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시가 있다.


<반도에 방랑자는 앉아 스케치한다

고르지 못한 계곡의 무덤들을.

사도들이 온순한 이들에게 구호품을 나줘줄 때면

화산은 폭발한다

유황과 황금빛 돌과 함께.>

-행동의 상징들 Emblems of Conduct 中, 하트 크레인



미국 모더니즘 시의 대표 중 하나이자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일명 천재시인인 하트 크레인의 초기 시 중 하나인 <행동의 상징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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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 화가는 앉아 스케치한다

고르지 못한 계곡의 수풀을.

사도들이 온순한 이들에게 구호품을 나줘줄 때면

화산은 녹은 유황을 폭발하고

대기에 돌과 광석을 내던진다.>

-행동 中, 새뮤얼 그린버그


서로 다른 이들의 서로 다른 두 시.


그런데...왜 그 도입부가 무척이나 닮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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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하트 크레인이 멕시코만에 몸을 던진 후,


많은 연구가들이 그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필립 호튼은 하트 크레인의 전기를 쓰기 위하여, 하트 크레인이 남긴 원고와 노트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린버그 원고>란 이름의 하트 크레인이 손수 필사한 한 노트를 발견한다.


거기엔 여러 시들이 적혀있었다. 하트 크레인 본인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필립 호튼은 곧 그 노트에 적힌 시구들에서 하트 크레인의 작품을 찾아낸다.


대체 이 그린버그는 누구이기에 하트 크레인이 애지중지하듯 필사하여 가지고 있던 것일까?


연구자로서 그는 호기심을 느끼고 그 노트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호튼은 하트 크레인이 초기에 발표했던 시 <행동의 상징들>이 이 노트에 적힌 시들 중 5편의 시의 구절들을 가지고 와, 일부 변형, 일부 하트 크레인의 창작을 덧붙이고 조합하여 만들어졌다는 걸 발견했고, 이를 발표한다.


일명 하트 크레인의 '표절작'이었다.



해럴드 블룸을 비롯한 수많은 연구자들의 찬사를 받는 시인인만큼, 하트 크레인 연구자들은 이 <행동의 상징들>에 대하여 콜라주라거나, 조합을 통해 기존의 시들과 다른 창작물을 내놓았다 등의 설명을 한다.


안타깝게도 최근에 다시 간행된 <그린버그 원고로부터의 시들>의 서문을 쓴 개릿 캐이플스의 말을 빌리자면, 연구자들의 무마와 달리, 오늘날 기준으로 의심할 바 없는 표절인 것은 맞았다.


연구자들을 안심하게 한 것은, 하트 크레인의 이러한 표절작은 이 초기시 <행동의 상징들> 한 편 뿐이란 점이었다. 적어도 그의 명성을 알려준 대표작들은 하트 크레인 본인의 창작물인 것은 맞았다.


그러나 이내 사람들은 이 그린버그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그는 대체 누구인가? 하트 크레인은 그가 누구인지 일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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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하트 크레인 본인조차 이 그린버그를 개인적으론 알지 못하였음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연구 끝에 분명하게 결론이 났다.


하트 크레인조차 우연히 친구가 어딘가에서 구해온 누군가의 시들이 적힌 원고모음집을 읽을 기회가 있었고, 그 시들에 열광을 하며 필사를 해간 것이 전부였다.


연구 끝에 학자들은 이 그린버그가 1893년에 태어난 유대인 새뮤얼 그린버그란 걸 밝혀냈다.


어린 시절 뉴욕으로 이민을 와 가난과 병으로 오랜 병원 생활 끝에 폐결핵으로 1917년에 죽었으며 그 동안 쓴 시 모음집이 이곳저곳을 떠돌다 하트 크레인의 친구가 우연히 손에 넣었다는 사실까지.


그린버그와 하트 크레인에 대한 연구글을 썼던 제인스 로린마저 그가 러시아 유대계 이민자라고 추측했을 정도로 그에 대해 남아있는 자료는 거의 없었다.


오늘날 연구 끝에야 그린버그 일가가 오스트리아에서 이주한 유대인 가정이란 걸 알았지만, 그의 모습을 그린 스케치만이 남아있을 정도로,


오늘날까지도 이 그린버그의 삶에 대해선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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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 하트 크레인이 표절을 했고, 또 그의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이 그린버그의 시들에 열광하며 영향을 받았다는 점 때문에


이 그린버그와 그가 남긴 원고들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었다.


물론 그가 남긴 원고들을 연구하는 것엔 꽤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린버그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여 때론 잘못된 문법이나 철자, 그리고 악필 등으로 원고를 해독하기 어려웠고,


그의 노트에 적힌 시들을 어떻게 편집해야할지조차 논란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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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하트 크레인에 대해 글을 쓴, 모더니즘 출판을 책임지는 미국 뉴 디렉션스 출판의 사장이자 여러 초현실주의자들의 책도 펴낸 제임스 로린은


그린버그 원고집을 일부 출간하면서, 그린버그를 미국에서 태어난 초현실주의자라고 평하였다.


실제로 그의 시들 중 상당수는 로린의 평이 맞을 것이다. 원래 시인으로 활동하다 에즈라 파운드에게 출판업을 하란 권유로 출판업에 뛰어든 로린은 미국에서 초현실주의의 권위자였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린버그는 하트 크레인에게 표절을 당했기에 오늘날까지 잊혀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에 대해 평하는 어떤 학자들은, 그의 시적재능 자체는 인정해도, 그의 표현 등의 미숙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런만큼 데뷔도 하지 않은 요절한 한 가난한 문학청년의 원고들이 오늘날까지 연구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의 대한 연구도 사실 하트 크레인과 연관된 연구가 대다수다.


단순히 하트 크레인이 표절한 시를 넘어, 하트 크레인이 그의 작품에 열광했다는 기록만큼, 그린버그를 하트 크레인이 영향받은 시인들 중 하나로 놓고, 그의 대표작과 후기작들에서도 영향을 찾는 연구가 대다수다.


거기에 그의 원고들 중 상당수는 연구자들끼리 돌려볼 뿐, 편집되어 출판되지 않은 것도 상당하다.

그린버그가 짧은 생애 동안 남긴 시들 중 몇십 편과 몇 편의 산문들을 읽을 뿐이다.


하트 크레인이 제일 열광했다는 그린버그의 시에서 그린버그 본인은 답을 내놨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그대가 죽었는지 내가 알 수 있을까?

강은 이끌고, 또 이끌 뿐이다

확신 대신에.....>


어쩌면 일반 독자들이 그린버그 원고를 제대로 볼 기회는 먼 미래의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쓰지도, 경이에 찬 속삭임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의 풍요롭게 우뚝 군림하는 욕망 위에 자라

대지를 매달고, 사라지는 상상 위에

아무 것도 얹지 않는다>

-시인들, 그린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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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어ㅡ 『페도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