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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사회복지공사’라 불리는 정부 기관이 있다. 엄연히 국가 소속의 공인된 기관이나 사실상 불법이나 다름없는 이 집단은, 겉으로는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복지 기관의 역할을 하면서 그 뒤로는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 반정부단체와 테러집단의 조직원들을 상대로 암살자로 사용한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경계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이 여자아이들은 인체개조와 약물을 통한 세뇌를 거쳐 맨몸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의체’로 개조된다. 그리고 이들을 훈련시키고 관리하며 작전에서 지시를 내려줄 ‘담당관’들을 붙여주고, 이 한 쌍을 이탈리아어로 형제라는 의미의 ‘프라텔로’라 부른다.
<건슬링거 걸>은 바로 이 프라텔로들의, 몸과 마음이 개조된 여자아이들과 그녀들을 맡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진 어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01. 이야기
<건슬링거 걸>은 2002년 5월부터 2012년 9월까지 연재된 만화로, 총 15권 100화로 완결된 작품이다. 2003년과 2008년에는 원작의 5권까지의 분량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2020년인 지금에는 조금 오래된 작품이고, 작품의 분위기나 특성상 그리 대중적이지는 못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만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독특하고 시니컬한 매력에 심취한 독자들은 종종 있었으며, 완결된 지 8년이나 지난 2020년에 <소녀전선>이라는 모바일 게임과 콜라보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건슬링거 걸>은 미소녀가 자기 몸보다 큰 냉병기나 기관총 등을 자유롭게 휘두르고 다니는 작품이 발이 채일 정도로 흔한 일본의 아니메 시장에서 꽤나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일단 배경부터가 상당히 현실적이다. 이 작품에서는 핵심적인 갈등 요소 중 하나로 이탈리아의 북부와 남부의 정치적 대립이 등장한다. 이탈리아는 상업과 공업으로 부유한 북부에 비해 농업과 관광업이 주된 수익인 남부는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이 때문에 북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부유한 북부에서 세금을 갈취해 남부에 분배한다는 불만이 있었으며, 단순히 불만을 넘어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하나의 정치세력을 형성되기에 이른다. 당연히 정부에서는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이들을 곱게 봐줄 리 없었고, 이 불만 세력은 곧 ‘5공화국파’라는 테러 집단으로 발전하게 된다. 작품의 주연인 ‘공사’의 의체들이 상대하는 주적이 바로 이 5공화국파의 테러범들이며, 의체들의 담당관들과 공사의 여러 서포터들도 직간접적으로 이 5공화국파와 악연이 있는 인물들이다.
물론 현실의 이탈리아가 실제로 분리독립운동이 일어나고 테러가 횡행할 정도로 막장인 곳은 아니지만, <건슬링거 걸>의 이러한 배경 설정은 실제 현실에서 많은 모티프를 가져온 것이다. 이탈리아의 남북 갈등 문제는 실존하며, ‘공사’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클로체 검사 폭탄테러 사건 또한 실제로 마피아와 싸우다 폭탄 테러로 순직한 팔코네 검사 사건을 그대로 가져왔다. 더불어 정부측의 관점뿐만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들의 관점 또한 다양한 조연들을 통해 묘사함으로서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심지어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5공화국파의 독립운동을 지탱하는 건 유럽의 우경화와 반(反) 세계화 흐름에 편승한 북부 자본가들이니까.” 라는 대사는 이 만화가 현실 반영을 넘어 그 시점에서는 미래였을 2020년의 현실을 예측한 것 같다는 감상까지 들 정도였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이 연재되고 있던 시점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더불어 극의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는 다섯 명의 ‘의체’들, 그러니까 개조를 받은 암살자 소녀들과 그녀들의 ‘담당관’들의 관계 또한 꽤나 담담한 분위기에서 현실적으로 전개된다. 물론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다소 과장된 느낌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러한 극한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사고와 행동이 지극히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이 작품의 또 다른 묘미인 것이다. <건슬링거 걸>이 연재되던 시기에는 아직 본격적인 모에 캐릭터 붐이 터지기 전이라 어느 정도 현실감이 있는 인물과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이 좀 더 많았지만, 당시를 기준으로 봐도 이 ‘의체’와 ‘담당관’의 관계는 현실적이다를 넘어 건조해 보일 정도이다. 캐릭터들이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닌, 사실상 수요자들의 감정과 욕망의 배출구로 소비되는 것이 시장의 주류를 차지한 2020년 현재와는 더더욱 큰 차이가 있다.(물론 이 작품이 로리타 취향과 강력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인물의 대상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02. 감정
위에서 말했듯이, <건슬링거 걸>은 기본적으로 ‘의체’로 개조된 여섯 명의 여자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작품이 시작하기도 전에 담당관이 사고(를 위장한 암살임이 강하게 암시된다)로 사망해 담당관 없이 실험체 역할을 하며 홀로 사는 ‘클라에스’를 제외한다면, 이들은 각자의 ‘담당관’들에게 크던 작던 하나의 애착 감정을 형성하고 있다. ‘헨리에타’나 ‘페트로슈카’처럼 강한 애정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고, ‘안젤리카’나 ‘리코’처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우도 있으며, ‘트리엘라’처럼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의체’ 여자아이들은 자신의 담당관에게 강한 애착을 품는다. 담당관이 사망하고 그에 대한 기억이 의도적으로 지워진 클라에스조차도 담당관과의 마지막 약속(안경을 쓰고 있는 동안은 착한 아이로 있어 달라는)을 무의식적으로 지키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작품 초반에는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담당관을 살해한 후 자살한 의체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바로 이 부분이 <건슬링거 걸>의 가장 핵심적인, 그리고 가장 끔찍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여자아이들이 자신의 담당관에게 그토록 애착을 품는 이유는, 의체로 개조되는 과정에서 ‘조건 강화’라는 세뇌를 통해 처음부터 그렇게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신체능력을 보유한 의체들을 제어하려면 강력한 복종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이다. 실제로 작중의 의체들 중 가장 영리하게 그려지는(물론 그녀는 담당관의 재량으로 조건 강화가 비교적 적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트리엘라는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냉소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발달된 과학기술로 인간의 의식을 조종함으로서 역으로 인간의 본질과 자아를 탐구하는 작품들은, <공각기동대>나 <총몽> 등 2000년대 이전의 많은 일본 만화에서 다루어온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의체들의 감정들이 단순히 필요에 의해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면, 이 만화는 꽤나 심심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건슬링거 걸>의 의체 아이들은 결코 프로그래밍 한 대로 움직이는 로봇들이 아니다. 분명 자신의 의지와 감정이 있는 인간인 것이다. 분명 그녀들이 품고 있는 감정들은 어느 정도 ‘공사’에 의해 의도된 것이며, 이를 잘 알고 있는 의체들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것이 만들어진 가짜 감정인 것인지, 아니면 진짜 본인의 감정인 것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설정은 작품의 중요한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 의체들이 보여주는 애착과 애정이 어느 정도는 만들어진 것임을 아는 ‘담당관’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등한다. 이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프라텔로가 바로 ‘헨리에타’와 ‘죠제’로, 죠제는 적극적으로 애정을 드러내는 헨리에타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만(이는 테러로 사망한 자신의 여동생을 겹쳐 보는 영향도 있다), 동시에 그녀가 보여주는 것이 만들어진 감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갈등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 이 작품이 보여주는 의체들의 감정에 대한 묘사는, 그것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거나 혹은 그녀들이 품고 있는 진실한 감정이라는 답을 주지 않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진정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이 만들어진 것이던 그렇지 않던 상관없이, 감정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자신에게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는 의체 ‘페트로슈카’에게 마음이 흔들린 담당관 ‘산드로’는, 너의 애정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며 폭언을 퍼붓지만, 페트로슈카는 조건 강화 과정에서 부여받은 금기 사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담당관인 산드로에게 욕을 퍼붓는다. 또한 ‘트리엘라’는 자신의 담당관인 ‘히르샤’가 그녀의 의체가 되기 전의 과거를 숨김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판단으로 자신의 과거를 찾아내고 현재의 감정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작중의 묘사들은, 아무리 개조되고 세뇌된 의체일지라도, 그녀들이 갖는 감정 그 자체는 소중하고 진실한 것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소녀전선>과의 콜라보 이벤트 ‘몽중극’에서 다시 한 번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요소이기도 하다.
03. 엔딩(스포일러 포함)
만화를 보며 ‘의체’ 아이들에게 애정을 갖게 되는 독자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작중 등장하는 ‘프라텔로’들의 운명은 대부분 비극적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의체 자체의 수명 때문이다. 평범한 여자아이를 맨손으로 인간을 죽일 수 있는 사이보그로 개조하는 과정에서 신체에 많은 무리가 가고, 혹시라도 부상을 입으면 이를 수복하는 과정에서 더더욱 뇌에 부하가 가기 때문에 의체들의 수명은 비교적 강화를 적게 한 2기생들이라도 평균 5년에 불과하다. 선천적으로 시간의 제한이 있는 것이다. 더불어 갈수록 뇌에 부하가 간다는 이 설정 덕택에, 가장 초기에 개조를 받은 의체들은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거꾸로 오래 전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마치 알츠하이머과 비슷한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의 끝은 다양하다. 폭발 테러로부터 담당관을 지키고 뇌의 부하를 견디다 못해 조용히 사망하거나, 최후의 작전에서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테러리스트들을 막다 장렬한 죽음을 맞기도 한다. 몇몇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생존하기도 하나, 본래 갖고 있던 질병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의체의 수명이라는 한계 때문에 대부분 오래 살지 못하고 눈을 감을 것이 암시된다.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은 그녀들은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운이 좋은 편이다.
이처럼 <건슬링거 걸>은 원체 비극으로 알려진 만화이고, 그 이름값에 어울리게 대부분 씁쓸한 결말을 맞이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결말을 맞이한 것이 바로 ‘헨리에타’와 ‘죠제’ 두 ‘프라텔로’이다.
헨리에타와 죠제는 이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들이다. <건슬링거 걸>은 확고한 주인공 없이 다양한 인물들의 군상극에 가까운 만화이지만, 그럼에도 굳이 주인공을 뽑는다면 아마 이 두 사람일 것이다.(1권 표지를 장식한 ‘의체’도 헨리에타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헨리에타는 의체들 중에서도 담당관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여자아이다. 그리고 그녀의 ‘담당관’인 죠제 또한 그런 감정을 비교적 잘 받아주는 편이다. 그러나 이들의 끝은 지나칠 정도로 끔찍했다.
작품 초반, 공원에서 한 의체와 담당관이 총에 맞은 시신으로 발견된다. 공사는 이들의 죽음을 갑작스러운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인한 순직으로 처리했으니, 헨리에타는 이 죽음의 실상을 알아차린다. 그녀가 이것을 알아차린 이유는, 작중 그녀의 대사를 그대로 언급하자면,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는 데 그 마음이 절대로 보답받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먼저 그 사람을 죽이고, 따라서 저도 죽을 거예요.” 라는 이유였다. 그리고 이 말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작품 최후반, 헨리에타는 점점 가해지는 뇌의 부하 끝에 의체가 되기 전의 트라우마를 각성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그녀는 작전에 제대로 참가하기 힘들 정도로 심한 후유증을 겪는다. 자신의 가족을 몰살시킨 테러리스트를 목전에 둔 죠제는 자신의 복수와 헨리에타를 두고 갈등하나, 결국 인간 헨리에타 대신 ‘의체’로서의 그녀를 선택하고 모든 기억을 리셋해 감정을 잃은 맹목적인 전투 병기로 만들기에 이른다. 그러나 최후의 작전 중 격렬한 총격전에서, 헨리에타는 다시 한 번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고 발작적으로 주변의 모든 인간에게 총격을 가하던 중 “사랑하는 죠제 씨”에게 총을 쏴버리고 만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헨리에타는 상황을 파악하지만 죠제의 부상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결국 그를 살릴 수도, 그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도 없는 헨리에타는, 죠제와 함께 동반자살하는 끝을 선택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가장 사이가 좋아 보인 프라텔로인 이들의 엔딩이, 가장 차갑고 건조한 사이였던 ‘리코’와 ‘쟝’의 운명과 극적으로 대비된다는 것이다.
쟝은 죠제의 형으로, 둘 모두 가족을 테러로 잃고 깊은 증오와 복수심에 빠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도 의체인 헨리에타에게 자신의 죽은 여동생을 겹쳐보며 불완전하게나마 애정을 주는 죠제와 달리, 쟝은 자신의 의체인 리코를 철저하게 자신의 복수를 위한 도구로만 취급한다. 의체중에서는 유일하게 본래의 기억(선천적인 지병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이 온전한 리코 또한 자신을 도구처럼 대하는 쟝에게 만족하고 그를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냉정한 담당관의 영향인지, 리코는 의체들 중에서도 가장 비인간적이고 기계 같은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다. 작품의 극초반, 암살 작전의 준비 과정에서 만나 친해진 민간인 소년을 암살을 목격한 사람은 모두 죽이라는 명령대로 쏴버린 것도 리코고(이 장면은 전형적인 ‘보이 밋 걸’구도로 진행되다 갑자기 뒤통수를 치기에 꽤나 충격적인 장면으로 유명하다), 동료 의체들이 사망하는 것을 보아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자신의 반응에 어리둥절함을 느낀다. 물론 리코도 같은 방을 쓰는 헨리에타나 가까운 사이인 의체 몇 명은 친구로 생각하고 나름 소중하다 느끼지만, 비슷하게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클라에스’가 사실은 본인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시니컬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리코는 정말로 감수성이 부족한 편으로 묘사된다.
최후의 작전에서 쟝은 리코와 함께 자신의 가족과 행복을 앗아간 테러리스트 ‘쟈코모 단테’를 쫒아 그와 직접 육박전을 벌이기까지에 이른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쟝은 패배하고, 자신이 인질로 잡히는 상황까지 처하자, 그는 총을 겨눈 리코에게 자신의 안위는 상관없으니 방아쇠를 당기라고 명령한다. 그는 처음부터 이 마지막 작전에서 살아나갈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리코는 쟝의 명령대로 방아쇠를 당기나, 중상을 입은 쟈코모는 아슬아슬하게 도망친다. 마찬가지로 큰 부상을 입은 쟝은 그대로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자, 리코는 죽지 말라고, 자신을 위해 살아달라고 그를 부여잡는다. 이 장면은 리코가 격렬한 감정을 드러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장면이다. 결국 쟝과 리코는 살아남았고, 담당관과 의체가 모두 살아남은 유일한 1기 프라텔로가 되었다. 물론 의체 자체의 수명의 한계 덕택에 리코는 작전 후 1년을 더 살고 죽었다고 마지막 화에서 클라에스의 서술을 통해 언급되지만, 작중 묘사를 보면 그녀는 나름 행복한 죽음을 맞이한 것 같다.
단순히 생존과 죽음의 문제를 넘어서, 이 두 프라텔로가 맞이한 결말은 꽤나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럼에도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사실 헨리에타 또한 리코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원하는 것을 얻은 결말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헨리에타는 죠제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일방적인 애정과 동경을 품는다. 이것이 조건 강화의 영향이라는 것을 헨리에타 또한 알고 있지만, 그것은 그런 것을 신경쓰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강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죠제는 헨리에타의 마음을 단 한 번도 온전히 받아주지 못했다. 그 또한 나름대로 신경을 써 헨리에타를 챙겨주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죄책감을 달래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여동생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까지 느껴지는 행동이던 것이다. 결국 선택의 순간, 죠제는 헨리에타 대신 복수를 선택한다. 인간적으로 해서는 안 될 선택이었지만, 작품을 여기까지 따라온 독자는 죠제의 선택을 비난하기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복수라는 강력한 동기를 잡고 다시 일어난 그의 형 쟝과 달리, 죠제는 그렇지 못하고 계속 흔들렸다. 가족의 복수와 헨리에타의 애정에 대한 부담감으로 흔들리던 그가 선택을 하게 만든 마지막 동기는, 1년 전의 함께 별을 본 일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망가진 헨리에타 그 자체였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서야, 죠제는 기억을 되찾은 헨리에타의 마음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전하게 받아들인다. 여기서 함께 죽자는 헨리에타의 말은, 담당관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심지어 가족의 복수를 위해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다. 마저 작전에 참가하라거나, 혼자 살아남으라거나, 하다 못해 나를 위해서 쟈코모를 죽이라는 말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죠제의 마지막 선택은 헨리에타의 말대로 그녀와 함께 죽는 것이었다. 가장 끔찍하고 틀린 선택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진정 헨리에타를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04. 에필로그
<건슬링거 걸>은 그리 대중적인 작품이 못 된다. 작품의 설정부터가 사실 대단히 취향을 탈 만한 것이기도 하며, 작품 내내 흐르는 시니컬한 잿빛 톤의 분위기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대단히 곤혹한 것이다. 작화 또한 십 수년 전의 만화라는 것을 감안해도 아주 잘 그렸다고 치긴 어렵고(총기 묘사의 디테일은 대단하긴 하다), 섬세한 복선과 플롯은 인상적이나 그것도 마지막에 가서는 조금 삐걱거리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특히 에필로그에서는 작가의 주제 의식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려다 너무 지나치게 과잉된 감정이 드러나 여태껏 유지한 건조함의 미학을 망가뜨릴 뻔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건슬링거 걸>은 좋은 작품이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도 밝고 웃으며 사는 여자아이들의 모습은 그녀들이 언제나 죽음이 한 발짝 앞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처연하며, 이들을 이용하는 각자의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들마저도 그렇기에 인간적이었다. 마피아들의 아동 스너프 영상 촬영 현장을 습격함으로서, 유럽 국제 형사기관에 들어갈 정도로 유능했던 두 경찰은 한 사람은 직업과 국적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고, 한 사람은 아예 목숨마저 잃어버리고 시신도 찾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두 사람은 후회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아직 숨이 붙어 있던 한 여자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총상을 입고도 여자아이에게 응급처치를 하던 경찰은 아직 세상은 살 만 하지? 라고 물으며, 이 아이에게 자신의 희망을 맡긴다는 말을 남긴다. 비록 세상이 아무리 썩어빠졌더라도, 그렇기에 더욱 희망의 가치는 소중하고 빛나는 것이 아닐까. 다소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상의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종종 뻔하고 당연한 것들이다. <건슬링거 걸>이 수많은 우울하고 잿빛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려 한 이야기도, 결국 저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 인문학과 순수문학을 리뷰한다면, 누군가는 씹뜨억만화를 리뷰해야 세상의 균형이 맞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만화인데 이제는 고오전이 되어버려서 아는 사람도 드문 작품이라 슬프다
15권 100화로 깔끔하게 완결났으니 관심있는 독붕이들은 함 읽어보면 좋겠음 츄라이 츄라이
호에에에에
다만 14, 15권이 아주 구하기 어렵다... (꼴랑 두 권에 8만원 이상은 얹어줘야 할 것) 확실히 단순히 씹덕모에뽕빨만화는 아니다. 총이니 자동차니 정치니 하는 다른 것도 잘 묘사됐지만, 심리묘사가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다고 본다.
알라딘 중고 찾아보면 8만까지는 안 했던 것 같음. 그래도 정가 두배는 나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