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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는 꽤 오래됐는데 아직 한글로 번역이 안되어서 아쉬운 마음에 소개해본다. 작가는 카스텐 옌슨(Carsten Jensen)이라는 덴마크 Politiken 신문의 문학 평론가이자 기자로 활동했었음.


제일 유명한 작품은 덴마크어로는 2006년에 출판하고, 영어로는 2011년에 번역이 된 "We, the Drowned"라는 제목의 소설이다. 덴마크어는 잘 모르겠지만 영어로 번역된 저 제목이 어떤 느낌인지 알려면 미국 헌법 서문 설명이 필요함. "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로 시작하는 이 서문은 직역하면 "우리, 미합중국 시민들은..." 이라는 의미인데, 오바마 행정부에서 만들었던 신문고 사이트 이름이 "We the People"일 정도로 상징적인 문구임. 즉, "We, the Drowned" 하면, "우리, 익사자들은..." 하면서 뭔가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문장의 주어가 시작되고 동사가 오기 전에 끝나는 인상.


덴마크의 마스탈(Marstal)이라는 덴마크의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19세기 중반의 슐레스비히 전쟁부터 시작해서 2차 대전 종전까지를 다루고 있고, 라우리츠 매드슨, 그의 아들 알버트 매드슨, 그리고 알버트의 양자인 크누드 에릭으로 이어지는 3대 선원 가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항구 도시가 근대에서 현대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덴마크의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한 백년의 고독". 백년의 고독도 부엔디아 가문의 아들과 딸들의 가계도를 따라가면서도, 그들이 살고 있는 마콘도 자체가 하나의 주인공인데, 거기서 영감을 많이 받은듯.


실제로 "우리, 익사자들은"도 초반에는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시작하긴 하는데, 시대가 현대로 넘어오면서 서서히 마술적 요소가 사라져가는 느낌이 아주 일품이다. 근데 내가 이 소설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소설의 많은 부분이 1인칭 복수 주어 "우리"로 서술된다는 사실임. 예를 들면 "우리는 헤르만 프란드센이 살인자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정말 살인자였다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바로 성급함." 이런 식으로 마을 전체의 집단 의식 차원의 서술을 하다가도, 알버트가 마을을 떠나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전세계를 도는 부분에서는 3인칭 단수, 그러다가 아예 알버트의 모험담을 이야기하기 위해 1인칭 단수로 바꾸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서술시점 교체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부드러워서 읽다가 막 박수치고 싶어짐.


아마 저 1인칭 복수 주어가 제목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래도 항구 도시기 때문에 수많은 남자들이 바다로 나가고, 대부분 익사해서 죽는데, 살았든 죽었든 "마스탈 남자들"이라는 집단 의식에 속해서 주인공들의 모험과 세계의 변화를 조망하는 관점이 몹시 특이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좋아해서 알버트의 모험까지가 재미있고 점점 현대로 넘어오면서 세상에 신비로운 것이 사라지는 구나 싶어서 우울해졌음. 그런데 또 그게 작가의 의도 같기도 하고...


아무튼 영어 읽을 줄 아는 독자들에게는 강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