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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SF라는 용어는 늘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순문학'이나 'IDM(Intelligent Dance Music)'과 같은 용어가 만드는 갈등과 꽤나 비슷한데, 만약 그 부류에 속하는 것들이 '순수한 문학'이고 '지적인 댄스 음악'이라면 그 부류에 속하지 않는 것들은 자동으로 '순수하지 않고' '지적이지 않은' 것이 되지 않느냐? 이러한 이름 선정이 어떤 경우엔 다분히 정치적이고, 어떤 경우엔 그저 마케팅 전략에 불과한 것이더라도 갈등을 늘 자초한다는 것 자체는 부정하기 힘들다. 다만 이 갈등과는 별개로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소위 구분짓기는 기본적으로 어떤 장르에서든 생겨나는 것이며, 구별된 하위 장르와 그 외의 것들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주장하든 딱히 그렇지 않든 구분된 하위 장르 자체는 그 외의 것들과는 모종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 책에 실린 단편 <틈새>의 저자, 피터 와츠-아마 SF 독자라면 <블라인드 사이트>로 더 익숙하겠지만-의 에세이 일부분을 인용해보자.
"중요한 것은 숫자가 난무하는 수학이 아니라 태도인 것이다. (...) 우린 합리주의의 전도사다. 허황된 이야기는 절대 거부한다. 워프 엔진의 설계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미래의 기술이 테플론과 화학 치료 요법을 개발한 현재의 경험적인 과학에서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
과학 소설은 인간과 기술 변화의 접점을 탐색한다. (...) (하지만) 작가가 소설의 절반을 염색체 말단소립과 미토콘드리아 막을 설명하는 데 낭비한다면 좋은 작가라 할 수 없다. 이런 세부 사항은 적당히 얼버무리고, 결과를 가정한 후에 인간 사회에서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나을 것이다. (...)
그렇다면 결국 반대론자들의 말이 맞다는 것인가? (...) 하드 SF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 생물학자 와츠가 그럴듯한 과학을, 인간형 외계인과 초광속이 넘쳐나는 장르에서 과학이 중요치 않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나서는 도전이다. 작가 와츠가 과학자의 규범을 어기지 않고 이야기를 하기 위한 도전이다."
비록 피터 와츠의 주장이 모든 하드 SF 작가들을 대변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나는 이 하드 SF라는 장르가 저자의 '태도', 구체적으론, 고증의 내적 진실성으로 구별되는 장르라고 이해했다. 말하자면, 오토픽션과 진실성의 문제와도 비슷하리라.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아주 간략하게 첨언하자면, 오토픽션은 소설과 자서전 사이의 문학이다.) 하드 SF 저자들 중에선 이공계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글쓰기만큼 자신이 연구하는 것에도 진지하고, 사소한 일상 대화나 농담거리에서라면 모를까 진지한 글쓰기에서까지 자신이 알거나 연구하는 '사실'을 무시하고 쓸 수 없는 이들이다. 오토픽션을 쓰는 작가들이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을 '어느 정도는' 각색하더라도 조작의 수준이라 할 정도까진 차마 나아가지 못하듯, 이들 역시 그러한 양심의 잣대를 마음 속에 두고서 그 기울어짐을 느끼며 글을 써나간다 볼 수 있으리라.
(여담이지만, 어떤 의미론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간 추리소설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고 본다. 공상, 판타지가 들어간 시점에서 이미 이 글은 현실의 세계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자를 설득할 수 있을 만한 논리적 전개나 제약 등을 통해 이런 요소들을 포함해서도 나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대안 현실을 제시하는 식이다.)
그래서 실제로 펼쳐본 하드 SF 소설집이 어땠느냐. 첫 단편 <리얼리티 체크>가 그야말로 갑자기 훅을 날렸다. 농담기 다분한 짧막한-책 지면 상으론 다섯 페이지에 불과한-단편이었지만, 분위기를 전달하는 점에선 다른 어떤 장편보다도 기가 막혔다. 모든 것을 계산해낼 수 있다고 믿는 과학자를 온 세계를 머릿속에 품은 꿈꾸는 신으로 비유하고 그를 깨우기 위한 리얼리티 체크 메시지를 보여주는데, 그 판타지스러운 내용들과 상반되는 비유가 이 감상문 상단에 적은 '태도'에 대한 문제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방식이 어떻든, 그 본질은 진지한 시도에 있다고 말이다.
읽으며 제일 흥미로웠던 단편은 브라이언 스테이블포드가 적은 <어느 성화학자의 생애>다. 성적 매력이 전무한 남성 생명공학 과학자가 부호의 연구 지원을 받아 이성을 유혹하는 물질을 몸에서 분비하는 기술을 만들고, 이 기술에서 점차 어떤 식으로 기술이 나아가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주인공의 삶 역시 매번 극적으로 변한다. 테드 창의 단편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가 이 글을 읽고 감명 받아 쓴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연상시키는 점이 많았다. 물론 글의 형식 자체야 다르다지만, 세상이 이 성적 매력을 조작하는 신기술로 인해 어떤 식으로 변하는지를 냉소적으로 이야기하며 묘하게 헛웃음 나면서도 나름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는 것이 그랬다.
(상당히 흥미로워 이 저자의 글들을 더 찾아보니, <성화학: 유전적 진화에 대한 냉소적인 이야기들Sexual Chemistry: Sardonic Tales of the Genetic Revolution>이란 이름으로 비슷한 주제의 소재들을 다룬 단편들을 엮은 단편집이 있었다. 번역이 나올 것 같진 않으니 추후 여유가 생기면 방 한구석에서 묵혀만 두고 있는 킨들을 꺼내지 않을까 싶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애매했던 단편은 마이클 플린이 쓴 <시간의 모래성>이었다. 어떤 점에 초점을 두고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다르겠다고 여겼던 것이, 이 글이 하드 SF라는 이름을 단 단편집에서 보인 것이 아니라면 어떤 어색함도 느끼지 않고 글을 좋게 평가했을 것 같다는 점이다. 이 글의 소재는 '과거의 사건을 변화시키는 어떤 영향력을 과거로 보냈을 때, 이 영향력으로 인한 변화는 모든 물리적 사건이 그러하듯 즉각적이지 않고 그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일정 속도로 다가오며 어느 순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현재가 이 변화된 과거에 걸맞는 다른 현실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그 소재를 잘 살리기 위해 단편의 앞부분에 있었던 인물 중 하나는 단편이 끝날 쯤 어딘가로 사라져 있고 작중 누구도 부재를 눈치채지 못한다.
재밌는 연출이었고 잘 쓴 단편이었지만 뭔가 좀, 다른 단편들에 비해 SF스럽다는 느낌이 옅은 글이었다. 외려 <리얼리티 체크>와 같은 글보다도 더 판타지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이 시간과 관련된 요소 자체가 너무 판타지적으로 남용되었기에 이 정도의 변화구로는 소위 '하드'하다는 느낌을 주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쿼런틴>과 <슈타인즈 게이트>와 같은 SF 소설들이 현재엔 완전히 반박된 '사건의 관측에 있어서 인격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에 지금 보면 약간 SF로서 어설프다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전체적으로 약간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이 단편집의 글들은 전부 낙관적이다. 개인적으로 SF 단편 중 아시모프의 <전설의 밤>을 가장 좋아하기에, 이 하드 SF 단편들 중에서도 그런 우주의 장대함에서 말미암은 공포를 다룬 글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건만 딱히 그런 건 없었다. 어쩌면 너무 과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너무 익숙해졌고 자신이 모르는 영역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애초에 딱히 건들 일이 없는 영역이라는 인식이 확실하기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나도 저거 1,2권 읽어봤는데 어떤 건 하드 sf라기엔 애매하고 몇몇 작품들은 다른 작품들하고 퀄리티 차이가 좀 느껴졌음 내가 가장 재밌게 읽었던건 그렉 이건 내가 행복한 이유하고 그 다음 작인 붉어지기만 하는 이유였다. 붉어지기만 하는 이유는 절대 하드 sf 작품이 아니였지만 발상이 독특했고 거기 나온 설정이 완전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점을 다뤄서
기억에 남음
2권도 빌려왔는데 기대되네 둘 다 2권에 있는 거 같은데
ㅇㅇ 맞음
장수제 홍인수 님은 저 책 번역하고 박사 따러 유학 떠남. SF 판타지 도서관 설립 행사에서 저녁 같이 먹으면서 유학 계획을 들었었는데, 지금은 어찌 지낼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