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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셀린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며 20세기 불문학의 걸작이라 평가받는 '밤 끝으로의 여행'이 재출간됐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셀린의 소설은 현대인이라면 한 번 쯤 꼭 읽어볼 만한 소설임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철학적인 의미에서라기 보단 너무나 현대사회의 깊이 내재된 병폐를 자신의 끝없는 비루함과 너절한 남루함을 통해 가감없이 토해내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건 한편으론 예언자스럽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코 고상하고 예지적이지 않은 너무나 무식하고 저급하며 열등하지만 너무나도 모든 것에 솔직한..


작가들 중에서도 소위 작가들의 작가라 불리는 부류가 있습니다.

무슨 기준일까 생각해보면 한 가지 분명한 게 기존의 문법이나 관습을 전혀 답습하지 않고 진퇴양난이라 할 만큼 낯설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미지의 영역을 철저히 외골수적으로 고수하며 파고드는 은둔형 작가들이라 할지.

쉬운 예로 의사로 치면 개업의가 아닌 연구의 같은. 그것도 혼자서..


20세기 현대서구문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프란츠 카프카도 그러한 유형의 잘 알려진 대표적 작가라 할 수 있죠.

그리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빈민촌의 의사이기도 했던 프랑스 작가 루이-페르디낭 셀린도 마찬가지라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밤의 끝까지 여행을'은 지독히도 비루한 염세주의가 골수까지 장악한 작가의 시선은 제쳐두고라도 서사는 문학이 가진 기존의 모든 작위적 도식을 다 거부하려는 듯 도데체 아무 드라마도 없이 극적 전개도 전무하고 그렇다고 수기형식의 문학처럼 내면의 점진적인 고양에도 전혀 관심없으며, 오로지 제목 그대로 인간과 세상 그리고 자기자신의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살려 용쓰는 인생의 지긋지긋한 무상함에 대해 썩은 비소와 늪 같은 암울함으로만 내내 일관합니다.


그럴려면은 분량이라도 좀 적던지..


암튼 그렇듯 작가의 단순한 편년체적 개인 심상의 여정을 아무런 의미도 역경도 드라마와 갈등조차 하나 없이 반복 또 반복해갈 뿐인데 이것이 점점 갈 수록 화자에 그대로 동화되어가요.


그러면서 삶을 빙자해 잊어버렸거나 덮어두었던 내 가식과 위선의 실체가 불쾌한 비린내를 풍기며 엄습합니다. 


끝없는 삶의 반복만큼 끝없이 형성되는 인생의 차이가 드라마의 별 극적 기교나 장치 따위가 전혀 없이도 아주 현실적으로 절감되면서 책을 덮고도 책에 펼쳐진 무수한 반복의 횟수만큼 무한히 확장되어버린 혼란한 차이의 세계관 속에 나 홀로 우두커니 처하여 텅 빈 동공 속 실존을 절감케 하는 마력을 지닌 소설입니다.

그 텅 빈 동공 또한 마냥 유치한 허무주의자의 입에 발린 염세관이 아닌 아주 생생한 실재(이야기)로써 나타내며.


읽기가 참 어려운 게 말이 어렵거나 재미가 없어 그렇다기 보다 이 소설은 애초 독자에게 남들에게 이걸 읽어야할 아무런 이유를 제시를 안합니다. 관심도 없고.


그렇듯 아무 캐릭터도 극적 전개도 없이 순전히 자기자신만을 통해 세상과의 부조리로 어그러지고 불의에 물들어버린 비관적 세계관과 염세적 자조를 마치 사건 진실을 쫓는 수사관의 고독한 정의감 혹은 고약한 괴벽 마냥 인간 심리의 추리극을 펼쳐내며 투철하게 낯낯이 밝혀내고 파고듭니다.


저는 이번에 새로 출간된 이형식 번역이 아닌 불문학자 민희식 교수의 번역으로 읽었는데, 이건 거의 빙의가 아닌가싶을 정도로 굉장한 수준의 메소드 번역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새로운 한글 문체라 해야될 정도로.

동번역가의 마르셀 프루스트 번역은 불문학 전공자들에게 최악의 번역으로 혹평을 받는다는데, 아무래도 번역가가 전문 작가는 아니니 자신의 기질과 성향이 작품에 얼마나 부합되느냐에 따라 번역 기복이 생길 수 밖에 없겠죠.


여담으로 저 민희식 교수의 번역에 고 박경리 작가께서 큰 감명을 받아 자신의 작품 토지의 번역을 직접 부탁드렸다하죠. 


'밤 끝으로의 여행'이 씌여진 시기는 1차대전이 치러지고 난 뒤 인간사회가 지난 고등문명에 감춰져있던 모든 저등한 본성들이 전쟁을 통해 발가벗겨지고 드러나면서 반성 없이 전쟁과 개발과 경쟁에만 호도되어가는 사회가 인간성을 상실하고 개개의 인간을 사물화시켜 전혀 존중하지 않게 된 세태 속에서, 한 배척 받고 일그러진 가난한 인격이 종교도 이상도 이념도 사상도 죄다 말라비틀어져버린 세상 탓에 어디에도 의지하지 못한 체 그저 고해성사를 자기 삶과 자기 존재를 통해 스스로 토해냅니다.


그 토악질은 곧 세상의 오물들이 모여 흘러든 뒷켠의 썩은 하수구가 세상을 향해 다시 자조와 비소의 역류로 내뱉어낸 이기적 문명과 사회의 과부하적 병폐에 다름 아닐 겁니다.


혹자는 셀린의 문학적 동기와 창작적 토대를 가난으로 상정하기도 하는데(실제로도 그는 공공연히 자신은 아파트 살려고 글쓴다했죠), 그런 의미로 너무나 협소하고 편향된 시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