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가을, 트라텐바흐에서의 비트겐슈타인의 교육은 지나치게 엄격했다. 그가 자주 아이들 뺨을 때린다거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는 기록은 이제는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질문을 했다거나 단지 잔인하기만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단지 지나치게 열정적이었고, 그 시절 어린 소녀가 대수를 하지 못하는 것쯤은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지만 그 자신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그는 재능있는 아이들이 집안 사정으로 배우기를 그만두는 것을 원치 않았고 다방면으로 배우기를 계속하도록 지원해주었다. 어떤 아이는 첫째 누나 헤르미네의 집에 보내 기숙 생활을 하게끔 하려고 했다. 그 밖에 어린이를 위한 사전을 편찬하기도 하는 등 그의 교사 생활에 누는 적지 않았으나 결코 미달은 아니었다. 비트겐슈타인이 교사 생활 시기 아이를 때린 것은 현대 한국 사회에서 막대기로, 다리로, 주먹으로 때리는 것과 동급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비트겐슈타인이 단지 '잔인한 교사'가 아니었다는 점은 다음 기록에서 드러난다.

"……상점 주인인 요한 샤이벤바우어는 1920년에서 1922년 사이에 그의 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는 내가 방금 바나나를 산 것이 기묘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독일 오스트리아가 굶주렸던 그 황량한 전후 기간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그에게 처음으로 바나나를 -그리고 처음으로 오렌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을 먹이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은 과일 다발이 든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몇 킬로미터 산길을 오르내렸다. 그 시절에는 트라텐바흐와 오테르탈 사이에 대중교통이 없었다. 오테르탈에 가려는 사람들은 글로그니츠의 기차역에서부터 20킬로미터 숲을 지나 언덕을 하이킹했다. 바로 비트겐슈타인이 그랬듯이."[45]







1929년 6월 18일, 비트겐슈타인은 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구두 시험을 치른다. 평가관은 버트런드 러셀과 조지 무어였다. 러셀은 이를 두고 '내 평생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는 처음이다'라고 말하며 시험을 진행했다. 구두 시험을 마치고 비트겐슈타인은 평가관들의 어깨를 가볍게 치면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들이 그것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리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시험장을 나갔다(...)





좆나 웃김 ㅋㅋㅋㅋ

신조차 모독한 천재의 삶, 씹 재밌는 거시야요



독갤 오빠야들 샛별이 비트겐슈타인에게 관심이 생긴 거시애요

책 추천 부탁드리는 고야

물논 샛별이는 아가라 저 양반이 쓴 책 이해할 리 없으니 평전이나 쉬운 해설서 같은 거 알려주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