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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나스의 타자철학/윤대선 지음

◆ 만약 내가 레비나스와 대화할 수 있다면, 묻고 싶은 게 여러가지 있는데, 그 중에 1순위는 '어째서 당신은 타자를 지극히 높다고 하셨습니까?'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레비나스가 주체와 타자 사이의 비대칭적 관계(즉, 타자의 높아짐과 주체의 종됨)를 설정하는 것이 단순히 어떤 평화를 위한 '방법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레비나스는 마치 '타자의 높음'은 분명한 현실이라는 듯이 말한다. 타자가 지극히 높은 자라면, 즉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라면, 우리가 그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은 신에 대한 경외와 사랑의 표현이리라. 레비나스는 타자와 신을 연결시키면서 '유일신은 여럿'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가? 그는 어째서 타자(낯선 이)를 신의 위치에 올려놓는 것일까?

◆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는 레비나스의 종교적 배경을 탐색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레비나스의 종교적 배경이라 함은 곧 유대교를 가리킨다. 레비나스의 타자 중심적인 윤리학도 실은 유대교의 지적, 영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사실 유대인의 전통에서 시작된 헤브라이즘은 헬레니즘과 함께 서양 문화를 이루는 두 축 가운데 하나이다. 성경이 서양 문화에서 가지는 지위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레비나스의 철학이 서양 철학에 속한다고 해서 단순히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헬레니즘 전통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헤브라이즘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서, 레비나스의 철학적 기획은 사실상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해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성경의 언어를 철학의 언어로 옮겨내는 것이다.

◆ '어째서 타자는 지극히 높은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레비나스의 종교적 입장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한다. 레비나스의 형이상학적 윤리관도 토라(신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율법, 작게는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5권)에 나타난 윤리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성경은 신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타자가 곧 신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레비나스는 어째서 '타자성'을 신성과 연결시키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일단 더 읽어봐야 될 것 같다.

모든 공해가 ㅡ 불공평하고, 치욕적이고, 불편한 것들 모두 ㅡ 정화되리라. 모든 더러운 색들은 정화되리라. 우리는 순백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