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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박환, 강우규 의사 평전, 선인, 2010.
1.
어린 시절 양친을 여의고 누나 밑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30대 들어서 장사로 어느정도 성공, 이후 이동휘랑 친분쌓으며 기독교 입교 및 민속의식 고취함.
2.
1910년 합병 이후 가족들 데리고 망명, 1915년에 뿔뿔히 흩어졌던 가족들이 재회하고 1917년 북만주 길림성으로 이주, 신한촌이라는 마을 개척해 불과 세 가구였던 한인 가구가 겨우 2년 만에 100여 가구로 번성함. 학교도 세워 교장도 맡고, 3.1운동 소식 듣고 타지에서도 만세운동 벌임.
3.
그러다가 노인동맹단에 가입. 노인동맹단은 1919년 블라디보스톡에서 발기된 독립단체로 46세 이상의 회원만 받는 닉값을 지키는 단체였음. 1919년 5월에 7명이 대표로 국내로 들어가 만세를 외치고 전원 체포(체포 과정 중 한 명은 칼로 자결 시도)되기도 했고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도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음.
4.
강우규는 이런 노인동맹단에 가입한 뒤 6월에 국내로 잠입, 이때 그는 폭탄 하나를 갖고 잠입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새로 조선에 부임할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신고식을 위한 것이었음. 지인들의 집에 숙식하면서 계획을 점검하기 시작하는데 사이토가 서울역으로 올 지, 용산역으로 올 지가 확실치 않아 폭탄을 하나 더 구입하기로 했으나 당시 정보가 오고 가는 데에 차질을 빚어져 결국 애초에 갖고 온 하나에 모든 게 달리게 됐음.
5.
1919년 9월 2일 강우규는 사이토를 향해 폭탄을 투척했으나 폭탄이 사이토에게 준 피해는 허리에 차고 있던 대검을 손상시키는 데에 그쳤을 뿐 신체적 피해는 전무. 체포된 그는 공판에서도 떳떳한 모습을 보이면서 1920년 11월 29일 예순 다섯의 나이로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짐.
6.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면이 있다면 바로 이 강우규 의거의 배후로 기존 학설들이 노인동맹단을 얘기한데 반해 이동휘의 한인사회당을 얘기하고 있음. 일단 강우규는 폭탄을 얻은 게 2월이라고 재판에서 진술했는데 노인동맹단은 3.1운동 이후 결성된 단체임. 또한 노인동맹단은 강우규와 같은 의열투쟁과는 거리가 먼 단체임.
7.
대한신민당과 한인사회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김규면이 1963년 쓴 [이동휘 연대기]에 따르면 강우규는 한인사회당의 비밀특파원이었음. 이는 강우규가 망명 이전부터 이동휘와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느정도 납득이 감. 게다가 강우규는 국내로 들어오기 전에 이동휘를 만난 징후가 포착됨. 그가 국내에 잠입할 때 이동휘가 국내 인사들에게 쓴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
8.
또 당시 한인사회당에서 활동했던 정재관도 강우규 의거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인물. 김재면에 따르면 정재관은 '장인환 의거의 선도자이며, 안중근 의거의 직접 참모자이고, 강우규 의거의 직접 조직자’라는 것. 정재관은 장인환 이전에 미국 기자 스티븐슨을 먼저 처단하러 시도한 전적이 있고, 정재관과 함께 미국에서 건너온 이강이 안중근 의거의 실질적인 참모 역할을 맡았기에 그 역시 참모로 활동했었을 가능성이 있음. 아마 이러한 의열활동의 경험과 더불어 1차대전때 직접 러시아 일등병 신분으로 참전한 경험도 있는 그가 강우규 의거에 관여했을 가능성은 합리적으로 보임.
9.
위와 같은 이유로 암만 봐도 강우규 의거의 배후가 노인동맹단이라 보기 보다는 한인사회당이라 봐야 맞지 싶은데 국가보훈처, 민족대백과사전, 국사편찬위원회 등에는 한인사회당과 관련한 내용이 전무함. 오직 이 책의 저자인 박환 교수가 출연한 다큐멘터리에서나 해당 내용이 있는데 학계의 이런 연구들에 대해 빨리 빨리 반영이 됐으면 좋겠음ㅇㅇ

강우규 의사 평전 -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