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제로연대의 상상력》으로 돌아가자. 이 책에서 우노가 세카이계에 대해 한 비판은 두 종류다. 하나는 앞에서 확인한 것처럼 세카이계가 '낡은 상상력'이라는 점, 또 하나는 그것이 '강간 판타지'라는 점이다. 이것은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반성에 대한 욕망을 비판한 것이고, 우노는 세카이계에 숨어있는 이 구조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제로연대의 상상력》에서 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원조교제로 여고생과 섹스한 뒤, 그 떳떳치 못함을 해소하기 위해 소녀에게 '이런 일 하면 안 돼'라고 부드럽게 타이르는 남성을 '섬세하고 문화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이 '이런 일 하면 안 돼'라고 설교하는 건, 오히려 심리적인 저항을 배제하고 안심하면서 소녀성을 소유하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그들은 원조교제(=모에)라는 소유회로를 포기하는 건 결코 택하지 않으니까.
결국 '사실은 여자아이에게까지 싸움을 시키고 싶지는 않지만'이라거나 '사실은 여자아이에게 상처 입히고 싶지 않지만'이라는 반성을 사이에 끼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여자아이가) 싸워준다' '섹스한다'로, 죄악감이나 책임감이 경감하고 욕망을 강화하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
우노는 강간 판타지라는 조금은 자극적인 어구를 쓰고 있지만, 성 관계를 제외한다 해도 이것은 동서고금의 이야기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구조다.
예를 들어 〈기동전사 건담〉 같은 로봇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청자는, 단적으로 말하면 로봇끼리의 전쟁을 즐기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본다. 그런데 그것은 분명히 말하지 않고, 오히려 주인공들은 반전이나 평화주의를 외치며 싸운다. 여기에서도 '전쟁은 악이다'라는 반성의 제스쳐를 끼워 넣음으로 오히려 안심하고 오락으로서 전쟁을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 p.172-173
많은 팬이 작품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콘텐츠는 끝내는 것이 허락되지 않게 된다. 팬의 사랑은 당연하다는 듯이 속편, 신작을 바라는 목소리가 된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하게 끝났음이 분명한 이야기에 새로운 곤란을 불러들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작중의 등장인물에게 있어서 팬의 작품에 대한 사랑은, 평화롭게 마무리된 세계를 부수고 새로운 재앙을 (게다가 무한하게) 불러들이는 저주로서 기능하고 만다. 극장판에서 호무라와 마도카를 통해 그려지는 건 이러한 사랑의 역설이자, 작품과 시장의 딜레마 그 자체를 포용하려 한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지나친 깊이 읽기일까.
- p.228 中
오
독갤념글에서 추천받아서 읽어봣는데
잼섯음
ㄹㅇ 이 부분이 백미임 ㅋㅋㅋㅋㅋ 근데 요즘 애니메이션들은 아예 그마저 있던 비판의식도 없는 애들이 나오고 있어서 더 암담함...
추천해조서 고마어요
트짹에서 HO! 까였던 것도 그렇고 작가가 아무리 소오녀를 구원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의식을 표현하고 소오녀가 불행해지는 세계를 공들여서 만들어봤자 그걸 소비하는 사람들에겐 욕망을 덮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지...
그래도 난 억수씨 웹툰이나 세카이계 같은 이야기를 모성 원망이나 강간 판타지로 환원시키는 건 그 자의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좀 별로임. 나도 ㅍㄱㄹ들이 쓰는 지극히 유아적이고 파멸적인 이야기들을 싫어하긴 하지만, 그건 운명에 엿먹이든 순응하든 선택권이 (남자)주인공에게만 있는 것처럼 구는 바보들 때문이라고...
왜 운명에게 파멸당하는 건 여자인데 파멸당하는 존재로서의 자의식은 남자가 챙기냐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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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물 나오던 시절에 그정도 만들었으면 띵작 맞지 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