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매큐언의 속죄라는 책을 보면
내가 손가락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걸까? 에 대한 짧은 고찰이 나오는데
뇌가 손가락을 구부리라고 명령을 보내고.. 내가 자유의지로 손가락을 구부릴 의도를 가지고...
하지만 머릿속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라고 아무리 애써봐도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음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손가락을 움직이려면 손가락을 움직여야했을뿐
과학, 인문, 삶의 관계는 이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봤음
과학이 현상의 원인과 원리를 설명할 수 있지만 손가락을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움직이게 할 수 없고
인문이 현상의 의미를 헤아려줄 수는 있겠지만, 역시 손가락을 움직이는 주체는 아니고
삶 그 자체가 바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
그러니 '숨결이 바람될 때'를 읽자
솔직히 현장에서 뛰는 전문가도 아닌데 철학은 다 틀렸어! 인문학은 틀렸어! 예술도 바보야! 오직 과학만이 진리야! 하는 태도가 삶에 무슨 소용인가 싶음
오..
굳이 나누었을 뿐이지 결국엔 하나인듯
맞워요. 그래서 여고생쟝은 진리를 접할순 없지만 다양한 창을 통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을 조아해요. 왜냐면 작품 하나하나가 진리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포용할 수 있는 범위가 아주 넓어지거든요. 그러면 이런 측면 저런 측면에서 보면서 진리를 훔쳐볼 수도 있고, 진리까진 아니어도 통찰을 가질 순 있을거라 생각하는 거시에오... 그리고 진리는.. 아주 추상적인 개념으로, 억지로 잡아내려고, 억지로 다가가려고 하기보다 그냥 존재한다고만 해두는 것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있어요.. 마치 태양이 30억년 뒤에는 꺼지겠지만 내 보잘것 없는 100년 남짓한 인생에서는 이 지구라는 생태계를 유지시켜주고, 하루의 기준이 되는 절대적 존재인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