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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리뷰에 대해 많은 질문과 비판이 있었기 때문에 follow up 합니다.
1. 일단 댓글에 욕박는 유동이 있어서 저도 욕부터 박고 시작합니다. 피해자성, 언더도그마가 니 유일한 딸딸이인데 그것마저 환상일뿐이라고 하니까 빡쳤노? "저 사람이 나보다 능력도 좋고 돈도 많이 벌고 얼굴도 잘생겼는데 인성에 흠집이 있네? 인성 좋은게 가장 중요하지" ㅇㅈㄹ을 국가 단위로 하다가 사실 니가 인성조차 별다를게 없다는걸 지적하는 사람이 나오면 화가 나긴하겠지? 그게 니 유일한 딸딸인데? 세상엔 위키피디아에 없는 지식도 많단다? 그리고 지잡대 다니면 다른 사람보고 빡대가리라고 말할 자격 없지? 수능이나 다시 봐서 학벌이나 업글해라
2. 제가 '가해자'라는 다소 강한 표현을 쓰긴 했지만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나치와 같은 선상에서 가해자라고 칭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후대에 마치 그들을 숭고하고 무고한 희생양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그에 반해 레비는 보다 절제되고 객관적인 시점에서 당시의 현장을 기술합니다. 이러한 괴리감 때문에 레비를 향한 크고 작은 비판들이 있었습니다. 수용소의 생태를 가해자인 나치와 피해자인 유대인으로 나누는 이분법은 현실을 그려내기 충분치 않으면서 살아남기 위해 수용소의 환경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그들을 그저 수동적인 존재로 생각되게 만듭니다. 저는 이러한 이분법을 타파하기 위해 그들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고 했습니다만 프리모 레비는 '회색지대'라는 표현을 사용하죠.
3. 이러한 탈이분법적인 복합성을 이용하여 아우슈비츠에서 있었던 일들을 보다 현실에 가깝게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단 아우슈비츠뿐만 아니라 다른 역사적 사건들을 기술하는데도 사용할 수 있겠죠. 한국의 역사책은 단순히 일제시대의 한국인을 피해자로만 기술합니다. 이것역시 이분법이 아니면 뭡니까? 단지 소수의 친일파라는 집단을 만들어서 타자화합니다. '조선인에 의한 악행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은 친일파의 소행이요, 우리는 무관하다.'라고 말함으로써 완벽한 피해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일본육군에 입대한 조선인 숫자는 그들이 소수의 친일파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숫자였고 좋든 싫든 한국이 일제의 생산기지 역할을 한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독립군 숫자도 그들이 한국을 대변한다고 이야기하기엔 너무 적은 숫자입니다. 설령 그들이 한국을 대변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역시 완전무결한 도덕적존재들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원한다면 다른 지면에서 더 이어나가도록 하죠.
4. 물론 이미 저자의 손을 떠난 글은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프리모 레비의 회색지대"관련 논문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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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그런 게 반국뽕 유튜버들이 선동하는 거에 쓰이기도 하니까
짤 혹시 후마니타스 교재임?
아뇨 - dc App
아, 검색해보니 법학적성시험지인가 보네;;;
15년도 리트 기출 지문입니다. 요즘 검색력은 대단하네요. - dc App
얘 아직도 지가 왜 까엿는지 이해를 못햇네...
근데 궁금한 게 폴란드의 역사관을 우리가 수입했다는 것에 대한 역사적 근거가 뭐냐? 그냥 같은 현상이 두 곳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그게 인과관계가 있는 건 아닐 텐데?
저 지문 공부할때 배경지식 차원에서 은사님께 배웠음. 그때 메모라도 해둘껄 후회되네. 나중에 선생님께 메일이라도 보내본다. - dc App
프리모 레비보다 먼저 알려진, 그리고 몇 살어린 정말 위대한 유대인 역사학자가 있습니다. 피에르 비달 나케. 소위 파리학파란 이름, 베르낭, 드티엔과 함께, 고대 그리스사연구사를 바꿔놨지요. 부모님이 나치 수용소에서 학살되고, 동생과 시골집에서 숨어있어서 살아남았지요. 십대였던 그는 살아남았지만, 동생중 한명은 젊은 나이에 나쁜 선택을 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말 '젊은 유대인' '늙은 유대인' '이스라엘'에 공격을 받았습니다.
강력한 반제국주의 역사학자였던 동시에, 학살피해자였던 그는 팔레스타인문제, 중동문제에 개입을 할 수 밖에 없었지요. 우리는 학살당했다, 그렇기때문에, 학살을 거부한다. 강력한 투사였고, 실제로 프랑스 유대인들에게 '유대인 혐오자'라는 말을 들었고, 심지어 테러위협도 겪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두번째 인디파타의 실마리가 되는 영상 보셨는지요. 떠올리는 것 만으로 피가 꺼꾸로 솟지요. -즉 정세가 그랬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 dc App
그렇다면 역사수정주의는 언제 시작되었을까요? 생각보다 늦게 90년대 중반 리옹 3대학 불문학 교수에서 시작됩니다. 당연히 피에르 비달 나케와 모든 유대인 학자들이 달라붙어 검증하고 반박하지요. 프리모 레비의 첫 책은 언제나왔지요? 누가 공격했지요? 어떤 이태리 유대인 커뮤니티의 젊은이들이 레비를 증오했나요? 그냥 님 머리속에 있는 것입니다.
가해자 피해자라는 거친 논의보다 좀 더 들어가서 좋은듯. 저 글에서도 나오지만, 회색 지대가 굉장히 폭넓은 단어라서 민감해질 수 밖에 없는 주제인듯. 글의 요지는 이해됐음. 좋은 글이라고 생각함. 다만, 글의 포커스와 레비의 문제의식이 살짝 뉘앙스가 다르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듬. - dc App
일단, 레비는 정치적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음. 위에 14.32가 끊임없이 말하는 부분은, 레비의 자살이 정치적 공격때문이 아니었다, 레비는 역사수정주의를 비판한게 아니고, 마찬가지로 역사수정주의가 레비를 공격한게 아니다, 라는거임. 이게 중요한건, 레비의 논의를 현대의 친일파 논의로 가져오는게 적합한 행위인지 판가름하는 요소이기 때문이지 - dc App
레비의 자살 이유가 뭐라고 보시는지? - dc App
레비는 말마따나 인간이 이분법으로 구분될 수 없다는 얘기를 할 뿐임. 사회가 이분법으로 나누는지, 그리고 그게 잘못됐는지는 논하고 있지 않음. 그리고 이분법으로 구분될 수 없기에, 생존자는 모두 부끄러워할 수 밖에 없는거고.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말했던 "아우슈비츠 이후로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는 말은 이러한 자기 인식에서 출발하는거 - dc App
레비는 그 때 죽은 사람들을 증언하려고 했음. 예전에 레비의 자살을 분석한 논문을 읽어봤던 것 같은데, 그 증언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좌절, 살아남았다는 수치심, 말년에 찾아온 우울증과 기억력 감퇴 등이 이유인듯. 당시 사회의 공격이라기보단 개인적인 문제였다는거지. - dc App
결국 레비를 정치 얘기로 끌어오려면 훨씬 더 정교하고 철저한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는 말임. 이전 글이랑 이 글만으로는 거칠게 표현하자면 거진 선동이지. 책 내용을 너무 확대해석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게 내 생각임. 만약 그렇지 않다면 좀 더 폭넓은 인용을 해주면 좋을듯. 어쨌든 개추 눌렀음. - dc App
프리모 레비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가 첫 책을 쓰자, 모든 유럽의 유대인 지식인들이 환호를 합니다. 단지 유대인 뿐 아니었지요. 소위 뮤젤만 논의, 깊고 여러방식으로 학자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인용하고, 인용하고 또 인용하지요. 인간으로서 그는 비달 나케같은 싸움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살짝 수줍어하며, 천상 화학자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강인했지요. 그가 자살했을 때, 여러 학자들이 쓴 글들을 읽었습니다. 당혹감. 그리고 추측들. 님의 글이 빡치게 한 포인트 중 하나. 젊은 애들이 빽빽 댄다고, 자살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저 글들을 못쓰지요. 오히려 싸움꾼 비달나케보다 더 강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 dc App
님의 글에 느끼는 역사관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학술적으로 훌륭한' 많은 책을 읽기를 기원합니다. 두가지 질문, 인용하신 저 글의 저자는 누구인지요. 2. 혹시 님있는 학교 선생님이 강의 도중 님과 같은 주장을 한 것은 아닌지요. 첫번째 질문은 답해주시고, 두번째는 생략하셔도 됩니다.
임자 만난 느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