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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전문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답게 이 책은 아쿠타가와의 수많은 단편들이 실려 있다. 무려 17편에 달하는 단편들이 실려있어 짬이 나거나 할 때 잠깐 읽기 아주 좋다. 고된 시험공부의 낙이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이름은 유명하다. 일본 굴지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의 기원이기도하고, 그의 대표작 라쇼몽의 독특한 이름이나 다자이 오사무의 일화 등 여러 요소로 인해 아쿠타가와의 이름은 일문학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번 쯤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절제'는 이 시기 일문학 작가들의 하나의 공통점이다. 절제되면서 세련된 나쓰메 소세키의 문체, 절제되면서 나른한 다자이 오사무의 문체, 절제되면서 긴장감있는 시가 나오야의 문체... 물론 미시마 유키오 같이 파격적인 문체의 작가도 있었지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역시 이런 절제된 문체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절제된 문장 사이사이로 어렴풋이 비쳐 들어오는 슬픈 분위기가 바로 그의 작품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옅은 푸른색 필터를 입힌것 마냥 우울한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 자연스레 창 밖에는 비가 오고 있을 것만 같다고나 할까. 작가 본인이 평생 시달렸을 심적 고통이 투영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유년기 시절 어머니의 발광으로 시작된 그의 우울의 역사의 자국. 그가 유서에 적은 "그저 막연한 불안(ただぼんやりした不安)"이 무슨 뜻인지 이 책으로 약간이나마 다가갈 수 있었다.

모든 단편들은 각자 필자에게 그들만의 무언가를 전해주었지만, 그래도 제일 기억에 남는 단편들을 꼽으라면 <라쇼몽>, <지옥변>, <남경의 그리스도>를 꼽고 싶다. 

<라쇼몽>은 나생문, 즉 나성이라는 성에 있는 문을 말한다. 그곳은 혼란한 당시의 시대에서 빈민들이 이르는 마지막 장소이다. 바닥부터 2층까지 아사하거나 병사한 시체들로 가득하며, 누구 하나 그곳을 지나가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장 비를 피할 곳이 없어 나생문에 간신히 몸을 의탁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삶에 쫓겨 극한의 상황에 이른 인간의 모습을 담담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처럼 이곳으로 내몰린 한 노파를 발견한다. 노파는 여자들의 시체에서 머리카락을 뽑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뽑히는 여자는 생전에 병사들에게 말린 뱀고기를 말린 생선이라고 속여 팔아치우는 것으로 먹고살던 여성이었다. 결국 노파나 여성이나 둘 다 빈민이었으며, 이 나생문으로 모인 비슷한 처지였지만 한 쪽은 죽고 한 쪽은 살았다는 간단한 차이로 머리카락까지 뽑히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 노파의 옷을 주인공이 빼앗아가면서 작품은 끝난다. 그는 노파가 자신이 왜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 것을 듣고 말한다. "그럼, 내가 다 벗겨가도 원망하지 말어. 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몸이니까." 각박한 삶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번에는 노파가 머리카락을 뽑히는 여성의 시체처럼 빼앗기는 쪽이 된 것이다. 결국 이것도 하나의 순환, 작품의 이름이 왜 라쇼몽(羅生門)인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비록 길이는 짧지만,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지옥변>은 필자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단연 돋보인 것이 두가지 있다. 주인공격의 인물 미친 화가 요시히데에 대한 소름돋는 묘사와, 자신의 딸이 수레에 실려 산채로 태워지는 것을 보는 아버지와 구경꾼들이라는 잔인하고 설화 같은 이야기를 무서우면서도 장면 자체는 아름답게 느껴지게 만든 그 비틀림이다. 요시히데는 정말로 '미쳤다'. 예술에 미친 사람이다. 문장 속,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그의 광기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고 그런 인물이 극진히 아끼는 딸이 불타 죽으면서 작품 내에서 축적되어오던 긴장감은, 순식간에 불타는 수레의 아름다운 광경으로 변모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환상적인 면모는 없다. 처절하고 비참한 아름다움이다. 단순히 글만으로 이 모든 서사가 이 짧은 단편 안에 훌륭하게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남경의 그리스도>는 평소 필자가 생각하던 종교관과 비슷해서 기억에 남았다. 악성 매독을 앓던 중국의 한 창녀가 어느 낯선 외국인과 관계한 후 병이 깨끗하게 낫는 이야기이다. 창녀는 그 외국인을 예수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에 현실과 창녀의 꿈이 섞여있어 과연 그 외국인이 정말로 예수인지, 아니면 그저 떠돌이 외국인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리고 필자는 바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로 그 외국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창녀가 평소에도 진실히 믿던 예수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종교는 그저 '믿는 것'. 굳이 그 사이로 복잡한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은 자신 나름의 신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면 된것이다.

솔직히 필자는 류노스케의 단편들에 살짝 불호를 느낀것이, 많은 단편들이 괴담 같은 마무리로 끝났기 때문이다. 열린 결말로 으스스한 분위기와 섬뜩한 기분을 심화시키는 것 자체는 좋은 방법이지만, 아무래도 닫힌 결말, 즉 무언가 결론이 나고 사건이 끝나는 결말을 선호하는 필자에게 약간의 불만을 느끼게 했다. 그래도 전부 재미있는 단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