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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좋은 70대 노작가가 삶의 말미에서 모든것이 허무했나보다.

허물어지는 문명과 허물어지는 인생의 흥망성쇠에 깊은 고찰이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사실상 작품에 "흥"과 "성"은 없다. 대체로 "망"과 "쇠"가 지배적이다.


전쟁을 소재로 처연하게 문장을 조합하여 시적인 느낌이 나고 동양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전작들(남한산성이나 칼의 노래같은)과 분위기는 비슷하다

다만, 이번 작품은 인간의 근원으로 깊이 파고들어 맨 밑바닥의 원시성에 집중했다

전반에 미개와 야만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천박하거나 저급한 느낌은 아니다, 김훈작가가 그런 느낌을 주는 문장을 쓰는 사람도 아니니까.

되려 미개와 야만의 시절에 있었을 법한, 그래서 어울리게 동반되는 아득한 신비스러움이 강하다,

그저 짐승일 뿐인 말이나 무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나 결국은 피조물, 동물인 셈으로,

말과 인간의 공통적인 원시성이 교차로 묘사되는데 그 원시성은 둘다에 대해 숭고한 원시성이다

물, 불, 바람, 피, 교접, 흘레, 똥, 오줌.

생명의 근원이자 생명의 재료이며 생명의 흔적인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이런 물질들로 말(馬)과 인간뿐인 소설속 생물의 감정, 논리, 사상, 상황, 판단 등의 모든것을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너무나 조용하다.

등장인물의 첫 말은 59페이지에 가서야 나오며

이 또한 주고받는 대화가 아닌 독백이다.


음악소리도 죽이고 말소리도 없는 공기소리로만 채워진, 간혹 문득 냉장고 돌아가는 전기소음만 들릴 뿐인 조용한 집에서, 창문열어놓 옷은 따스히 입고 (작품의 서늘함이 춥다) 창밖을 간간이 바라보며 호흡을 잠잠히 명상하듯 읽으면 평지위에 아무것도 세워져 있지 않은 선사시대 어느 유사문명의 한가운데에 같이 서있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좋은 작품이다.


나는 두번읽고 세번읽을 예정이다.

작품의 마지막 문구까지, 맨 끝장 작가의 퇴고소감까지 흡입력이 강하다.

고즈넉하고 외롭고 쓸쓸한 분위기를 즐길줄 아는 게이들에게는 강추한다.

하지만 극적인 플롯을 추구하는 게이라면 중간에 책을 덮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