에 서명해야할 것은 오로지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뿐이다.
비문학이라면 저자의 약력이 내용에 신빙성을 보증할 수 있는 수단이겠지만,
문학이, 예술이 저자의 약력으로 내용에 신뢰성을 보증한다는 건 무슨 속물들이나 할 발상임?
저자 약력 중 그 무엇이 작품의 예술성을 담보해줄 수 있겠음?
출신지가? 학(學)력이? 수상 경력이?
자신의 성별이나 성 정체성, 소득 분위가 작품의 예술성을 담보할 수 있겠음?
안 그래도 요즘 예술판에 사이비 당사자주의가 판을 치는데.
작품을 읽기 전에 저자가 여성인지 성소수자인지, 장애인인 지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인간들이 예술을 망치고 있음.
학(學)력이나 수상 경력도 마찬가지일 뿐임.
그러한 경향이 있다고 말할 순 있지만, 그것으로는 작품을 보증할 수 없고.
만약 소비자가 정 그것을 토대로 작품을 사야만 하겠다면 이미 정보는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잖음.
"이거 어디서 수상 받은 작품이야. 그러므로 좋은 작품이야."
라고 말하는 게 옳다면, 결국 작품의 권위와 예술성은 기성 문단과 심사위원들이 정한다는 걸 인정하는 꼴인데.
예술가가 작품에 밝혀할 것은 자신의 '스타일'밖에 없음.
약력을 비우든 채우든 개인의 자유고,
비어있는 것, 혹은 채워져 있는 것에서 주접이나 자의식 과잉을 느낄 순 있겠지만,
결코 약력은 예술의 신뢰성을 담보하지 못함.
예술분야에선 최소한의 신뢰성만 제공한다고 봐야지 - dc App
그래도 수상경력이나 자기가 쓴 작품들은 작가의 실력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지 않냐
그것이 '신뢰성을 보여준다고 믿는 것.'과 '신뢰성을 보여주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문장이지. 자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함. 약력이 그러한 공간이므로 비워두어선 안 된다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뿐임.
http://m.dcinside.com/board/reading/182704
- dc App
예술에 스타일밖에 없으면 그건 쓰레기임
그럼 스타일에 약력을 채워 넣으면 쓰레기가 아님?
그래도 쓰레기지
예술에 스타일만 채워 넣으라는 게 아니라, '작가가 서명할 것은 스타일 뿐'이라고 하는 거임. 다시 말해서 작가가 자신임을 알아 보도록 반드시 넣어야 하는 것이 스타일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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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시류에선 달리도 생각해 봐야함. 젊작상이 권위를 잃어가고, 좋은 작가를 독자가 아니라 문단과 출판사가 정하고 있는 세상에서, 특히 남성 작가는 성별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집단에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약력을 비워서 작품만으로 평가받고자 하는 작가가 '소개도 하지 않는 신뢰성 없는 작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임. 비우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그것이 예술의 신뢰성을 깎지는 못한다고 봄.
오늘날의 변화는 그러므로 긍정적임. 약력을 채워두는 작가보다 비워두는 작가가 오히려 더 신뢰성이 있고 믿을만 함. 황정은이 약력을 비우고 사진도 게제하지 않은 것과 신인 작가들이 자신의 얼굴, 학(學)력, 성별이나 정체성 젊작상 수상 경력 등을 기재하는 것을 비교해보셈. 약력이 정말 신뢰성을 보증하고 있음?
네 말도 일리가 있음. 나는 다만 이상문학상 사태와 젊은 작가상 사태를 겪으면서 황정은과 같은 기성 작가들이 약력을 비워내는 행위를 하나의 항의처럼 보고 있어서 이 흐름을 응원함. 수상 이력이 입문자들에게 가이드가 된다는 점을 이용해서 문단 권력이 기성 작가들을 수상집으로 길들이려 했고 그렇게 채운 약력으로 책을 판매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음.
성별이나 정체성은 정치적 목적으로 문학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가이드를 주고 출판사는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작가들을 검증도 하지 않고 무작정 수상 작가로 채워뒀음. 우리가 그렇게 보낸 2019년과 2020년을 생각하면 현재 상황에서 약력은 비워둘수록 오히려 입문자들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함.
근데 왜 화를 내
화를 내야 마땅한 말이니까.
근데 나도 너말에 반대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