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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의 작품은 어렵지 않다. 심오한 철학도 없고 어려운 관념도 다루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살아가다 겪을법한 사건들을 그려 나간다.
인간의 관찰일기와도 같은 작품들 속에서 똑부러지는 주제의식을 찾기는 어렵지만
한 번씩 다시 읽다보면 쉬운 줄거리 속에서도 놓쳤던 인간의 여러 모습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6호 병동에서 시골의사 주인공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6호 병동, 정신 병동에 있는 한 남자 이반 드미뜨리치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는 신경 불안 증세를 보여 수감되어 있는데 생각보다 멀쩡해보였고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한 사람이라 인문학, 철학 분야를 잘 알고 있었다.
이반 드미뜨리치는 에피미치와 그리스 로마 철학 이야기를 하면서 6호 병동에 갇힐만큼 심각하게 미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에피미치는 이반 드미뜨리치에게 아우렐리우스의 스토아 철학 이야기를 설교한다.
정신 병동에 갇혀있는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전혀 도움되지 않는, 아무 쓸모도 없는 종이쪼가리같은 말들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문득 신경외과 의사의 에세이 '숨결이 바람될 때' 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의사의 위치에서 암 환자들에게 증상을 물어보면 그들은 어디가 가려운듯한 통증 등을 열심히 묘사하지만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본인이 암 환자가 되어서 그 통증을 직접 느껴보니 뼈저리게 이해가 되었다는 그런 글이 있었다.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이반 드미뜨리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상대를 절대로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적어도 상대방과 똑같은 환경에 처해져야 진정한 이해의 출발선에 서는 것이다.
흔히 쓰는 말 중에서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는데 아무리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아도 한계가 있다.
똑같은 환경에 처해도 모든 사람이 다르기에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하나의 처방전은 불가능하다.
이토록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너무나도 쉽게 너를 이해한다는 말을 하며 사람들을 현혹하고 기만하는 여러 글들이 혐오스러웠다.
에피미치는 후반부에 미치지 않았음에도 미쳤다는 의심을 받고 6호 병동에 수감된다.
6호 병동을 관리하던 의사에서 6호 병동 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환경에 놓이자 에피미치는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며 절규하고 이반 드미뜨리치는 그런 에피미치를 비웃는다.
그리고 정말 정신이 이상해서 6호 병동에 수감 중인 환자들이 있다. 그들이 행하는 이상한 행동들도 앞부분에 짧게 묘사되어 있다.
'숨결이 바람될 때' 에서는 뇌수술 전에 착하고 붙임성이 좋아 병동에서 귀여움을 받던 아이 이야기가 나온다.
뇌수술은 잘 끝난 것 같아도 여러 후유증이 찾아올 수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병원에 다시 찾아왔을 때는 수술로 뇌의 일부 기능,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생겨
식탐을 조절하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서 돌아왔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었다.
또한 자신의 병, 몸을 이야기 할 때 물리학 법칙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글도 있었다.
인간에게는 비단 죽음 뿐만 아니라 의지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도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체호프도 의사였다. 정신이 이상해져버린 환자들의 행동은 본인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체호프가 유물론적인 생각을 매우 강하게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의사라서 그런지 적어도 관념론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신 병동 환자들에게 느낀 직접적인 감정 묘사는 없었지만 다른 작품으로 유추해보면 체호프는 아마 그들을 가여운 눈길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읽는 와중에도 체호프 작품에 자연스레 배어 있는 고달픈 약자들의 삶. 가난한 자들의 슬픔. 그것들로부터 연민을 느끼면서도
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이용해먹는 인간의 모습은 더 큰 씁쓸함을 느끼게한다.
워낙 옛날에 읽어서 가물가물하지만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건 6호실 환자복에서 훈제 생선 냄새가 난다는 묘사였음. 뭐랄까 그 냄새가 훅 코를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