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적 새로운 유물론에 대한 글 읽다 그 책 얘기가 나오길래



마지막으로, 커비와 바라드에 의해 표명된 수행적 유물론들과 호머의 서사시 및 호머에 의해 촉발된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적 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나타나는 존재론들 사이의 꽤 두드러진 유사성을 간략히 지적하고 싶다. 사실상, 최근 출간된 책에서, 나일은 루크레티우스를 전면적인 수행적 새로운 유물론자로 읽는 독법을 옹호하는 논변을 전개하는데, 루크레티우스는 꽤 놀랍게도 양자물리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에서 창발하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 새로운 유물론에 진화적인 견해 중 많은 것을 적절히 예상했다. 마찬가지로 놀라운 것은, 그 철학적 시가 지금까지 항상 영어로 번역된 방식과는 대조적으로, 루크레티우스는 "원자"라는 낱말의 어떤 변양태나 판본이나 번역을 세심하게 회피했던 것처럼 보인다는 나일의 발견이다. 사실상, 우리의 앞선 논의에 바탕을 두고서, 우리는 루크레티우스가 왜 원자론자일 수가 없었던 동시에 전적으로 수행적이고 관계적인 물질관을 신봉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진전 중인 작업에서 크리스 갬블(Chris Gamble) 역시 호머의 서사시에 대한 수행적 새로운 유물론 독법을 옹호하는 주장을 펼친다. 더욱이, 이 작업의 핵심 목표는 서양 역사 자체의 구술적인 토착적 과거와의 중요한 연결관계를 조명함으로써 현재의 토착적 존재론들에 대한 더 큰 개입도 촉진하고 고무하는 수단으로서 수행적 새로운 유물론의 함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아니 뭐 예상했다고 해봤자 소박한 관찰에 소박한 해석을 한게 대충 얻어걸린 거겠지만 궁금하긴 하다

근데 이 글 재밌다 야. 신유물론 관심있는 사람 함 읽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