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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붕이들에게 익숙한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전집 7권, <산시로>이다. 이 책을 알라딘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현암사의 저 정갈한 하드커버 디자인을 보아라... 보기 예쁜 책이 확실히 읽기도 좋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앞으로 필자는 계속해서 전집 시리즈를 찾아 알라딘을 기웃거리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산시로>는 두견새와 무언가 관련이 있다는 것은 귀동냥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목인 <산시로>라는 말이 어딘가 두견새와 연관이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미니멀리즘이라면 미니멀리즘이라고 할까, 산시로는 그저 본 작품의 주인공인 오가와 산시로의 이름이었을 뿐이었다. 춘분까지 연재한다고 해서 <춘분 무렵까지>라고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붙인 나쓰메 소세키다보니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처럼 제목이 어느 정도 함축적인 의미를 띌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제목이 작품을 해친 것은 아니다.
역시나 이 작품도 눈이 술술 넘어가게 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유려한 글솜씨를 여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산시로>의 기본 서사 골자는 구마모토의 시골에서 도쿄의 대학으로 갓 상경한 새내기 대학생 오가와 산시로의 대학 생활기이다. 물론 아직은 양옷 대신 하카마와 기모노를 입는 시대라 우리가 아는 대학생활과는 거리가 있지만, 강의를 듣고, 도서관에 가고, 술자리에 참석하는 산시로의 모습은 우리에게 현대의 대학생들을 떠올리게 한다. 정말 평범한 한 대학생의 생활이다. 그래서 <산시로>에는 뚜렷한 갈등이 없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산시로의 나날들, 자신이 경외하는 선생님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친구 요지로, 은거한 지식인 노노미야와 히로타 선생 등등, 산시로 주변의 인물들도 우리가 주변에서 한 두명 씩은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인물들이다. 그런 그의 한적한 생활이 나쓰메 소세키의 글로 담담하게 서술되고 있었다.
그러나 노노미야의 가족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수수께끼의 여자 미네코의 존재로 이 책은 특별한 책이 된다. 이 책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이 여인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인물들과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주인공 산시로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주눅든 상태였다. 시골에서 올라와 지식도 경험도 없는 미력한 청년인 자신의 모습과 도쿄의 모습은 상당히 대비가 되었을 것이다. 초반부의 미네코는 그런 패배감에 젖은 산시로에게 하나의 이상이 된다. 미네코는 당시의 여성상과 많이 다른 여자였다. 야마토 나데시코라고 불리는 정숙하고 수줍은 일본의 전통적인 여성상은 도저히 맞지 않는 여자였다. 그녀는 신여성이었다. 자유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여유에서 나오는 품격과 아름다움에 산시로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물론 이런 과정은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한번의 스쳐 지나감으로 산시로의 뇌리에 자신의 모습을 새기고, 두번째 만남으로 산시로의 이성의 그늘에 자리를 잡고, 그 후 여러 만남을 통해 미네코는 산시로의 생각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된다. 산시로가 그녀를 쫓는 눈빛에는 단순한 연모의 감정이 아닌, 산시로 자신의 동경과 이상을 담은 강한 감정이 실려있다.
그러던 산시로가 점차 인격적 성숙을 겪으며 동경하던 미네코와 결혼하게 되었다면 이 책은 그저 평범한 연애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는 이 책이 연애소설이 아닌 성장소설이라는 것이다. 산시로는 분명 성숙한다. 그러나 이 성숙은 미네코와 가까워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미네코로부터 탈피하려는 방향의 성숙이다. 산시로는 미네코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일찍이 깨달았으면서도 종국에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그녀를 담담하게 떠나보낼 수 있었다. 이미 그 순간 산시로의 마음속에서 대립하던 낡은 세계에서 온 자신의 모습과 도쿄의 모습은 없어졌던 것이다. 미네코의 존재가 그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 성숙을 안겨줄 수 있었는지 볼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이런 산시로의 성숙이 격렬한 고통과 방황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가듯, 산시로의 변화는 자연스럽고 조용히 일어난다. 물론 이런 성장 과정이 지루하고 별 임팩트 없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필자의 눈에는 이것 역시 하나의 흥미로운 과정이었다. 산시로라는 젊은이가 미네코라는 타인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단순히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물들어가는' 과정은 우리가 주변 세계에 영향을 받는 모습과 똑 닮았다. 어쩌면 미네코의 존재는 단순히 사람으로써의 존재가 아닌, 산시로가 목격하고 동경한 도회의 배짱과 새로움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우연히 언덕가에서 그녀를 올려다본 것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하면 보아라, 무언가 느껴지지 않는가? 일본 첫 영국 유학생으로 나쓰메 소세키가 느낀 것은 단순히 <런던탑>에서 나오는 타지에 대한 고난과 부적응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네코가 산시로에게 남긴 말 중 '스트레이 쉽'이라는 말이 있다. 길 잃은 어린 양. 미아. 산시로는 말 그대로 도쿄의 넓은 길 위에서 헤매는 자였다. 그랬던 그가 화려하게 그림으로 자신의 모습을 남긴 미네코를 보면서 입 속으로 '스크레이 쉽'을 되뇌이는 장면은, 이제 그가 길 잃은 상태에서 벗어나 미네코와 동등한 시각의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장면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극복을 넘어서자 그는 미네코와의 연애적 단절도 흘려보낼 수 있는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는 우리는 모두 산시로이자 '스트레이 쉽'이다. 그것이 새로운 취미이든, 직업이든, 아니면 여태 자신이 몰랐던 전혀 다른 세상이든 우리의 첫 시작은 전부 '스트레이 쉽'이었다. 하지만 이런 패배감과 막연함은 결국에는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소설이 <산시로>가 아닐까 싶다.
흑흑 ntr 결말이라니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