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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세아린이라는 판타지 소설은 양판소의 시조새쯤 된다.



당시 판소에 관심있던 중학생 고등학생들은 이 소설이 정형화시켜버린 굴레를 따라 창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양판소의 첫 이미지를 원형 그대로 가진 이 소설은,



정작 본인은 양판소 소리를 안 듣는 소설이다.



소위 통신 1세대 작가 작품이라고 말해지는, 나름대로 퀄리티가 있다고 하는 그 작품군에 속한다.



그니께, 지금도 추천도서로 번번히 꼽히는 세월의 돌이나 드래곤 라자와 동세대의 작품으로 통하는 것이다.




이런 저런 배경설명은 차치하고, 이 소설은 더럽게 불편하다.


착한 놈들은 고생하고, 못된 놈들은 썰어재낀다.


그것 자체도 불편한데다, 그 착한 놈들이라고 하는 것도 나쁜 의미로 상당히 인간적이라


모두 자신의 이득을 위해 행동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밖에 없으며,


심지어 주인공이자 가장 큰 피해자인 카르세아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못된 놈 옆의 못된 드래곤 옆의 못된 엘프 옆의 못된 드워프 옆의 못된 흡혈귀 옆의 못된 전능수의 나열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 유독 카르세아린을 다 읽지 못했고


어거지로 꾸역꾸역 간신히, 어떻게든 좀 넘겨가면서 간신히 읽어댔다.


기본적으로 해피엔딩이 당연하던 시절이었고 중간 중간의 고난도 정도가 있는건데


이 소설은 묘사가 굉장히 잔인하고 잔혹해서 견디기 힘들었기 떄문이고


무엇보다 새드엔딩인 것이다.


주인공 카르세아린은 절친의 배신으로 봉인당하며 끝난다.




여기서 이 소설을 처음 듣는 이를 위해 말하자면


카르세아린은 드래곤이고, 이 동네에서 드래곤은 신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 신들은 유희를 위해 인간세상에 깽판치는 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카르세아린은 작품에서 드래곤들이 모두 전멸당하고 남은 유일한 드래곤이다.




그러니까, 이런 역겹고 잔인하고 잔혹하며 불편한 과정과 슬프고 찝찝한 엔딩은


인간에게 있어서 해피 엔딩인 것이다.





나중에서야 이러한 찝찝함을 기묘하게 선사할 수 있는 것도


매우 독특한 재능인 것을 알았다.


1세대 작가들 중 전업작가로도 성공할 수 있던 재능이 있던 이들이 제법 있었다고 생각하는데(결과적으로 이영도 전민희 제외 전멸)


임경배라는 인물은 그 중에서도 제일 아쉬운 센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쉽다.(지금도 작가를 하나?)




가장... 소름끼치는 책을 쓸 수 있는 센스를 지닌 작가였기 때문에,


특히 요새 같이 기가 막힌 세상에서(지금은 가치의 충돌이 본격적이 되가는 시기이기에) 기가 막히게 재밌으면서 찝찝한 뭔가를 쓸 수 있었다면,


누구나 욕을 하면서 누구나 보기는 한 그런 화제의 소설이 쓰여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작금의 인간의 잔인성을 독자에게 체험시켜줄 수 있을, 훌륭한 재능이었는데 아쉽다.


그 많은 판타지 1세대 소설들 중에서도 카르세아린만은 아직도 내게 약간은 소름끼치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주의:잔인하다는 건 세세하게 묘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닌, 듬성듬성 묘사해서 오히려 무서운 그런 묘사를 의도하고 썼음. 먼 인간 썰어재끼는걸 '제길 1초에 2명씩 썰어도 시간이 부족하구만'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느낌. 상대편을 정말 나무막대기 정도로 느끼게 하는 그런 잔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