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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머생, 김승옥 역사 2편임. 여기가 본편임 ㅇㅇ

그렇다... 김승옥은, 마조였다...


참고:


김승옥 "역사"

-1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96969

-2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96971


한병철 "피로 사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96575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90943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90795


최인훈 "라울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34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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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소설 속 도착적 관계

역사는 인물들간의 병적인 관계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설은 크게 두 공간 사이를 오가며 진행된다. 양옥과 창신동이다. 양옥은 아버지의 법이 지배하는 사디즘적 공간이다. 이 공간 안에선 어떤 자유도 허용되지 않는다. ‘가 기타를 키는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불현 듯이 기타를 켜고 싶어기타를 쳤으나, 이에 돌아오는 것은 오전 열시부터 한 시간 동안만 치라는 명령이다. 이 때 명령하는 인물인 할아버지는 법을 강요하는 사디즘적 인물로 볼 수 있다. 한 편, 이에 절대적으로 순응하는 며느리와 할머니, 여고생 등은 매저키즘적 인물들이다. 그러한 사실은 작품 마지막, 흥분제를 먹은 후 식구들의 반응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 그날 밤 피아노가 그토록 시끄럽게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피아노 앞에서 떼어내기 위해서 방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단 한 사람, 할아버지뿐이었습니다. 몇 개의 기침 소리를 들은 듯 하기도 했습니다만. ......”

몇 개의 기침 소리를 들었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흥분제가 유효했으리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피아노가 울린 시각이 평소라면 자는 시간대라는 사실에서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응하지 않은 것은, ‘위악적이고 기만적인 행위, 아버지의 법을 비웃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는 어떤 인물인가? 창신동에 사는 시점의 는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생활에는 자신만의 법도, 타인의 법도 작용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차분히 관찰할 뿐이다. 다음의 대목을 살펴보자.

“...... 절름발이 곁에는 항상 긴 버드나무 회초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회초리의 매질이 계집애의 몸 위에 퍼부어지지 않는 날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절름발이는 미친 사람처럼 계집애에게 매를 내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계집애는 이제 단련이 된 듯이 그 다섯 살짜리 아이들보다 가냘픈 손으로 머리를 감싸기만 한 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입 한 번 벌리지 않은 채 묵묵히 자기 몸 위에 퍼부어지는 매를 견디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중략) 그 유리창이 달린 어둑신한 방에서 베풀어지는 교육이 결코 엉뚱한 것은 아니리라는 생각만을 내 멋대로 할 수 있었다.”

절름발이와 계집애는 분명 사디즘과 매저키즘의 관계를 띠고 있다. 교육을 빙자한 아버지의 폭력에서 초자아, 한편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묵묵히 견디어내는 계집애의 모습에서 초자아에 대한 기만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상황에서 는 어디에 있는가? ‘는 유리창 바깥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있다. 사디즘과 매저키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인간인가?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일견 비정상적인 부녀간의 관계에 어떤 가치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엉뚱한 것은 아니리라는 생각만을” “멋대로 할 수 있었다는 표현에선 지나치게 가치 중립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는 주관의 부족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한층 나아가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의 태도에선 어렴풋이 부녀간의 애정에 대한 의 은근한 부러움마저 담겨있다. 이로부터, ‘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관음증인간형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도가 작품 결말부까지 일정하게 유지되지는 않는다. 다음 단락에서는 인물간 관계의 변화를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해보려 한다.

욕망의 변화

다시 역사로 돌아오자. ‘는 피아노 소리가 그친 순간 그친 시간을 재보려고 했. “그친 시간들을 비교하며 이 집에 대한 혐오증의 이유를 강화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창신동에서는 그토록 가치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던 그가, 양옥에서는 혐오증마저 느끼고 있다. 다음 대목에서 그는 과거의 자신을 처음 보는 경치에 보내는 감탄과 같은 성질의 것밖에는 되지 않음을 알았다고 평한다. 이로부터 우린 그가 경치를 감상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자신의 관음자적 태도를 인지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주체적 태도는 결말부에 가면서 더욱 심화된다. ‘는 마지막 순간 최음제를 사러 약국으로 향한다. 이 행동이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가까운 생각에서 비롯한 행동이었다는 점은, 분명 주목할만 하다. 의무감은 도덕, 법을 의미하는 초자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끝내 모두에게 최음제를 먹이고 만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심판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표현 이면에는 양옥 식구들을 처벌해야만 한다는 사고가 깔려있다. ‘는 어느새 사디즘적 인물로 변화하고 만 것이다. ‘가 사디즘적 인물로 변화하면서 빈 관음자의 위치는 새로운 서술자가 대체한다. 외화의 서술자인 사내를 바라보며 아무도 틀려 있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며, 가치 중립적인 평가를 내린다. 한편, ‘는 사내의 이야기를 신기하고 놀랍고 재미있다고 평하는데, 이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관음자의 전형이다.

일련의 분석을 통해, 소설 속 역학적 관계가 변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인물들이 가진 도착증이 변화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앞서 도착증은 강한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가 하숙방에 들어오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가 가졌던 욕망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집 그날 많은 얼굴들이 살던 그 집에서 나는 나 자신 속에서 꿈틀거리는 안주에의 동경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의 헤어날 길 없는 생활 속에 내가 휩쓸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위 표현을 풀어보면 그 기저엔 공간의 구분이 숨어있다. ‘가 살았던 판잣집은 그 사람들의 공간이고, 자신이 원하는 공간은 휩쓸려 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 ‘자기 세계라는 인식이 말이다. 젊은이는 자기 세계를 욕망한다. 그가 가진 도착증은 바로 그 욕망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결말부에서 젊은이가 양옥에서 공원으로 내쫓긴다는 점은 위 시각에서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의 욕망에도 불구하고, ‘자기 세계는 끝내 성취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라캉은 인간은 누구나 주체성을 획득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말한다. 하지만, 주체성은 환상에 불과하며 그 탓에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하는 수밖엔 없다. ‘가 가진 도착증의 변화는 자기 세계를 갖고 싶다는, 곧 주체성을 획득하고 싶다는 욕망이 해결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은 소설 결말부에서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현대 인간들은 누구도 자기 세계를 가질 수 없고, 그 탓에 끊임없이 방황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하숙방의 바깥에서

필자는 김승옥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도착적인 관계에 주목했다. 이어서 인물간의 관계들을 사디즘, 매저키즘, 관음증의 세 부류로 분류하여 분석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인물간 관계가 계속해서 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고는 이로부터 도착증이 자기 세계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비롯되며, 그 욕망이 성취될 수 없기에 관계가 변화한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혹자는 김승옥 작품 세계를 하숙방의 문학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작품들 대다수가 하숙방을 배경으로 진행되기 때문일 지도, 작품 세계가 하숙방처럼 폐쇄적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자신의 하숙방을 끊임없이 갈망하지만 끝내 하숙방 바깥에서 서성거리는 현대 인간 군상을 날카롭게 포착한다는 새로운 시선에서 같은 평가를 내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