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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이 걸어온 발자취와 개별적인 가치관에 따라, 같은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향은 예술에게도 적용되어, 모두가 같은 예술품들을 같은 상황에서 바라보더라도 와닿는 바 역시 천차만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관념 역시, 예술을 쉽사리 일반화할 수 없기 때문에 정의하기 매우 어려운 관념이다. 책의 제목인 해석에 반대한다는 말은 저런 굳건한 기류에 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수전 손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저렇게 갈릴 수밖에 없는 감상을 억지로 거슬러 규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예술의 날것을 선사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제목을 저렇게 정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상황, 교훈 등을 설명하기 위해 유용된 도구로써 소모된 예술이 아닌 예술 그 자체를 바라보고 감상하는 태도를 심어주기 위함이다.


 예로부터 예술은 유용한 도구로, 그 중에서도 현실 세계를 거의 유사하게 비춰주는 거울로 인식되었고 소모되었다. 고대 철학자인 플라톤의 경우 저런 수동적인 예술의 위치를 한 발자국 더 뒤로 떠밀어 예술을 현실 세계의 '모조품'이라고 표현했다. 애초 현실 세계조차 이상적인 세계의 모조품이라고 생각한 그의 가치관으로 바라본 예술은 모조품의 모조품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데아'라는 이상적인 세계에 가까운 것은 보다 이상적으로, 먼 것은 보다 부정적으로 본 그의 시선은 예술을 더 굴러 떨어질 곳조차 없는, 진실과는 가장 먼 거리에 있어 중요도가 가장 낮은 학문으로 내몰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저런 악담에 가까운 악평은 점점 줄어들었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술의 중요도 역시 점점 높아져 갔지만, 이 인식의 발전은 예술이 예술로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닌 자신들의 주장을 손쉽고 직관적으로 담을 수 있는 편리한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술은 도구라는 쓰임새로는 더할 나위 없이 편리했다. 창작자의 의견 - 현실 비판, 이상적인 사회 제시 등을 가감 없이 전달 가능하다는 특징만을 차지하고서라도, 예를 들어 교황이 서구의 어떤 왕보다 득세했던 시절 예술 작품들을 '신의 뜻'이라는 과한 허울을 씌워 다른 사람들에게 인지시키고 납득시키고자 사용되었던 것처럼 창작자 이외의 사람들이 예술이라는 분야가 타인을 설득하고 합리화시키기 용이하다는 필요에 의해 발전되기도 했을 정도로, 과거의 예술은 수동적이며 편리했다. 이렇듯 오랜 기간동안 예술의 내용에만 집착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이 약간 사그라든 현재까지도 예술에서 내용 찾기를 집착해 본질을 오독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마치 『금각사』 한 권만으로 미시마 유키오의 삶을 조명해보려 애쓰던 나처럼.


 이런 예술의 내용에 집착하는 시류는 앞서 언급한 편리함 때문에 앞으로도 사양길로 들어설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에 감성보다 이성이 앞서는 행태는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나는 이 글의 첫 문단에서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와닿는 바가 천차만별이라고 언급했다. 이 천차만별에는 가치관과 경험뿐만이 아닌, 세대 차이 역시 큰 지분을 가진다. 21세기의 사람이 20세기에 파시즘에 휩쓸린 독일의 광증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면죄부를 받기 위해 뇌물을 바치던 중세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100퍼센트의 이해는 힘들 것이다. 설사 이성으로는 이해하더라도, 그 시절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감성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노릇이다. 그리고 지식인들의 저러한 현상을 설명한 '해석'은, 대체로 이성의 이해는 도와줄 가능성이 크지만 감성의 이해는 오히려 멀어지게 하기도 한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해석이라는 행위는 감성적인 깨달음에는 좋은 영향을 주기 힘들다. 때론 저런 해석이 독자의 시선을 끌어 흥미를 돋구는 요소가 되긴 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흥미는 예술 작품 자체가 내뿜는 온전한 매력이 아닌 약간이나마 가공된 매력에 의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손택은 저러한 이성, 즉 내용에 대응되는 예술의 감성적 매력을 형식으로 규정해 제시한다. 극단적인 예로 나보코프의 『롤리타』, 카뮈의 『이방인』 등을 내용으로만 즐긴다면, 오늘날 칭송되는만큼의 고평가를 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형식을 완전히 배제한 채 내용만으로 저 둘 소설의 주인공들을 묘사하자면 추악한 소아성애자와 소시오패스 끼가 있는 살인자, 그 이상 그 이하도 될 수 없기 때문에 작품의 형식은 내용만큼이나, 어쩌면 내용 이상으로 예술을 논할 때 중요한 근간이다. 내용을 빼고는 그 작품을 묘사할 수 없듯이, 형식을 빼고도 작품을 묘사할 수는 없으며 둘은 작품의 평가에 있어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작품에서도 내용과 형식을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다. 적어도 그 작품이 예술성을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있다면...


 책의 나머지 내용은 이러한 손택의 관점에 의해 영화, 문학, 연극 등의 작품을 지지하기도, 비판하기도 하는 서평들이 주를 이룬다. 독자로서 약간 아쉬웠던 점은 손택이 작품을 예로 들면서 다른 작가의 인생을 규정한 평론이 몇 개 존재하지만, 그 평론들의 어조가 단정적이고 신랄함을 유지하고 있어 편안히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신랄함은 평론가로서의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이지만, 이 신랄함의 근간이 미국으로 번역된 '작품 몇 가지'라는 것이 걸린다. 작품 몇 가지로 사람의 인생을 논하기란 힘든 일이고, 논하더라도 작가의 의도와 관점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하물며 작품 전체를 다루는 것도 아닌 번역된 작품 몇 개만으로 작가의 성격을 단언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고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물론 손택은 나보다 문학적 소양이 뛰어나며 그녀가 영어로 읽은 작품 외에도 자료 수집을 통해 자신의 1차적인 생각을 수정하고 굳히는 작업을 했었을 것이 쉽게 짐작되기는 허나, 적어도 이 책에 자신이 읽었던 책 이외에서도 정보를 얻었다는 묘사는 매우 미약해 그녀가 지닌 자신감의 근거가 매우 부실해보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이 단점은 다른 단점으로도 발전된다. 그녀가 시대의 흐름에 따른 해석의 오독을 비판했지만, 미국으로 '번역된' 작품에 크게 의지하고 단호한 평론을 내렸기 때문에 언어 해석으로 인한 오독의 영향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치켜든다. 


 이러한 단점을 뒤로 하고, 그녀가 앞으로 예술을 바라보는 자세와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올바르게 지적했다는 사실은 반박하기 힘들다. 시대가 나아가면서 점점 분야들은 세분화되었는데 과학과 인문 역시 이 흐름에 의해 분리되었다. 이 분리 이후 문학을 제외한 영화, 미술, 희극, 공연 등은 예술의 저변을 확대해 캔버스에서 바닥이나 건물로, 붓과 물감에서 쓰레기나 운동화 등 생필품으로, 또는 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인 관객의 시야를 가리는 공연 등 특이한 시도를 통해 폭 넓은 관점에서의 예술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에 비해 문학은, 저런 기존의 틀을 깨지 못해 예술의 대상 범주가 늘어났다고는 보기 힘들고 늘리기도 힘들기 때문에, 다른 예술들보다 더 앞선 위치에 있는 '내용'을 도덕성이나 신실함을 내려놓는 것이 문학이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내용의 부담감은 줄이고, 스타일의 분석과 확장(마치 다른 예술들이 저변을 확대했듯)으로 감수성을 내용보다 중요시하는 것이 예술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이며, 응당 나아가야 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스타일의 확장은 감수성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즉 과거 도외시하던 즉흥적 사고와 얽매이지 않는 행동, 무신론자들 역시 감수성이라고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그것은 문학이라는 예술이 점점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P.S: 이 책에 나온 평론들은 독자가 문학계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내용을 전개했기 때문에, 나처럼 배경 지식이 빈약한 사람들은 이 책의 목차격인 '스타일에 대해'까지만 읽고 마지막의 '하나의 문화와 새로운 감수성'을 읽은 후 앞으로 돌아가 평론들을 읽기를 권장한다. 뒤의 내용이 좀 더 직관적이고, 저 부분을 읽지 않으면 배경 지식이 없는 한 손택의 가치관을 미리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뒤에껄 먼저 읽었으면 고생을 좀 덜했을텐데라는 생각이 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