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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몰락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어윤중.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공부하는 ㄹㅇ 주경야독으로 21세에 당당히 50명의 지역 유생을 뽑는 칠석제에서 장원급제함.


2. 관료 생활 시작하고 하급관리 생활 좀 하다가 전라우도 암행어사로 임명, 백성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 체감해 이를 12개조 개혁안으로 올려 조정에 올림.

   개혁안의 내용은 크게 부세감면부세운송의 폐단 제거지방행정제도의 개선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음. 

   하지만 조정에서는 일부 도서지역에서 2, 3중으로 세금 걷는 폐단만 시정하는 정도로 그침.


3. 암행어사 이후 조사시찰단으로 일본과 청나라 시찰. 

   일본정부가 단행한 세제 및 금융 개혁이 부국강병을 이룬 토대임을 간파하고 1873년에 실시된 지조개정을 높이 평가함.

   이때부터 이전의 중농주의적 부국강병론이 아닌 재정정비와 산업진흥 등 중상주의적 부국강병론으로 생각을 바꾸게 됨.


4. 귀국한지 얼마 안 가서 다시 청나라랑 무역장정 맺으러 청나라 감. 근데 협정 맺는 중에 임오군란 발생. 다시 귀국. 임오군란이 완전히 평정되고 다시 협정 맺으러 감.

   문제는 임오군란의 평정이 청나라의 무력 덕분이었기에 어윤중이 뭐 할 수 있는게 없음. 

   그래도 청나라한테 이건 좀 선 넘죠;; 하면서 청나라 상인들의 내지통상을 막고 홍삼세도 청나라 제시한 값에 절반으로 낮춤.


5. 어찌저찌 협상을 마치고 귀국한 어윤중에게 고종이 감생청을 맡김. 감생청은 재정을 긴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관이라 보면 됨. 

   근데 얘는 겁도 없이 종친부, 즉 왕족들도 10촌 이하로 한정하고 의정부 당상(정 3품 이상 고위직, 삼정승 포함)을 70세로 한정함. 

   당연히 엄청난 반발을 삼. 하필이면 어윤중이 감생청을 맡기 전에 이미 서북경락사로 임명되었기에 바로 서북경락사로 보내버림. 감생청은 흐지부지되고 반년뒤 폐지.


6. 서북경락사 가서도 토문강, 두만강 등 국경에 직접 올라 청나라랑 담판 짓고 
중강 무역 장정, 회령 통상 장정 등 북방무역 관련 장정들도 협정맺음.

   그 외에도 이미 쓰이지 않는 진보(요새)들을 폐쇄해 국방력 집중하고 함경도의 환곡문제의 해결방안 제시함.

   그러는 와중에도 20개조 정부기구개혁안 제출하지만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힘.


7. 서북경략사 활동 마치고 37세에 얻은 첫 아들보러 고향 가있던 중 갑신정변 발생, 덕분에 김옥균 등과 친했음에도 무사함.

   하지만 1896년 예조 참판 임명 후 1893년 동학집회 이전까지 반대파들의 견제로 한직만 떠돌았음.


8. 보은에서 동학집회 발생, 조정은 놀라서 보은 출신인 어윤중을 파견함. 다른 관리들과 달리 어윤중은 농민들을 비도(도적의 무리)라 칭하지않고 민당이라 지칭함.

   무력 진압을 반대하고 농민들 일일이 만나서 내가 조정 가서 니들 요구 최대한 수용하는 쪽으로 하겠다면서 잘 타일려 해산시킴.


9. 근데도 조병갑같은 인간이 계속 탐관오리질하니 전봉준이 들고 일어남. 갑오농민전쟁 발생. 이를 빌미로 청일전쟁 발생. 

   이후 일본의 입김 아래 갑오내각이 탄생하자 탁지부대신으로 참여, 재정개혁을 맡음. 이 시기때 고종이나 명성황후의 작은 요청도 법 위반이면 단칼에 거절.

   일본 입김 아래 정권에 있는 양반이 일본에서 차관 300만 원을 일본화폐로 준다고 하니 은 아니면 ㅈ까세요 시전, 결국 절반은 은으로 받아냄.

   또한 추가로 500만 원의 일본 차관을 받아 재정 정리와 민간사업 진흥 도모해 근대적 자립경제 구축하는 3개년 계획을 세움.

   그러면서도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국 등 타국의 차관 얻기 위해 노력함.


10. 그런데 고종이 아관파천하면서 갑오내각 붕괴. 어윤중은 김홍집 등 갑오내각에 참여한 관리들과 같이 민중에게 맞아 죽음.


11. 그런데 이게 꺼림직함. 자세히 말하면 길지만 책에 나온대로 결론만 얘기하자면 친러파이자 아관파천의 주역인 이범진의 사주한 죽음일 가능성이 큼.

    당장 일개 백성이 대신을 때려죽였는데도 판결이 사형은 커녕 고종이 친히 감형시켜줌.


12. 정말이지 관직 진출하고서부터 조선을 위해 뼈빠지게 일만 계속 해왔지만 결과는 그저 비참할 따름. 

    교과서에서도 별 비중이 없는 양반이고 학계에서도 온건개화파라는 입장을 견지하지만 어윤중이 남긴 글들을 보면 급진개화파라 불리는 김옥균 등과 비슷한 수준임.

    그나마 지금은 김태웅, 허동현 등의 연구 끝에 단순히 온건개화파라고 분류할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옴.


13. 암만 생각해도 고종이 개새끼임. 자기 권력 쟁취하려고 애꿎은 신하들 죽이고.. '

    전술한 내용들 보면 알겠지만 어윤중 같은 이들은 성격도 강직하기가 그지없어서 일제로부터 끝까지 고종을 옹위했을 텐데 지무덤 지가 판 꼴.어윤중과 그의 시대 -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