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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을 해명하기>를 스크롤 해보자. 4개의 장으로 나뉜 글은 큐빅처럼 산란하며 독자의 눈을 속이는 인용과 고유명사와 관념어를 빼고 보면 거의 동일한 초라하고 앙상한 구조야.


앞 문단에선 작품 발단부의 아이디어나 인물 및 세계관의 설정을 따와서 (그 어떤 경우도 이 인용이 문장 단위를 넘는 경우 없음. 한 단위의 글 안에서도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한 문단을 넘는 경우도 없음) 그 소재에서 피상적으로 연상한 뻔한 당위성의 담론을 가져와, 더이상 작품과의 유기적 연관성이나 주제의식의 공통점을 찾으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외부 레퍼런스들을 조잡하게 연결지어, 김초엽의 작품이 그 담론들을 담은 훌륭한 소설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더군.


이런 식의 비평이 아쉬운 이유는, 우선 이런 방식은 예술에 대한 비평의 논리로 볼 수 없기 때문이야. 단편소설은 예술적 유기적 완성체임. 작품의 의도, 작가의 사상, 작가의 인터뷰에서의 발언, 별도로 쓴 에세이 속 문장, 혹은 작품의 발단부 속 문장이나 세계관, 인물 설정은 (벽돌의 퀄리티와 건축자의 선의가 건축물의 퀄리티 전체와 아무런 관계가 없듯) 소설 전체의 문학적 완성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 글쓴이는 예술의 의미를 작품 내부에서만 찾고 외부 자료를 가져오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보통 비평에서 외부 자료를 근거로 텍스트를 해석하는 건 기본 아님? 예를들어 쿤데라의 소설들을 평론하려는 사람이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을 참고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난 이 글을 보고 두 번 빡쳤어. 일단 빡친 첫 번째 포인트는 다음과 같아. 문학은 평론이나 논문, 혹은 위대한 평론가인 나처럼 레퍼런스와 참고 문헌을 나열할 수 없는 우매한 디시의 병신들을 까내리기 위한 글을 위해 수동적으로 타자화되어 토막쳐저 유린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야. 아니어야 해.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못 쓴 작품도 작품으로서만 까여야 해. 오로지 비평하는 사람의 최종 결론에 끼워 맞추기 위한 도끼질에 문장 단위로 쪼개져 한심한 (차마 지적이라곤 못쓰겠다) 자뻑적 딸딸이를 위해 쓰여서는 안되는 거라고 생각해. 어찌되었든 작품은 비평 당시에도 비평 후에도 그 자체로 나름의 설득력과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자 예술로 자존하는 것처럼 다뤄져야 해. 그리고 작가는 이런 자기완결적 완성도와 생명력을 가진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비평가는 결국 작가들을 이곳에 이르도록, 독자들은 작품을 이렇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만 비평해야 하는 거야.


>> 어떤 글이든 쓰려면 자료 조사를 먼저 하고 쓰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걸 가지고 어떻게 위대한 평론가인 나처럼 레퍼런스와 참고 문헌을 나열할 수 없는 우매한 디시의 병신들을 까내리기 위한 글’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거임?


내가 최대한 너그럽게 이해해보자면 글쓴이는 아마 작품의 의도가 작품에 잘 형상화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그럼 작품의 의도가 작품에 잘 형상화되어 있지 않은 근거를 제시하고 저 평론가가 그것을 잘 캐치하지 못 했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거 아님? 그런데 이 글에선 그런 인용들은 찾아볼 수 없고 그냥 저 평론가는 아무튼 엘리트주의이고 아무튼 레퍼런스를 남용하는 거임 ㅇㅈㄹ하는데?


더 궁금한 건 어떻게 이런 글에 많은 독붕이들이 그렇게 많은 공감을 표하고 좋은 글이라고 하는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