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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때 썼던거라 좀 미흡함. 쭉 써봤던 거라, 그냥 한 번 재미로 읽어봥. 다음번엔 김승옥 역사 분석했던거 가져와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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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서 지성으로

난 어린 소년이에요. 13. ( I’m a little boy. 13 years old.)[1]몇 살이냐는 질문에 채팅 로봇 '유진 구스트만'이 한 대답이다. 최근에는 구글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듀플렉스'가 사람과 대화하는 시연을 보이기도 했다. 인류가 드디어 자신과 대화 가능한 상대를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반대로 인간이 무엇인가에 관한 논의가 거세지고 있다. 국립 국어원에서는 인간을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2]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언어를 사용하는 로봇들이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위의 정의는 썩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는 동물들을 모두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 본 글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을 중심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살펴보고자 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인간을 “불어오는 모든 바람, 우연한 말 한마디에도, 그 말이 전달해 주는 장면에도 감동을 받는 존재”[3] 라고 설명한다. , 인간이란 공감하는 능력을 갖춘 존재라는 말이다. 이는 비단 프랑켄슈타인 박사만의 생각이 아니다. 괴물과 엘리자베스, 클레르발을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이 공유하는 시각이다. 클레르발과 엘리자베스가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장면들과 괴물이 드 라시를 보는 장면들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단 이때 말하는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동조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공감'이 아니라, 자기 자신 외 일체의 사물에 대해 감정을 느끼는 넓은 의미의 '공감'을 의미한다. 위 관점에서는 클레르발과 엘리자베스의 감수성, 프랑켄슈타인의 사물에 대한 호기심 모두 '공감'에 포함된다. 괴물이 『플루타르크 영웅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실낙원』을 읽으며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행위 또한 '공감'이라 볼 수 있다(185).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은 '괴물'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괴물'이 나타나면 쫓아내려 무기를 동원하고, 여의치 않으면 도망가버린다. 심지어는 이방인인 사피를 받아들인 드 라시가족과, 마찬가지로 외부인을 거리낌 없이 가족으로 받아들인 프랑켄슈타인가족도 괴물만큼은 인간으로 보지 못한다. ‘괴물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두 가지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괴물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재료들을 엄선했고”(94), 결과적으로 괴물의 사지는 적당히 균형 잡혀있었(94). 그러나, 그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괴물이 사람으로 못 볼 정도로 흉측하게 생겼다고 진술한다. ‘프랑켄슈타인박사의 묘사에서 그 흉측함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의 누런 피부밑으로는 근육과 그 밑의 혈관들이 보일 지경이었고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칼은 길게 늘어져 있었어요. 이는 진주처럼 희었습니다. 그러나 이 멋진 이는 희끗희끗한 암갈색 눈자위와 거의 같은 색깔의 눈물 어린 눈, 주름진 얼굴, 일직선을 이루고 있는 검은 입술과 더 끔찍한 대조를 이룰 뿐이었습니다.”(94)

괴물의 신체는 부분적으로 사람의 신체와 다르지 않지만, 각 부분이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행위가 인간의 정신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프랑켄슈타인박사는 설명한다(92). 결국, ‘괴물은 적합하지 않은 방식으로 창조된 부자연스러운 존재라는 점에서 기존의 인간들과는 궤를 달리하며, 그 사실이 괴물의 외견에 드러나는 것이다.

다음으로, ‘괴물에게는 자신에게 공감 능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사람과 다르다. 앞서 말했듯 괴물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괴물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기에 앞서 반드시 자신이 사람임을 증명해야만 한다. 바꿔 말하자면, ‘괴물은 자신에게 공감 능력이 있음을 보여야 한다. 『프랑켄슈타인』에서는 증명의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증인에 의한 간접 증명과, 대화를 통한 직접 증명의 방식이다.

잠깐 저스틴의 재판을 살펴보자. '저스틴'이 처했던 상황은 괴물과 몹시 흡사하다. 그녀는 살인죄로 기소됐고,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간성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녀는 차례로 엘리자베스와 저스틴을 알고 지낸 사람들을 증인으로 소환한다. 그리고, ‘엘리자베스프랑켄슈타인 부인의 마지막 병상을 지키며 너무나 다정하고 극진하게 간호했던과거를 소개하며 그녀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역설한다. 그러나, '괴물'은 다르다. 그는 “다른 존재와 아무런 연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185) , 그 탓에 자신이 '공감'의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사람이 없다. ‘괴물에게는 간접 증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직접 증명의 방식 또한 다를 바 없다. 그는 자신의 인간성을 증명하기 위해 언어를 배우고, 책을 읽는다. 하지만, ‘괴물의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의 말그를 동정하는 마음이 생겼지만, “흉측한 거구가 움직이모습을 바라보자 속이 메스꺼워지면서 두려움과 증오심으로 마음이 바뀌었다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독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207). ‘괴물의 외견이 직접적인 증명을 방해하는 것이다. ‘드 라시가족과의 만남에서도, ‘괴물에게 해명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괴물의 외견 때문이다. 이 부분은 엘리자베스의 간절한 증언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증거 앞에 유죄 판결을 받은 저스틴과 겹쳐 보인다.

증명할 방법이 없기에, ‘괴물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지 못한다. ‘프랑켄슈타인박사는 자신이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괴물공감할 수 있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괴물이 사악한 존재라고 월턴선장을 설득한다. ‘월턴선장 또한 괴물과 대면 후 단 한 번도 그를 사람이라 부르지 않는다. “내가 고통도 모르고 후회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겁니까?”(299)라는 '괴물'의 물음은, 증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등장 인물들을 향한 억울함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위의 논의는 괴물은 인간에 비견할 만큼 공감 능력이 풍부하지만, 탄생 과정이 다르다는 사실과 공감 능력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물들에게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 자연스러운 탄생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면 생각하는 동물도 인간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고 프랑켄슈타인박사와 여타 등장 인물들은 단언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 『프랑켄슈타인』은 단정짓지 않는다. 대신 인간과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공감할 수 있다면 그 존재를 인간으로 볼 수 있을 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묻는다. 그리고, 혹시 우리가 괴물을 너무 섣불리 괴물이라 낙인 찍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처음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자신이 13살짜리 소년이라고 주장하는 로봇이 존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아직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자신 또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로봇이 나올 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 로봇에게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태어난 인간이냐고 묻는 대신, ‘공감의 능력을 갖춘 지성이냐고 묻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https://www.kurzweilai.net/mt-notes-on-the-announcement-of-chatbot-eugene-goostman-passing-the-turing-test

[2] https://www.korean.go.kr/front/search/searchAllList.do

[3]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이미선, 황금가지, 2009, p.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