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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초엽 단편집에 대한 문학적 비평이 아닌(그건 똥글로나마 이미 했음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181557),
용승한(이후 내 마음대로 용용군이라 하겠음. 쓸 때 귀찮고 기억안나서 이렇게 썼는데 수정하기 귀찮음)의 <김초엽을 해명하기>라는 글(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88178)의 저열함에 대한 비판임.
# 다시 보니 중언부언한 표현이 많아서 퇴고 좀 하겠음. 논증의 주요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으니 이미 읽은 사람은 재독할 필요는 없음.
# 소제목이 아닌데 굵은 글씨인 건 퇴고하면서 추가한 내용임.
1. 언어적 지록위마의 잔기술
<김초엽을 해명하기>를 스크롤 해보자. 4개의 장으로 구성된 글은 큐빅처럼 조잡하게 빛나며 독자의 눈을 속이는 인용, 고유명사, 관념어를 빼면 거의 동일한 초라하고 앙상한 구조야.
일단 가장 앞 문단에선 작품 속 발단부의 아이디어, 인물 및 세계관의 설정을 따와서 (어떤 경우에도 이 인용이 문장 단위를 넘는 경우는 없었음. 한 장의 글도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한 문단을 넘는 경우도 없었음) 그 소재에서 피상적으로 연상한 뻔한 당위적 담론을 가져와, 더이상 작품과의 유기적 연관성이나 주제의식의 공통점을 찾으려는 노력 없이, 끌어온 외부 레퍼런스만 연결지어, 김초엽의 작품이 그 담론을 담은 훌륭한 소설이라는 결론을 내리더군.
이런 식의 비평이 아쉬운 이유는, 우선 이건 예술에 대한 비평법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야. 단편소설은 예술적 유기적 완성체야. 작품의 의도, 작가의 사상, 작가의 인터뷰에서의 발언, 별도로 쓴 에세이 속 문장, 혹은 작품의 발단부 속 문장이나 세계관, 인물 설정은 (벽돌의 퀄리티와 건축자의 선의가 건축물의 퀄리티 전체와 아무런 관계가 없듯) 소설 전체의 문학적 완성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소설 비평의 기준은 위에 쓴 작가의 애초의 의도가 소설 속에 얼마나 이야기답게, 문학적 예술적으로 형상화되었는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김초엽의 시도와 의도가 가치 있다는 점엔 나도 동의해. 그런데 좋은 의도만으로 칭찬받는 것은 영유아기 시절이면 족하잖아. 부모 먹이겠다는 천사 같은 의도로 혼자 라면을 끓이려는 아이의 행위는, 되도록 일찍 저지당하거나 훈육해야 하는 거야. 그게 애를 위한 최선이고. 만약 그걸 저지하지 못해 애가 라면을 끓여왔다면, ”쓰담쓰담 우리 애기 의도가 참 좋았어요, 궁디팡팡~“ 해선 안 돼. 단단히 주의를 주고, 네가 왜 지금은 라면을 끓여선 안 되는지, 혹은 맛있게 라면을 끓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분히 알려주는 게 사람, 혹은 평론가가 해야 할 일 아닐까?
또한 이런 식의 비평이 역겨운 이유는 만약 내 대가리가 깨져서 저 주장에 동의한다 쳐도 결론은 “김초엽의 작품은 문학이자 예술로서 이 주제의식을 성공적으로 담고 있다”가 아닌, “평론가인 나는 우매한 너희와 다르게 이 작품을 빌미로 이런 거창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담론을 할 수 있다”가 될 뿐이라는 거야. 앙상한 알몸 같은 자의식. 으악 내 눈!
2. 주례사 중 자위행위라는 꼴불견
그래서 저 글은 조금 섣부르게 말한다면 우리나라의 문학비평이 처한 가장 깊고 끔찍한, 9옥 밑바닥을 흐르는 삼천포의 바닥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증표라고 생각해.
우리나라 문학비평은 작품을 비평하고 옥석을 가리고 늘 느적대기 마련인 당대성에 함몰된 독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작품의 숨은 가치를 드러내는 의무을 포기한 지 오래야. 나도 신경 끊은 지 오래되서 최근 트렌드를 몰랐는데 이 글로 미루어 짐작하면, 최근 비평은 이제 ‘주례사 비평’이라 멸칭되듯 출판되는 모든 한국문학의 뒷장에 국어국문학 석박 기간 중 비싸게 사 모은 고매한 비평의 단어들을 나열한 원고로 몇 푼 수고비를 벌기 위한 목불인견의 행위예술적 단계에서도 벗어난 것 같아.
이 처참한 눈물의 애널 리밍쇼에 가까운 주례사 비평은 용용군의 글이 보여주는 전락에 비하면 차라리 봐줄 만한 수준이니깐. 왜냐, 이제 비평은 주례사 -그나마 답 없어 보이는 신랑 신부도 일단 덕담으로 후려쳐 식을 끝마치게 해 출판사의 본전(양가의 축의금)만큼은 회수하게 하려는 내부자로서의 선의- 가 아닌, 스스로가 나불댄 텍스트에 오르가즘을 느낀 나머지 주례석에 선 채로 ‘아 나는 사정했다’를 시전, 남의 결혼식을 순식간에 나르시시즘적 자위의 무대로 변모시키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야.
난 이 글을 보고 두 번 빡쳤어. 일단 빡친 첫 번째 포인트는 다음과 같아. 문학은 평론이나 논문, 혹은 ‘위대한 평론가인 나처럼 레퍼런스와 참고 문헌을 나열할 수 없는 우매한 디시의 병신들을 까내리기 위한 글’을 위해 수동적으로 타자화되어 토막쳐저 유린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야. 아니어야 해.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못 쓴 작품도 작품으로서만 까여야 해. 오로지 비평하는 사람의 최종 결론에 끼워 맞추기 위한 도끼질에 문장 단위로 쪼개져 한심한 (차마 지적이라곤 못쓰겠다) 자뻑적 딸딸이를 위해 쓰여서는 안되는 거라고 생각해. 어찌되었든 작품은 비평 당시에도 비평 후에도 그 자체로 나름의 설득력과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자 예술로 자존하는 것처럼 다뤄져야 해. 그리고 작가는 이런 자기완결적 완성도와 생명력을 가진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비평가는 결국 작가들을 이곳까지 이르도록, 독자들은 작품을 이렇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만 비평해야 하는 거야.
3. 인 사이보그 블러드
두 번째로 빡쳤던 포인트는 위에서 말한 도착적인 의도를 위해 가져다 붙인 담론과 이 글의 결론이 ‘장애인’이란 점이었어.
독붕이 너희들이 김초엽의 단편집에서 ‘장애’라는 키워드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존’이란 주제의식을 읽어내지 못한 건 너희가 무식하거나 책을 대충 읽었기 때문이 아니야. 그런 건 원래 없었기 때문이야. 혹은 그 주제가 치킨 속의 벼슬 붉은 대가리마냥 예술적으로 제대로 형상화되지 못했기 때문이야. 당장 용용군의 글 안에도, 김초엽의 작품을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타자화를 비판하고 그들과의 공생을 모색하는 텍스트로 해석한 것은 1/4 분량에 불과해. 그런데도 용용군의 글의 마지막 두 문단을 다시 한 번 읽어봐. 위에 쓴 어설픈 잔기술 끝에, 장애인을 포함한 온갖 사회적 약자를 닥치는 데로 그러모은 후 내린 결론은 ‘김초엽은 장애의 문제를 가장 예리하고 정확하게 다루고 있으며’, ‘당신도 김초엽을 이렇게 느꼈으면 좋겠다’임. 나는 이 부분에서 아까보다 더 많이 화가 났어.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내가 예전에 졸문으로 리뷰한 적도 있는 <당신들의 천국>에는 소록도의 한센인들의 이야기가 나와. 실제 역사에서도 소록도의 한센인들은 일제 강점기엔 천황의 태양처럼 빛나는 내선일체의 햇살이 그들 같은 비비비주류에게도 미침을 보여주려는 의도에 이용 당했어. 군사독재 시절엔 역시 독재정권의 복지와 개발의 혜택이 그들에게까지 닿았음을 증명하려는 도구로 이용당했고. 시발, 좀 그만하면 안 될까? 난 이런 타자화와 도구화가 너무 끔찍해. 비평, 혹은 반론을 위해 작품은 물론 맥락없음을 스스로도 아는 장애인 문제까지 유용하는 이 뻔뻔함은, 자신의 성적 쾌락을 위해 여고생의 양말과 속옷부터 몰카, 나아가 출근의 피로에 찌부러진 여성의 육체를 유용하는 ‘한국남자’들의 ‘한국남자스러운’ 행태만큼이나 더 역겹게 느껴져.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난 그 이유가 용용군이 대변하려 했던 것은 김초엽의 문학이 아닌, 김초엽을 고평가하는 SNS 및 특정 진영의 여론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봐. 그래서 그의 글의 절대 다수 분량은, 김초엽의 작품이 왜 ‘문학적으로 의미가 있는가’가 아닌, 김초엽의 ‘소설의 의도와 그녀와 지지자들의 평소 사상이 얼마나 진보적이고 PC한 것인가’를 보여주는데 할애되었던 거야. 이 얼마나 고결한 목표인가. 그러니 장애인들의 문제와 사회적 소수자들도 가져다 쓰자. 우린 그래도 돼. 까고 자빠졌네. 문득,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누군가의 머가리에 칸트 정언명령이 깊숙이 박힐 때까지 <실천이성비판> 양장 완역판으로 뚝배기를 다소 거칠게 만져드리고 싶다는 충동이 솟는다.
4. 독붕이와 겉절이 작가들이 공생하는 미래를 위하여
우선 독붕이들아, 같잖은 엘리트주의, 레퍼런스 남용으로 범벅된 좆만도 못한 글에 속지 마. 주체적으로 읽고 생각해. 빛나고 무거워 보이는 관념어와 비평용어에 쫄지말고 그 보석연하는 큐빅을 억지로 연결시킨 허접한 논리적 사슬이 얼마나 단단한지 직접 시험해보는 버릇을 들여. 문학도 그렇게 읽어봐. 우린 그거면 돼. 벌거벗은 권위와 권력과 여론으로 추켜 세워진 임금님들에겐 “ㅂㅅㅋㅋㅋㅋㅋㅋㅋㅋ 너 새끼 지금 벌거벗고 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해. 모두가 벌거벗었다고 비웃지만 사실 옷을 입고 있는 임금님들의 명예는 나 혼자서라도 지켜드려야 해. 비평가 병신들은 이거 못해. 그리고 사실 그게 우리같은 애들이 지금 세상과 문단에 기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야. 이런 게 귀찮으면 제대로 된 안목이 생길 때까진 겉절이는 무조건 걸러. 나도 한 10년 그렇게 살았는데 독서의 질과 만족도는 존나 높아졌어.
그리고 비평가들아, 딸딸이는 집에서 혼자 쳐라. 뒤진다, 진짜.
마지막으로 겉절이 작가들아, 당신들의 선의와 문제의식에는 당연히 공감해. 그럼 그걸 외쳐. 때론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외침이라도 그 입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아. 그런데 다만 그걸 예술로 담으려 할 땐 조심하고 주의해. 가방끈 짧은 나는 예술을 ‘주관적 인식과 존재로서의 경험이란 재료를 정련된 기교로 구조화해 보편적 미적 경험을 하게 하는 무엇으로까지 승화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해. 이 정의에 오류가 있다면 말해줘. 만약 공감한다면, 혹은 당신들의 경험과 주장과 정체성을 ‘예술’의 ‘재료’로 삼고 싶다면, 그것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진 마. 그래놓고 그걸 ‘예술’이라 부르거나 그렇게 불리길 기대하지도 마.
접시 위에 올려진 비늘도 안벗긴 날생선은 대다수에겐 요리가 아닌 생물이듯, 불특정 다수의 독자 앞에 예술적으로 승화되지 못한 정치적 주장과 의도는 그냥 실패한 삐라지 결코 문학이 아냐. 같은 정치적 입장의 독자에게만 읽히고 싶다면 제발 연령 표시하듯, 구매가능한 독자의 정치적 성향을 책 표지에 표시해 줘. 정치적 신념과는 별개로 문학을 기대한 독자는 그런 글을 참고 읽어줄 수가 없어. 요리사의 게으름과 저능함, 뻔뻔함만을 절감할 뿐이지. 그건 독자가 한국남자여서가 아니라, 문학이란 예술에 대한 당신들의 태도와 기술과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야. 페미니즘과 PC라는 주제를 문학으로 다루기 원한다면, 제발 지금도 내 책장에 꽂혀있는 <이갈리아의 딸들>과 <프랑켄슈타인>을, 혹은 <작은 아씨들>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는 예술적 성취를 위해, 제발 노력하는 척이라도 해. 그게 불가능해 보이거나 그 노력의 과정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단언컨대 당신은 예술가라고, 작가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나쁜 건 아냐. 그냥 맥북 앞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가줘.
덧. 자정까진 책 읽어야 해서 피드백 못함. 빤스런 아니니 오해 말도록.
싸우는 데스! 싸우는 데스!
좀 감정적이긴 해도 좋은 글이네. 예전에 저 사람이 독갤에 단 댓글 중 하나가 마르크스 주의가 전세계 노동자를 해방시켰듯 정치적 올바름이 전세계 소수자들을 해방시킬 거라는 식의 글이었는데 이런 관점을 갖고 평론을 하는 이상 난 그 비평이 제대로 된 글이라고 생각할 수 없음
진짜 재밌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 고마워.
입장이 어떻든 정성글은 환영이야~ 김초엽 소설에 대해서는 읽어보지도 않았으니 걍 이렇구나 저렇구나 싶어서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예술에 대한 정의에서 추천 찍고 간다.
여중생짱 공감하는 거시애요! 샛별이가 지지했으니 독갤 80%는 오빠야 지지하는 거라고 보면 되는 거야요
마지막 문단은 진짜 공감된다 글 좋다 - So it goes.
대략적으로 요약하자면 김초엽 작품이 작품 내에서 평가되어야지 작품 외적인 정치적 목적으로 평가하지 말라는 것 같은데.. 나도 개인적으로 소설 자체로 승부하기보단 정치적 성격이 강한 친페미 친 pc 문학 싫어하지만 저항문학이나 참여문학도 그 작품만이 가지는 가치가 있지않음?
해명된 원작품이 혼자서 서있지도 못하는데 덕지덕지 붙여서 어떻게든 의미를 넣으려고하니까 ㅋㅋㅋ
김초엽 안 읽었지만 이런 건전한 비판글은 그 자체로 갤에 좋다고 생각한다 굳
근데 초엽이 누나 왤케 뜬거야? 작가의 이력 덕분이야 ?아님 소설집에 흐릿하게 베여 있는 PC 덕분이야( 본인은 읽어보니 PC가 주된 소설집이라 생각안함)? 걍 읽어보니까 말랑말랑한 최은영이 쓴 소프트 SF 같던뎅 ㅋㅋ
여성+고학벌+페미+장애인 버프를 어떻게 이기냐ㅋㅋㅋㅋ
쉬운 난이도+공대여신 마케팅+페미버프+포스텍? 아ㅋㅋ작가들 다 뒤졌다 - dc App
난 김초엽 작가가 3급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는 걸 댓글 흐름을 보며 의아해하다 방금 검색해보고 알았어. 그걸 알고 나니까 더 빡친다. 김초엽 작가는 본인을 '역경을 이겨낸 장애를 가진 소녀' 프레임으로 봐주지 말길 바랐데. 내가 읽은 김초엽도 적어도 그따위 후진 온정주의적 프레임에 갖힌 작가는 아니었어. 작가의 육성을 옮겨적는 것만으로도 난 뭐라 설명하기 힘든 죄책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 용용군은 전혀 안그랬나봐. 어떤 의미론 대단하다.
김초엽 단편 대충 9편 남짓이랑 독갤 게시글 둘 다 읽어봤는데 이쪽이 더 와닿는다. 잘 읽었어 bb
근데 그 평론가 트윗계정 비공으로 돌렸던데? 아마 디씨에도 안 돌아올 것 같다.
그거 페미들하고 싸우다가 그렇게 된 걸 거임
엥 본인도 페미 같던데 페미들하고도 싸워? 진짜 힘들겠네...
직업? 문학평론가(웃음)
치대생이긴 함
일단 분석 한 번 해주고, 살살 햝아준 다음에 도덕적 이슈랑 엮는다. 여성 서사가 들어갔으면 '진보된' '여성 서사' 찬양 반쯤 해주고. 이후 도덕적 이슈에 대해 이 책이 어떤 의견을 피력하는지 최대한 설명한다. 그리고 온갖 지식과 인용절을 늘어놓으며 작가와 작품, 그리고 자신까지 후빨해주며 전성기 윤석민도 울고갈 트리플크라운을 달성... - dc App
와 얘네 진짜 좀 무서울 정도네..
ㄹㅇ 존나 꼴받은게 느껴지네
다 좋은데 왤케 화났냐
자의식 과잉은 이 글 아님? ㅋㅋㅋㅋ
요새는 맘에 안들면 자의식 과잉이라고 하는 게 유행이냐? 논리적 반박글 가지고도 자의식 과잉이라고 하면 뭘 바라는 건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거?
걍 맘에 안 들어서 화내는 글에 논리적 분석이 어디 있어. 요즘은 문장만 늘어놓으면 글이라고 해주나
캬 시원하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