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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카리오'를 보고 난 뒤 미국작가 돈 윈슬로의 소설 '개의 힘'을 완독했습니다.

무엇보다 시카리오나 여타 멕시코 마약 범죄에 대한 영화들 및 기사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마약카르텔의 자세한 실상들을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통해 잘 파악할 수 있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고어 사이트나 해외단신을 통해 잔혹한 사건 위주로 현세의 지옥도처럼 그려지던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현실이란 알고 보면 단순히 포악하고 무질서하길 넘어서, 마약 범죄가 실은 국가적인 음모와 치밀한 국제적 역학 관계 아래 조장되고 계획된 하나의 거대한 음모의 하나라는 사실이 그들 세계의 잔인무도한 행태들과 맞물려 그 현실의 지옥도를 그저 먼나라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마치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듯한 사실적인 긴장감과 스릴로 간담 서늘하게 그려내었습니다.


하지만 국가적인 마약범죄라는 큰 주제 아래 긴 세월 다양한 군상들의 사연을 정부기관 파견원 마약조직 연인관계 등등 각자 위치의 역할들을 통해 사건으로 연계시키는데 중점을 두다 보니 정작 개개인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동기 면에서 당위나 설득력이 좀 부족하다고 느껴졌었고, 멕시코의 온 사회계층이 마약범죄조직에 휘둘리며 계엄령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까지 치달으면서 왜 그토록 무법천지로만 국가가 내내 시달리며 방치되고 있는지 그 사회적 연원과 일반 사회의 실재적 고통은 전혀 진단하지 않은 체 오직 마약범죄와 그 추적 자체만을 스릴있게 다루다보니 장르소설로 뛰어나긴 해도 독자로서 아쉬워지는 부분은 물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각기 다른 행동과 사건들 인물들 사연들이 거대한 암투와 대결을 바탕으로 서로 치밀히 연계되어가는 디테일한 상황 묘사와 긴박한 사건전개들이 그 결점들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어요.

몇년 전까지 리들리 스콧 감독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주인공 '아트 켈러'역으로 영화화를 진행시킬 거란 소식이 들렸는데, 마약수사국의 주인공 이 미국 멕시코 혼혈에다 눈에 띄게 장신인 역할론 좀 맞지 않다 싶었지만, 읽으면서도 자연스레 디카프리오의 연기가 인물에 이입되는 걸 보면 한편으로 레오의 다소 신경질적인 표정과 사람 질리게 만드는 결연한 의지가 소설 주인공 아크 켈러의 거대마약조직을 혈혈단신 일망타진하고자 하는 시니컬한 정의의 분투와 꽤나 잘 어울릴 것도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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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을 불허하는 독불장군 스타일의 CIA 출신 마약 수사반 아트 켈러


그리고 아트 켈러의 영원한 맞수이자 자기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조직을 위해서라면 어떤 잔혹한 짓도 서슴치 않는 양면성의 냉혈한 '아단 바레라'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남주가 그냥 처음 소설 읽자마자 딱 적격으로 떠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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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차도남이지만 그 속은 야수가 들어찬 복수의 화신


마지막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기원이자 꼭지점. 아단의 삼촌이자 정부관료이며 동시에 멕시코에 대규모 마약밀매사업을 조직해 기어이 마약의 지옥문을 열어버린 '미겔 앙헬 바레라'는 작가가 밝힌대로 실존 인물인 미겔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일명 갓파더)를 그대로 본 따온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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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한 중년의 정부관료이나 무소불위의 마약권력을 쥐게 되는 현실의 갓파더

조니 뎁이 떠오르지만 그러면 제작비가... 빌리 크루덥도 잘 어울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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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아트 켈러의 마약수사반 요원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작전 중 카르텔에 포로로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자 주인공이 피끓는 복수를 다짐하며 타협 없는 마약범죄척결의 동기가 되어주는 주요 인물은, 작품과 상관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엔리케 카마레나' 별칭 'KIKI'라는 실존 인물이 그대로 오버랩되었습니다.(미드 나르코스에서도 이 끔찍한 사건을 다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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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 출신의 마약단속국(DEA)요원 엔리케 카마레나 KIKI


사진의 엔리케 카마레나 요원은 미국의 마약조직 소탕작전 하에 멕시코 마약카르텔의 중추인 과달라하라로 발령받아 정보를 수집 제공하며 거대 마약농장을 소탕하는 데 큰 역할을 하며 카르텔 조직에 수백억 원의 피해를 입혔는데, 이에 복수의 칼을 갈던 과달라하라 카르텔이 곧 그의 존재를 파악하고는 어느날 점심을 먹으려 아내를 만나러 가던 요원을 길에서 납치해와 각성제까지 투여해가면서 이틀 동안 피부 벗기기, 드릴로 두개골 뚫기, 폭행으로 코뼈와 하악 골절 및 심각한 내부장기 손상과 갈비뼈 골절 등등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고문을 저지르다 끝내 후두부를 둔기로 내리치며 잔인하게 살해해버립니다.

요원의 죽음 뒤 미국 마약수사국은 멕시코 카르텔조직에 자비없는 대대적 응징을 가하며 수백만 달러의 현상금까지 내걸면서 도주중이던 보스들을 일제히 검거하게 되고 조직을 일망타진하게 되는데, 비록 결과는 다르지만 소설에서 전개되는 작중의 내용과 과달라하라에서 일어난 실제 요원 납치 및 이후 응징을 가하는 사건의 전개 상황이 그대로 겹쳐지죠. 작가도 분명 이 사건을 참조했을 거라 생각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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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I를 납치고문살해한 마약조직 과달라하라 카르텔 보스들의 당시 실제 현상수배 표지판


30여 년을 다루는 큰 스테일의 서사극으로 나라와 나라, 조직과 조직 간의 정쟁과 충돌에 거기 처한 인물들의 절박한 음모를 다루면서 재미를 위한 자극적 액션 보다는 범죄장르소설로써 액션 속 현장감과 범죄의 연유와 사실성에 중점을 둔 날선 긴장감 가득한 심리 묘사가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아무리 리들리 스콧 감독에 쟁쟁한 배우들을 써서 영화가 잘 나온다 하더라도 이만한 치밀한 상황 묘사와 사실적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 사실 회의적이긴 합니다.

'개의 힘'의 후속 내용이 펼쳐지는 'The Cartel'은 아직 번역이 안됐지만 이 작품 하나로도 충분히 완결성을 갖추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