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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독갤로 유입되기 전에 이미 이 책을 읽었었다. 하지만 갤에서 너무 자주 <마음>이 언급되는 것 같아 구태여 감상문을 적을 생각은 없었지만, 재독 후에 느낀 점이 첫번째 읽었을 때와 확연히 다른 것이 있어서 한번 써보기로 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이 책은 필자에게 그저 수많은 고전들 중 하나였다. 그래도 일문학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던 필자에게도 나쓰메 소세키의 이름은 유명했기에 읽을 생각이 든 건 다행이었다. 첫 만남과 재독은 우선 이런 들어가기 전 자세부터가 달랐다. <마음>을 처음 접했을 때는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난 작품 자체만을 느낄 수 있었지만, 어느정도 일문학을 읽고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에 대한 지식이 있는 채로 읽는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우선 필자는 처음 읽을 때 노기 장군의 죽음이라든가, 메이지 천황의 붕어 같은 사건들의 상징적인 의미들을 모르고 있었다. 왜 주인공의 아버지는 노기 장군과 메이지 천황을 따라간다고 생각을 했던 건지, 이렇게까지 그들이 생각했어야 했던 건지 필자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 둘의 죽음은 단순히 유명인사의 죽음 같이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었다. 메이지(明治)라는 한 시대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국제 정세는 매우 혼란했다. 본격적으로 일본이 외부로 진출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을 때였고, 러일전쟁 직후의 열기와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가 주는 광적인 분위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천황이 죽고, 동시에 한 시대가 죽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감정들을 남겼을 것이다. 이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같은 혼란이나 공포, 그리고 새 시대를 직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무감. <마음>은 그런 시대의 끝과 과도기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과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담아낸 책이었다.
처음 읽을 때는 이런 것들을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술술 읽히는 문체와 매끄러운 서사 전개 같은 면모에만 약간씩 놀라움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이라는 이 등장인물이 이해가 가지 않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수수께끼 같은 말만 주인공에게 남기고, 염세적이고 인간불신의 면모를 언뜻언뜻 내비치는 것이 기분 나빴다. 이런 선생님에게 끌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바보같게만 느껴졌다.
물론 다시 읽은 지금도 선생님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생님에 대한 인식이 바뀐 부분은 상당히 많다. 우선 선생님은 마냥 나약한 인간만은 아니었다. 필자는 처음 읽을 때 선생님은 결국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파국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선택은 선생님 나름의 용기의 발로였던 것이다. 나약한 자신을 닫고 일어서, 자신의 죄와 속죄하려는 선생님의 최후의 용기. 더 이상 눈돌리지 않고 정면을 쳐다보려는 선생님의 의지. 아내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비밀을 주인공에게 털어놓은 것을 시작으로 선생님은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던 것이었다. 결코 자신의 죄를 견디지 못하고 그런 선택으로 도피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선생님은 죄를 짊어진 그 순간부터 도피하고 있었다. 세상에 등을 돌리고... 인간에게 등을 돌리고... 그러던 차에 주인공이 그를 알고자 노력하고, 메이지 시대의 종말이 고해진 것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자신의 죄를 다음 시대까지 끌고 가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주인공이 선생님에게 큰 관심을 보였던 것도 이런 면모였을 것이다. 지위나 명예, 돈 같은 세속적인 가치는 물론, 사람 그 자체를 거부하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궁금증을 느낀 것이다. 분명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예감. 그리고 그는 아직 정해진 미래도, 비전도 없는 일개 대학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나름의 확고한 길을 걷는 선생님의 모습은 어딘가 구도적인 면모를 띄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모들이 종합되어 주인공은 선생님이라는 사람에게 그토록 끌린 것이다. 세속적인 것들에 집착하는 자기의 가족을 보면서 그런 감정을 더욱 느끼는 모습은 작중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것이 재독의 힘이다! 두번째 읽는 책이란 이토록 다른 감상을 준다. 여태까지 무슨 책이든 대부분 한 번 읽고 말았던 필자의 행동이 부끄럽다. 정말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보인다. 필자의 머리속에 있던 <마음>이 재구성되는 기분이다. 아니, 기분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마음>은 필자에게 처음과는 다른 무언가를 남기고 갔으니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재독의 영역에서 실감날 줄은 몰랐다. 앞으로 종종 재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대한 작가들이 왜 위대한지 더욱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여담으로, 시대의 이단아였던 미시마 유키오 역시 스승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던 것 같다. <마음>과 <봄눈>은 같은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공유한다. 도쿄와 가마쿠라를 왕복하는 주인공, 노기 장군 할복 사건과 러일전쟁의 영향. 그리고 그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 군상들. 비록 둘이 담으려 했던 주제는 판이하게 달랐지만 어딘가 닮은 구석이 참 많았다.
님 인생책임?
그건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