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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보여주는 세상은 언뜻 보면 유토피아를 연상시킨다. 과도한 노동이 없고, 계급사회이지만 하층 계급에 대한 육체적, 제도적 탄압도 없다. <1984>처럼 국민들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막강한 정부도 없다.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폭풍야스를 즐긴다. 촉각까지 느껴지는 영화를 보면서 독붕이들이 평생 하지 못할 연애와 순애 야스를 간접체험하기도 한다. 다른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보이는 부를 독차지하는 상류층과 죽도록 쥐어짜이는 하위 계급은 없다. 이거 완전 개꿀 아닌가.

 

작가는 신세계 안에서 쭉 살아온 시민들의 시각으로 초중반부를 전개하면서 이 신세계의 편리한 점이나 장점을 보여준다. 모두가 개인보다는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는 세상. 알파 더블 플러스 계급부터 엡실론 계급까지 모두 이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계급과 하는 일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차별은 없는 것이다. 사람은 공장에서 찍어 낼 수 있기에 모두가 각자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각자 계급에 필요한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 멋진 신세계 속에서 사는 시민들의 시각으로 보는 사회는 유토피아 그 자체다.

 

 하지만 작가는 야만인 을 작품에 등장시킴으로써 유토피아의 문제점을 전부 까발려 고발한다. 사람들은 사회의 부품이 됨으로써 개인의 자아 실현의 욕구를 잃었다. 자유롭게 수많은 이성과 폭풍야스를 하지만 사랑을 키워가며 겪는 설렘과 아픔, 희열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인기 많은 촉각영화는 전부 싸구려 포르노 같은 스토리로 가득하고, 이전 시대의 창작물에서 보이던 낭만과 여유는 오래 전에 잊혔다. 아무도 죽음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다. 사람들은 개미굴 속 개미들처럼, 기계의 부품처럼 더 큰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한평생을 바치다가 수명이 다 되면 그냥 교체당한다. 시민들이 신세계 속에서 느끼는 자아 실현의 욕구나 제도의 이질감은 최강 마약 소마로 억제된다. 소마는 존나 최강이다. 아무리 우울해도 머릿속이 혼란해도 조금만 빨면 사람을 바로 홍콩으로 보내준다. 그렇게 사람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욕구를 억제당하면서 기계 부품처럼 살다가 죽는다. 기계 부품처럼.

 

 개인적으로 가장 최고라고 꼽는 장면은 레니나와 존이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과 낭만이라는 그 뜨거운 감정, 사랑하는 상대를 향한 끝없는 헌신이 신세계 안에서 어떻게 변질되었고 유린되었는지 가감없이 폭로함으로써 작가의 의도를 아주 잘 드러내는 개쩌는 미친 명장면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씨발 진짜 읽으면서 소름이 존나 돋았다. 신세계 안에서 사랑은 그냥 섹스였다. 사랑의 설렘을 처음 느껴서 어쩔 줄 모르던 레니나는 항상 하던 대로 옷을 벗고 존에게 달려들었다. 그것 말고는 사랑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기에 그냥 옷을 벗었다. 하지만 레니나의 사랑의 표현은 존의 눈에는 더러운 매춘부의 유혹으로 보일 뿐이었다. 레니나는 자신이 무얼 잘못 하고 있는 것인지 끝까지 몰랐다. 레니나와 신세계의 시민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겼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그런 것들을.

 

 

상상력이 진짜 미쳐돌아가는 작품이었음. 능력 있는 작가가 꾸며 낸 사회를 탐험하는 일은 진짜 너무나도 재미있는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