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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대한 감상을 썼을 때 이미 이를 읽어본 사람이 1권보단 2권이 낫다고 이야기하며 특히 좋았던 단편 두 개를 꼽았었다. 읽어보고 나니, 확실히, 2권이 1권보다 낫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두 단편, 그렉 이건의 <내가 행복한 이유>와 데이비드 브린의 <붉어지기만 하는 빛>을 최고 단편으로 꼽는다. 특히 그렉 이건의 글은 여러 가지 의미로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에 <쿼런틴>을 재독하고 쓴 감상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렉 이건이 이런 글을 쓰는 작가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다시 감상문을 보니, 이런 말을 했었다. "<쿼런틴> 역시 그 많은 유사과학스러운 양자역학 관련 소설", "일종의 SF의 탈을 쓴 판타지". 지금도 딱히 그 생각이 변하진 않았다. 하지만 단지 소재를 바꾸는 것만으로 어떻게 같은 작가가 이리 다른 글을 쓸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이해가지 않는다.
<내가 행복한 이유>는 일종의 생물학 SF 소설이다. 온갖 쾌락과 관련된 뉴런들이 암세포와 함께 괴사해 쾌락을 느끼지 못하게 된 사람이 시술을 통해 의뇌義腦를 재건해 이번엔 정반대로 온갖 다양한 것들로부터 쾌락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인데, 놀라울 정도로 그럴듯하면서 흥미롭고, 동시에 글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 '글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라는 말은 이야기를 서술해나가는 과정과 방식, 그리고 내용이 어딘가 뻔한듯 하면서도 유치하진 않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데이비드 랭포드의 <다른 종류의 어둠>이 반대 예시가 되리라. 이쪽은 아마 실제로도 아동용 글을 목표로 썼을 것이 예상되지만, 기발한 소재에 비해 글 자체는 사실상 아동 판타지와 비슷한 느낌이라 상당히 아쉬웠다.)
물론, 그렉 이건이 글을 재밌게 쓴다는 건 <쿼런틴>을 읽으면서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때 느꼈던 재미는 아무래도 내가 SF 소설을 읽겠다, 라고 생각하며 미리 기대했던 종류의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른 SF 독자는 <쿼런틴>을 하드 SF로서 누군가에게 추천받은 후, 이건 라이트노벨이나 다름 없다고 하며 어처구니 없었다고 말한 적 있다. 뭐, 솔직히 나도 그 말을 부정하진 않는다. 내가 보는 대로 세상이 변한다고 말하는 글이나,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변한다고 말하는 글이나 큰 차이가 있을까.
반면, <내가 행복한 이유>는 확실히 달랐다. 구성도, 인물의 심리도, 소재를 서술하는 방식도. 같이 전문 용어를 난무하는데 <쿼런틴>에선 그냥 작가 머릿속에서만 나온 설정용 용어인 것처럼 느껴진 것과 달리 <내가 행복한 이유>에서는 치밀하게 조사를 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소재를 물리학이 아니라 화학이나 생물학에서 찾는 게 하드 SF스러움에 있어선 더 유용한 걸까? 실제로 1권을 읽었을 때도 가장 인상적인 글은 마찬가지로 생물학 소재를 다룬 <어느 성화학자의 생애>였던 걸 생각해보면 그리 틀리진 않은 추측일지도 모른다. 심리를 다룰 때도 이런 소재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한으로만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난 인간을 그려낼 수 있으니 말이다.
<붉어지기만 하는 빛>은 상당히 짧은 글이다. 책 분량으로 열 페이지도 안 되는 글이고, 이런 SF 단편들이 그렇듯 매우 기발한 발상 하나를 표현하는 데에 그친다. 하지만 이 발상과 표현 방식이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넓어지는 우주와 적색 편이, 그리고 공유지의 비극이 어처구니 없이 얽히는 글이란. 어쩌면 저 키워드들만으로도 대충 어떤 이야기일지 추측할 수 있을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게 이 단편의 전부지만, 장담컨대 이 소재를 이 글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테다. 마지막 문장으로 주는 아이러니까지 완벽하다. "요즘 우리는 (...) 잠깐 멈춰 서서 마냥 붉어지기만 하는 빛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사회 문제, 특히 환경 문제가 이런 특이한 비유와 함께 전달될 때 참 뭐라 대꾸하기 힘든 얼얼함을 느낀다. 우리도 딱히 저 바다에 계속 쌓이고만 있는 플라스틱 섬들을 다시 바라보고 싶진 않을 테니까.
그런데 이런 감상들과는 별개로, 하드 SF라는 용어와 SF의 정치성이라는 문제에 발을 들이게 된 것 같다. 2권 끝에 붙어 있는 편집자 노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원인인데, 아마 하드 SF라는 용어의 유래나 이 책이 나오던 당시의 SF의 현주소 따위를 이야기할 거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첨예하고 사회와 밀접한 이야기가 나왔다. 과열된 우주개발 경쟁이나 미소 갈등과 같이 조금 먼 얘기가 아니라, 로널드 레이건이 SF 작가들에게 미래의 핵전쟁에 대해 자문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그와 함께 어떻게 SF의 몇몇 하위 장르들(특히, 예전의 하드 SF)이 보수화되었었고, 어떻게 새로운 SF가 먼 옛날의 SF와 같이 약간은 대책 없게도 보이지만 그럼에도 희망찬 낙관주의를 되찾았는지 등등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찾아보니 생각도 못했던 예시들을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하인라인의 글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 입장에서, 하인라인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 자체가 어떤 식으로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전까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밴드 러쉬Rush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말이 어떻게 해외 인문 계열에게 냉소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알았을 때와 비슷했다. (참고로 둘 다 같은 쪽이다.) 일단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지금은 내가 이 주제에 대해서 뭔가를 더 말할 수 있을 만큼 아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뭔가를 알고 싶어서 읽기 시작한 글에서 뭔가를 더 모르고 있다는 것만 알게 된 셈이다.
다음으론 아마 최근 구매한 <갈라테아 2.2>를 읽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흥미롭게도 을유세계문학전집 최신권으로 출판되었는데, 내 알기로 을유에서 이 전집으로 SF 같은 장르 문학을 낸 건 이 책이 처음이다. 대체 이 글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길래 이런 결심을 내렸는지 상당히 궁금해져 곧바로 샀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기를 기대한다.
계속 sf로 달리시는군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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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괜찮으면...
내가 행복한 이유는 ㄹㅇ 띵작인듯 ㅋㅋ
진짜 쿼런틴 쓴 양반이 이런 거 어캐 썻지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