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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이승우 생의 이면


사람이 노출 본능 때문에 글을 쓴다는 말은 거짓이다. 더 정확하게는 위장이다. 사람은 왜곡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현실이 행복해 죽겠는 사람은 한 줄의 글을 쓰고 싶은 충동도 느끼지 않는다. 오직 불행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만이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때 그는 펜을 들어 자신의 불행한 현실에 마취제를 주사한다. 독자들 또한 그 마취제를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책은 무극사에서 공부에 매진하는 신화 속의아버지, 아들을 떠나 경찰 공무원의 아내가 된 어머니를 가진 박부길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아버지는 정신 질환으로 인해 금지된 장소인 뒤뜰에 있는 독방에 갇혀 지내다 가 건넨 손톱깎이로 자살하고, 쫓겨나다시피 마을을 떠났던


어머니는 만나지도 못한 채 자란 박부길은 자취방의 어둠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는 이따금 한강의 중지도로 나갔고 익숙하지 않은


이질적인 존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중지도에서의 우연한 사건을 통해 그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바꿔 줄 한 명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숨이 가쁘게, 쓰러지기 전까지 달려 우연히 들어오게 된 건물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그녀, 김종단을 만납니다. 그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칩거하다시피 하던 안락한 자취방에서 나왔고, 완전히 매료되게 됩니다. 이후, 그는 그녀를 보기 위해 자주 예배당으로 향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예배당은 그에게 친숙한 장소가 되어갑니다. 착잡한 마음이 생겼을 때 찾아온 장소는 예배당이었으며, 그가 살아온 이야기,


지금까지 억누르며 하지 못했던 이야기, 진실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진심 어린 기도를 통해 호감을 가지던


그녀와 동질감익숙함을 찾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이 생긴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위해서 신학을 공부하기로 합니다.


신학은 가 걸어온 길이 아니었으며 걸어갈 길도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선택했던 도구일 뿐이었죠.


그러나 그녀를 위해 신학을 공부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굳건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사랑을 받지도, 해보지도 않았던 그는 그녀와의 사랑에서


집착이라는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는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으며, 이성을 잃고 흥분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그녀와의 관계는


외줄을 타고 있는 것처럼 불안했겠죠. 그리고 감정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고조되었을 때, 그는 감정에게 잡아 먹히고 말았습니다.


그 대가는 잔인했죠. ‘를 바꿔 놓고 사랑해준 그녀를 앗아갔으니까요. 그 이후 그는 신학 공부를 그만두고 다시 좁고, 어둡고, 눅눅한 자취방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 곳에서 몇 날을 어둠속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이야기를 마음 놓고 솔직하게 늘어놓기 위해서기도를 하는 사람들처럼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털어놓습니다.



박부길은 외로움에 물들어 있을 때 엄청나게 많은 책들을 읽어냈습니다. 그는 그의 행동에 게걸스러운 난독이라는 이름을 붙였죠.


그리고 그 동기는 피난과 수련이었습니다. 피난은 - 가난과 외로움, 적대감과 화해할 수 없는 치욕의 세계로부터 멀리 달아나기 위해


몸을 감추고자 하는 마음, 수련은 - 되도록 멀리 날아나 몸을 숨기되 언젠간 도망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를 상정해 은밀히무기를


다듬고 무예를 익히는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하지만 책 읽기가 수련이 되기 위해서는 진지하게책을 읽어야 했죠.


그래서 박부길은 자신의 책 읽기가 비생산적인 울분을 키우고, 부질없는 적대감을 끓게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두 동기가 다르게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동기일 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동전에는 안과 밖이 있지만 그 누구 도 두 개의 동전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박부길에게 자신의 좁고 눅눅하고 어두운 자취방은 어둡고 폐쇄적인 자아가 안락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찾아간 예배당에서 희망을 얻고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며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마음속의 짐을 털어낼 수 있는 장소였죠.


그러나 결국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없고,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은 희망을 가져왔던 예배당에서 마주치게 되죠.


반대로 좁고 눅눅하고 어두운 자취방은 다시금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서 글을 쓰고 내면에 있는 감정들을 꺼낼 수 있는 아늑한 장소로 변하게 됩니다.



또한, ‘나와 다르기 때문에 이끌리는 사람들을 꺼려했던 그에게 유일하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그녀였습니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갇힌 것처럼 자취방에 갇혀 있었고, 그로 인해 생겼던 폐쇄적 분위기에 홀렸던 것입니다.


동질감을 통해 얻게 된 익숙함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위해서는 어떠한 것도 하겠다는 성심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 사건 이후에는 그를 떠나버리고 말죠.



그래서, 예배당과 자취방, 동질감과 이질감처럼 나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절망을 가져오는 어떠한 것.


그것이 시간이 되었든, 장소가 되었든, 내가 만나는 사람이나 사건처럼 나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이 단편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이면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은,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 태도나


의지를 이면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네요 (물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고요).




'진실된 내 마음과 감상을 써 내려간 글' 은 사실상 처음입니다.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해서 강제로 읽히지도 않던 책을 꾸역꾸역 읽어 에세이를 작성하고, 감상평을
써왔던 지금까지의 글이랑은 전혀 반대네요. 책을 읽은 뒤 드는 생각은, 한 마디로 '충격적이다' 였습니다. 지금까지 읽던 서술의 방식과 다르다는 것이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는데,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 (1인칭이라 하는)를 직접 써내려가거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서술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던 기존의 소설들과는 달랐습니다.
책의 초반부는 '책을 잘못 샀나?' 라는 착각을 들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한 서술자를 또 다른 서술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사실 글을 쓰면서도 책의 핀트를 잘못 잡지 않았을까 하는 고민도 했지만, 작가가 명확히 '이면'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은 이유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이 제시한 '이면'
이라는 용어를 정의해보라는 일종의 과제를 내줬다는 생각을 하며 건방지게 저만의 '이면'을 정의했습니다. 즐겁습니다. 오랜만에 순수하게 책을 즐겼다는 것이
재밌었습니다. 추천받았던 책이 처음부터 임팩트 있었다는 것이 기쁘고 다음에 읽어볼 책들을 더 기대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