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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갤 떡밥이 성경이었기에 옛날에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감상을 적어보려 한다.

신곡을 접했을 당시에, 나는 갓 천주교에 입교하여 굉장히 종교와 하느님에 대해 관심이 많은 상태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철저한 무교 스탠스를 취해왔던 내가 왜 갑자기 종교적 체험을 바랬지는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성당을 다니다가, 문득 책으로 더 종교를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성경은 너무 어려워 보이기도 했고, 성경에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많다는 것을 들은 뒤에는 도저히 성경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적인 지옥을 생생히 나타낸 책, 단테의 <신곡>! 단테라는 이름은 게임을 통해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름의 원 주인이 이런 책을 썼었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필자는 <신곡|지옥>, <신곡|연옥>을 접하게 되었다.

고백을 하나 하자면, 아직도 필자는 <신곡|연옥>을 전부 읽지 않았다. 그만 중도하차해버린 것이다. 단테에겐 죄송한 일이지만, <신곡|연옥>의 재미는 나에게 하나도 다가오지 않았다. 반면에 <신곡|지옥>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역시 사람이라는 것은 평화로운 이야기보다 어둡고 잔혹한 이야기에 더 끌리는걸지도 모른다. 피가 흐르고, 죄인들이 불타고, 악마들이 날아다니는 <신곡|지옥>의 마경은 필자의 뇌 깊숙한 곳에 그 인상을 남기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알겠으면 좋겠는 건, 이 책은 주석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당시의 이탈리아와 로마, 그리스에 이르는 광범위한 역사와 신화를 샅샅이 알고 있지 않는 한, 여기에 나오는 수많은 죄인들과 인물들은 대부분 낯설고 처음보는 인물들일 것이다. 친절하게 주석을 일일히 달아준 건 좋았으나, 책 맨 뒤에 있는 주석란으로 왔다갔다하면서 독서하는 것은 역시 흐름이 자주 끊긴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재미는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의 서사 구조는 주인공 순례자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지옥과 연옥, 천국을 거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앞서 말했듯이 정말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그래도 첫 번째 지옥인 '림보'에서 만날 수 있는 카이사르, 헥토르, 두 번째 지옥에서 만날 수 있는 클레오파트라, 트리스탄 등등, 두번째 지옥까지는 그래도 우리도 알 법한 인물들이 나오는데 반해 세번째 지옥부터는 정말로 이탈리아사를 알아야만 알아보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친절한 주석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보면, 저절로 단테가 당시와 역사를 관망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칠대죄를 기반으로 한 그의 지옥에서 헤매는 이탈리아사의 수많은 인물들. 그는 추방자로서 세상에 대해 깊은 죄악을 느낀 것이리라. 피말리는 정치투쟁의 역사에서 이탈리아의 경우 교황이라는 이질적인 존재로 인해 한층 더 혼란스러웠다. 가문과 가문, 파벌과 파벌이 대립하는 상황속에서 몰락하여 고향 밖을 떠돌게 된 단테에게 유일하게 기댈 곳은 오직 신의 존재였다. 그런 그가 자연스레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신 앞에 비춰보게 된 건 필연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혹여나 자신이 이러한 지옥에 떨어질만한 죄를 범했는지, 그리고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어떠한 삶을 걸어야 하는지. 단테가 단순히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 이 책을 쓴 것은 아닐 것이다. 종교적인 삶의 의미와 죄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물은 결과 이 책이 나온 것이다. 우리가 당장 무욕하고 소박한 종교인으로써 갑자기 변모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고 짧게나마 자기반성의 자세를 고쳐잡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종교란, 우리의 자기반성의 기준과 대상으로 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마음속으로 되뇌인 반성의 말들은 자칫 아무 의미나 흔적도 없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각자 마음속의 신에게 그 반성을 들려주는 것으로 우리는 더욱 견실한 반성의 자세를 잡을 수 있다. 자신의 반성을 지켜봐주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되는가. 그러면 신의 존재가 우리에게 묻는 양심과 도덕에 대한 질문들은 자연스레 우리가 따를 반성의 기준이 되어줄 것이다. 필자는 바로 이런 것들이 여태까지 종교가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