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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이라서 옆에 책도 없으니 일단 생각나는 중요한 장광설 몇 개만 간단하게 살펴 보겠음.



<죄와 벌>

1. 마르멜라도프의 술집 독백.

<가난한 사람들>의 주인공 혹은 도끼 자신(유부녀가 미망인이 되자 결혼함)을 닮은 순정남이

어쩌다 딸을 창녀로 내몰아야 하는 상황에까지 빠졌고, 그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하는지를 대단히 속도감있게 보여줌.


자체로 죄가 될 정도의 가난,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에 빠진 인간의 자포자기하는 심리,

이후 참회와 변화의 서사를 이끌 사실 죄와 벌의 내용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소냐라는 인물의 전사 등을 이 독백 하나로 해결함.


어지간한 작가들 같았으면 이 에피소드 만으로도 최루성 강한 중단편 하난 거뜬히 뽑아냈을 거임.

그런 밀도를 가진 이야기를 곁다리 서사로 장편 속에 우겨넣었는데 장광설이라고?



2. 로자와 포르피리의 대화

뛰는 로쟈와 나는 포르피리의 현란한 수 싸움. 무협지(를 읽어본 적은 없지만)를 방불케 할 속고 속임의 연속.

나름 합리적이있던 로자의 범행 논리와 세계관, 자존심 등이 포르피리의 말빠따로 무너지다 이내 붕괴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대화.


재미와 동시에 로자의 아집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논리적으로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보여주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

때려죽어도 자기 나름의 신념과 개논리를 포기하지 않았을 게 로자인데, 이걸 논파하는 부분 없이 죄와 벌의 나머지 서사가 가능했다고 생각함?



3.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독백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분. 후술할 악령의 스따브로긴과 함께 도끼 세계에서 답 없는 악인 투톱.


악령의 스따브로긴의 내면이 어떠한지는, 사실 도끼는 발표하길 원치 않았던 '스따브로긴의 고백'이라는 원고를 통해 다소 촌스럽게 표현되지만

죄와 벌 속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언뜻 본질을 피해가는 한담같은 톤으로,

자신을 피부 아래까지 팽창시킬 듯 꽉 채우고 있는 무시무시한 허무주의와 혼란,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의 다면성을 소름끼치도록 잘 보여주고 있음.


게다가 로자를 참회하게 하는 표면적 캐릭터가 소냐라면, 난 진짜 로자를 자수하게 한 캐릭터는 이 인간이라고 생각함.

(자살을 말하는 건 아님. 자세한 얘긴 지금 하긴 귀찮음) 어쨋든 이 꿀잼 캐릭터의 내면을 샅샅히 보여주는 대사들이 뇌절이라고?




<까라마조프>

1. 조시마의 설교와 대심문관썰.

이미 철학, 신학적 가치가 공인됨. 그게 아니고서도.. 도끼의 독실한 민족주의적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낙관을 담은 것이 조시마의 설교라면,

대심문관 썰은 이 믿음의 내적 그림자라 할 수 있는, 기독교 사상에 대한 뿌리깊은 회의와 의문을 토로한 부분이라 생각함.


어째서인지 경전이나 후대 신봉자들을 위한 현실적 종교의 지침을 마련해 놓지 않고 피안으로 떠나버리는 종교 창시자들과

그 사상을 실체화해 이 땅에 그 종교의 제국을 세우는 자들이 막닥뜨릴 수 밖에 없는 모순과 병폐들을 되돌아 보게 함.


조시마의 사상이 새로운 종교적 이상으로 구현된 지상천국의 화려한 조감도라면,

대심문관썰은 그것을 실체화하기 위해 넘어야하는 난관과 기초공사를 보여주는 장면임.



2. 이반과 악마의 대화

내가 까라마조프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 끝없이 의심하는 인간 존재 앞에 드러난 사탄.

역시 추리나 법정소설처럼 논리적으로 탄탄하고 밀도높은 대화 속에서,

섬망과 실체 사이를 오가는 악마의 존재가, 이반 이성의 핵심적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의심하는 정신'을 틈타 역설적으로 자신의 실존을 주장해내는 장면.


사탄, 혹은 악에 대한 어떤 정의보다 난 도끼의 이 문학적 정의가 인간 내면의 악에 대한 본질을 잘 포착했다고 생각함.



3. 일류사나 그 아버지의 독백들

이것까진 내가 반박안해도 되겠지? 이 부자의 서사가 장광설로 느껴진다면 넌 스비드리가일로프 못잖은 싸패임.




<악령>

1. 베르호벤스키 부자의 대화들

아버지는 무력한 러시아의 귀족 및 지식인 계층. 아들은 알맹이없고 인간에 대한 선의도, 심지어 본인의 신념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

다크나이트의 대사처럼 '그저 세상이 불타는 것'을 보고 싶은 욕심뿐인 분탕주의자.


결국 이 인물들의 대화로 도끼는 어쩌다 러시아의 기성 세대가 지금처럼 무력하고 어리석은 병신이 되었는지를 신물나게 잘 보여주는 동시에,

그런 기성세대의 방임과 무책임 속에서 새로운 세대들은 어떤 악덕에 물들어 가고 있는지를 소름끼치도록 잘 묘사하고 있는 거임.




결론

소설에서 장광설 혹은 뇌절은 무가치한 이야기, 혹은 한 이야길 또 하는 중언부언,

혹은 작품의 서사나 주제의 흐름과 심화에 아무런 기여도 못하면서 작가의 현학과 자뻑 때문에 늘어진 부분을 뜻하는 걸 거임.

그런데 적어도 내가 읽은 도끼의 주요 장편 속에선, 위의 조건에 걸리는 내용은 단 한 곳도 없음.


도끼 작품이 장광설 및 뇌절로 느껴진다면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임.

1. 위 기준에 부합하는 진짜 뇌절과, 어렵지만 가치있는 글을 구분하는 능력이 없음

2. 19세기, 현실적으론 농노제가 남아있던 러시아의 대중들만도 못한 독해력과 이해력을 가지고 있음.

(도끼 소설은 당대 잡지에 연재된 경우가 대다수였고 당시 대중들은 이 소설을 대단히 좋아했음)


뇌절은 도끼 소설이 아니라,

소설 하나 제대로 못 읽으면서 허구헌날 뇌절 장광설이라고 올려대는 징징글이 진짜 뇌절임.


염병들 떨면서 갤에 불평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주의깊게 읽어보길 바람.

도저히 못읽겠으면 그냥 집어던지고 어려워서 못 읽겠다고 인정하던가.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이 가르치던 촌의 학생들에게 했다는 말마따나,

도스토예프스키가 멍청한 독자 수준으로 내려올 순 없으니 독자가 올라가려고 노력하는 것 외엔 답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