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3장 7절을 요약하고 군데 군데 내 생각을 적음. 최대한 책을 그대로 옮긴 이유는, 효율적이기도 하지만 내가 이해를 거의 못하고 있어서.
0.
헤겔의 관념론은 데카르트주의자들과 경험론자들이 말하는 관념(ideas), 즉 정신의 내용으로서의 관념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들과 연관이 있다. 칸트는 이미 이성의 이념들이라는 말을 함으로써 그 용어를 플라톤과 연관된 의미에서 복원했다. 헤겔은 이 용법을 따른다.
절대적 관념론은 이념의 드러남이 아닌, 즉 합리적 필연성의 드러남이 아닌 어떤 것도 실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즉 합리적 자기 의식이 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실존하며, 이것은 실존하는 모든 것이 합리적 필연성의 드러남이어야 한다고 요청한다.
따라서 합리적 질서의 존재론적 우선성이라는 플라톤적 사유와 연관되어 있다.
합리적 질서는 외부 실재의 근저에 놓여 있으며, 외부 실재는 바로 이 합리적 질서를 현실화하고자 노력한다.(우리 생긴 게 이 모양인 이유에는 다 합리적 근원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음, 말하자면 관찰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잘 발견해낼 수 있다는 거.) 바로 이러한 점에서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적 사유와 확연히 구별된다.
1.
부정성은 헤겔의 또 다른 근본 개념인데, 모순 개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대립들은 서로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에 부정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실존하는 모든 것에 대립이 있기 때문). 또한 헤겔은 부정성을 주체와 연결시킨다.(정반합)
이러한 개념들과 더불어 헤겔의 두 주장이 결합된다. 하나는 실존하는 모든 것은 모순적이며, 따라서 필멸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실존하는 모든 것은 규정되어 있기에 그 안에 부정을 포함하는 개념들 속에서만 기술될 수 있다.(갤에서 난리난 자유의지 드립과도 연관될 수 있겠지.) 규정된 기술적 개념들이라는 바로 이런 용법은 타자의 부정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이 개념들은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타자를 배경으로 해서만 특정한 규정된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앞서 말했다시피 절대적 합리성이 있고, 그 합리성을 우리가 우리를 관찰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에겐 올바른 합리성이라는 게 매우 필요하며, 헤겔의 개념들은 모두 그 올바른 합리성을 획득하기 위해 쓰이는 것이다. 합리성이란 목적에 맞추어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순전히 내 해석들)
2.
그렇다면 절대자는 헤겔에게 있어 올바른 과정을 거친 ‘결과’이며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헤겔은 현실 개념을 이용한다. 헤겔에게 있어 현실이란 개념은 어떤 단순한 실재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필연성의 전개를 표현하는 실재에‘만’ 적용된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설명방식을 보완하기 위해 개념이라는 술어가 필요하다.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오는데, 이건 a의 사상을 좀 이해해야 그 필요성이 이해될 법하다. 여튼 개념이라는 술어는 현실과의 연결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개념은 전개된 전체의 근저에 놓여 있는 합리적 필연성의 형식 속에서 자기 자신을 알아 가는 주체일 뿐 아니라, 또한 현실성과 대조되는 맹아로서의 이런 필연성으로서도 간주될 수도 있다. 따라서 개념은 쉽게 세 번째 의미로 확대될 수 있다.(헤겔의 사유방식은 늘 이런 식인 것 같다. 올바른 사유를 했으니, 올바른 확대가 있다는 식. 아마 헤겔을 공부하려면 익숙해져야 될 사고방식이 아닐지.) 이 세 번째 의미에서의 실재 혹은 현실성으로 형성되거나 발전하기 이전의 외적 실재라는 좀 더 특수한 의미에서의 실재와 대비된다. 왜냐하면 이런 외면성은 심지어 개념이 맹아의 단계에 있을 때조차도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3.
이 7절에서 저자 찰스 테일러는 앞서 헤겔의 사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일단 보여주기식으로 보여주고 이 챕터에서 그 사상이 추론되는데 필요했던 헤겔의 개념들을 제시하고 있다. 일단 헤겔은 모든 것에 ‘단계’가 있다고 보았고, 그 단계별로 필요한 ‘이런 저런 것들’이 있다고 보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저런 개념들을 갖다 쓰는 듯 하다. 음... 비유를 하자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인식하는 동물은 드물다고 하는데, 인간으로 치면 거울에 비친 나를 인식했을 때의 ‘나’ 개념과 그렇지 않을 때의 ‘나’ 개념이 모두 다를텐데, 그 단계를 모두 설명하기 위해서 개념이 쓰이는 것 같다.(내 생각) 즉자대자라고 하는 개념이 그것을 설명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즉자대자적 개념에서 헤겔은 보편적이라는 용어를 이끌어낸다. 즉자대자는 정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자는 정, 대자는 반. 러프하게 말했기 때문에 당연히 세세하게 말하면 틀리다. 즉자대자 속에서 합을 이끌어내는 것을 이념이라 말한다. 그래서 식물은 헤겔에게 있어서 좀 수준이 낮은 듯하다.
또한 보편자는 특수자와 내적 관계에 있으며, 때때로 개별자와 연관되며, 또 때로는 양자 모두와 연관되는 식이다. 나는 특수자가 무엇인지, 개별자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넘어가기로 한다.
그리고 어떤 개개인들이 이렇게 발전해나갈 때 제도 또한 발전해나가야 올바른 합리성이 획득되는 것처럼 보인다. 정반합이 가능하기 위한 전제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필요한 개념이 무한성 개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반적 무한자가 아니니 설명이 좀 필요하다. 헤겔에 따르면 ‘참된 무한자는 유한자를 포함해야 한다.’ 헤겔에게 있어서 무한은 한정되지 않은 게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한정되지 않은 무한이라고 하는 것은 ‘악무한’이다. 뭐... 니체의 허무주의와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 인식을 그따위로 가져가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고방식?
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로부터 한계 지어졌다는 의미에서의 한계를 갖지 않는 것, 하지만 경계에 도달하지 않고서 무한하게 확장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는 한계가 없지 않은 것이다. 전체인 ㅜ한자는 유한자를 포함할 수 있다. 혹은 그것은 유한자와 하나인 무한자이다.’
너무 과한 요구같지만, 헤겔은 이러한 요구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의 우주는 외부에 의해 한계 지어지지 않은, 하지만 한계가 없지는 않은 그런 우주이기 때문이다.
유한한 우리의 한계상(나는 그 한계를 설명 못한다. 뭐라 그러는지 모르겠다.) 절대자에 대한 진리를 체계 속에서만 제시할 수 있다. 학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연관된 존재 단계들에 대해 반석하고 적절하게 설명하는 원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하나의 원리나 명제 위에서 이 철학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내적으로 이 철학의 본성에 어긋난다.(이것이 찰스 테일러가 제시하는 헤겔 철학이 받는 비판에 대한 변호인 듯하다.) 왜냐하면 현실의 본성은 모순에 근거하고 있어서 이 명제의 부정도 참임을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 우리는 긍정과 부정 양자가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는지, 그리고 어떻게 서로에게 필요한지를 봄으로써만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 학은 체계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학을 이끌어 가는 사유의 유형을 헤겔은 이성이라 부른다.(너 낮은 수준의 이성은 ‘오성’이라 부른다. 여기서 더 낮다고 한 건 질적인 차이를 의미함.) 이성은 모순들로 이뤄진 실재를 따라가는 사유이며, 따라서 각각의 단계가 어떻게 다음 단계로 변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습관으로 자리잡은, 그리고 동일성(a와 not a는 양립불가)의 원리에 고착된 오성과 구별된다. 버틀러가 말한 “모든 것은 그것이 존재하는 바 바로 그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오성의 정수이다.
칸트에게 이성은 직접적 맥락에서 작동하는 오성에 반하는 것으로서 전체를 생각하고자 하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헤겔은 이 구분을 자신의 이론으로 무한히 풍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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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하게 이렇게 끝마치는 이유는, 이제부터 헤겔의 뉘앙스를 테일러가 전달하고 있는데
그게 한두번 읽어서 이해될 수준은 아닌듯도 싶고, 또 이런 저런 먼저 알아두어야 할 사전지식이 슬슬 고개를 쳐들고 있어서
그것을 여기에 옮겨봤자 뭔가....싶어서 그런 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어차피 8절은 3장의 요약정리이고, 9절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를 얘기하고 있는거라.
내용적으로는 3장 전체를 다루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임.
내가 과는 옘병할 철학과를 나왔지만, 헤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이유는 헤겔을 열심히 피해다녔기 때문이고
그런데 갑자기 헤겔에 대한 관심이 생긴 이유는, 사고 방식이 헤겔과 비슷하다는 말을 일년에 두번씩 들어서 어이가 없어서 한번 흘어본 것임.
따라서 나는 헤겔의 사고 방식이 궁금한거지, 그의 철학을 옹호하는 입장은 아님.
내가 지금까지 억지로 읽으면서 느낀 바는, 헤겔은 이 모든 것을 어우르는 진리를 발견해내고자 정말 노력했고
그 진리라 하면 목적에 맞추어 살아가는 합리성을 의미하는데, 그 합리성의 올바른 방식을 어떻게든 획득하려고 한 사람 같음.
재밌던 부분은, 이성과 오성을 나누어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음. 지 나름으로는 본인이 비판받을 여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거기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일 거 같아서 재밌었고, 세상 모든 걸 그 정반합에 맞추어 시도한다는 거가 재밌었음. 뭐랄까... 졸라 리얼 찐 프로독붕이를 발견한 느낌;;
이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까지는 개론이고 2부 3부가 찐임. 3장까지가 1부고, 2장은 헤겔의 청년기라 생략함(우린 그의 성숙한 사상이 알고 싶은거니까) 3장은 '자기 정립하는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사상을 보여주면서 필요한 것만 설명하고, 2-3부는 그 설명을 더 깊이 들어가는 식일 듯함.
따라서 1부를 흝어보고 그의 사상이 궁금하면 2부 3부 들어가면 될듯함. 나는 일단 집에서 찔끔찔끔 읽기를 택하려고 함. 이 3장만 한 5번 정도는 읽어야 머리에 뭔가 틀이 생길 거 같기 때문에 2부 3부를 연재할 의미가 없기 떄문임.
부족했지만 읽어봐준 사람들 감사하고, 러프하게 끝내는 건 좀 미안함. 원래 내 성격상 요약정리 한번 더 들어가야 되는데... 요새 맘이 바빠서.
자 그럼 안녕.
아참 도가사상과 미묘하게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신기했음. 도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겠다는 느낌?
프리즘총서 헤겔임?
ㅇㅇ
엄청 오랜만이네 요새 헤겔 안읽고 있는데 오랜만에 읽어봐야겎누
나쁜 교육 읽는 김에 바른 마음도 읽고, 그거 읽다보니 딴 거도 좀 줍줍하며 읽다가 오늘 각잡고 쓰려했지.
그동안 잘 봐줘서 고맙 ㅇㅇ
ㅋㅋㅋ 나야마로 그 동안 잘읽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