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나치가 오늘날 제일 유명하지만,
사실 흔히 말하는 '파시즘'의 원조는 이탈리아와 무솔리니였다.
그런데 왜 하필 이탈리아가 원조였을까?
"파시즘 줘."
왜냐하면 이탈리아엔 한 원시모더니스트이자, 파시즘의 진정한 트루 파더가 있었다.
바로 1863년 이탈리아 남부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다.
사실 단눈치오 본인은 상징주의와 데카당에 큰 영향을 받으며 자연주의를 경멸하며 대충 이태리 미래주의자들의 선배격이긴 하지만
아무튼 원시-모더니스트라고 하자.
구질구질한 자연주의를 경멸한 만큼 그는 모든 걸 낭망화했고, 스스소 영웅심리에 취하여 영웅놀이에 심취했다.
그는 그 당시 이태리 시문단을 이끌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카르두치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시인으로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고,
단편이나 장편, 희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활약을 펼치며 유럽의 중심인사가 되어간다.
앞서 말했듯 그는 영웅놀이를 즐겼고, 그를 싫어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런 이들조차 이 관종 같은 작가에게 관심을 끊을 수 없었을 정도로, 이 시대 유럽과 이탈리아 예술계의 중심이었다.
이 당시 그의 이탈리아에서의 위상은 단눈치오를 그저 <시인>으로 부를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대충 탐미적이고 니체에 영향 받은 데카당적인 시 썼다는 내용)
<쾌락>, <무고한 존재> 같은 국내에도 소개된 장편들을 비롯하여 <죽음의 승리> 등 이 시절 뛰어난 성과를 거둔 장편들도 많이 썼다.
그러나 태생이 영웅적 관종을 꿈꾸던 그는 이탈리아 국회의원으로 나서는 등 정치판에도 기웃거린다.
그리고 1차 대전이 터졌다.
단눈치오는 원시파시스트답게, 그리고 이 시기 많은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참전을 부르짖었다.
그는 직접 비행기 편대를 이끌고 빈에서 선전물을 뿌리는 등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전하고, 또 젊은이들에게 전쟁에 참여할 것을 외쳤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글만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사교계와 이탈리아의 명사였고, 말빨도 좋았기에 모든 이들이 그의 연설에 열광했다.
그리고 1차대전이 끝났다.
이탈리아는 승전국이 되었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 잘 아는 이들이라면 이때 이탈리아가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 거다.
1차 대전에 승전은 했지만, 얻은 것은 쥐꼬딱지만했다.
이탈리아 내부에서조차 협상조까치하네! 소리가 나오는 와중, 단눈치오는 파시즘의 첫 시작을 연다.
1918년 2월 군복을 입은 단눈치오는 자신을 따르는 수천 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1차 대전의 결과물에 반대하며, 이탈리아가 수복하기를 원하던 도시 중 하나였단 피우메를 무단으로 점거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두체'라고 칭하며 피우메를 하나의 독립된 도시처럼 다스리기 시작한다.
동일한 유니폼을 입은 수천 명의 무단 행진 및 점거, 두체........
수여년 후, 무솔리니와 파시즘의 이름으로 반복될, 트루 원시파시즘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단눈치오가 피우메를 점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탈리아 정부조차 피우메를 봉쇄했고, 단눈치오의 대충 방종적인 지배로 피우메는 1년 동안 개판이 되버린 후, 무단 점거는 해산당한다.
이후 단눈치오는 다시 이탈리아의 자택으로 돌아와 조용히 글을 쓰며 세월을 보낸다.
중간에 테러로 의심받는 가스 투척 사건을 겪거나, 비행기 사고로 몇 개월 동안 붕대를 감으며 생활하며 그 경험을 가지고 <노투르노>를 작성하는 등의 시간을 보내지만 말 그대로 뒷방 늙은이 퇴물 신세였다.
그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젊은 작가들의 미래주의의 이름을 외치며 등장하거나 말거나
단눈치오는 그렇게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때 그가 나타났다.
"단눈치오 씨 받으세요!"
"고맙네 베니토 군, 다시 '두체' 단눈치오로 돌아갈 시간이다."
1922년, 단눈치오의 사상과 행동에 큰 영향을 받은 베니토 무솔리니가 검은 셔츠단과 함께 로마로 입성한다.
원시 파시스트 단눈치오는 다시 한 번 두체 단눈치오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물론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눈치오 본인이 직접적으로 무솔리니와 협력하진 않았지만,
사실 단눈치오 본인은 내심 본인이 무솔리니를 컨트롤 할 거란 상상을 하며 알게 모르게 협력을 하려고 했고,
그걸 무솔리니가 단눈치오의 이미지와 위상만을 이용하며 단물만 쏙 빨아먹었다는 것이 오늘날 학계의 정설이다.
그렇게 애기 파시스트 단눈치오는 1938년 생을 마감한다.
살아생전 그의 위상과 달리, 오늘날엔 아무래도 원시 파시스트였다는 점 등으로 인해 위상이 많이 죽었긴 하지만
오늘날 한국 서점에서도 우리는 애기 파시스트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단눈치오 평전도 번역되었으니 관심 있으면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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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번역은 없나 ㅠ
역시 머머리
아래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이거는 뭐임?
작성자가 시리즈로 써온 글들
파시스트인건 첨알았네
오오
적국 수도로 날아가서 폭탄이 아니라 시를 뿌리신 분... 그립습니다ㅠㅠ
무고한 존재던가 저사람이 쓴거 재밌게 읽었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