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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대학자의 통찰이 엿보이는 괜찮은 에세이였다.
뜬금없이 첫줄부터 대학자의 통찰 어쩌고 그러니 부담스럽게 다가웠을 텐데,
달리 할 말이 없다.
대충 1929년인가 정도에 써진 글이 현 사회 현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임.
1.
내용은 대충
그 시절 사회의 성 인식에 대한 분석(주로 기독교를 비판하거나 기독교에 경도되어있는 자들의 행위를 비판하게 되는)
그리고 그 부족한 성 인식으로 인해 벌어진 이런 저런 불협화음을 보여준다.
간단히 말하면 '사회가 이렇게 된 건 잘못된 인습 때문. 개인에게 큰 책임은 없다.'
그러므로 잘못된 인습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성의 만족은 충족되지 못하면 여러 안 좋은 왜곡을 불러 일으켜야 되기 때문임.
그 여러 안 좋은 왜곡들은, 책을 덮은 시점에선 당연히 기억이 안 나지.
보통 미의식과 관련된 것들 전반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고, 프로이트를 많이 인용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다 인용하는 것도 아님.
'오이디푸스 이딴거 뭔 소린지.... 내가 볼 땐 원래 인간이 그래서가 아니라 합리적 이유도 없이 성욕을 억누르기만 했으니 남자랑 여자가 오해가 많잖나. 그 오해로 말미암아 여자가 성욕을 만족시키지 못하니 애 상대로 자꾸 무의식적으로 그게 투영되는 거지'
대충 이 정도의 생각? 그 외에도 이것저것.
2.
사실, 아 그렇군요... 네네 알겠습니다. 대학자님 그러굽쇼하면서 쭉쭉 넘기고 있는데
중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압권인 문구들이 나온다.
'사랑에는 고유한 이상과 그 자체에 내재하는 도덕적 기준이 있다'
'사랑의 근원이 되는 것은 존중이다.'
'오직 자발적일 때에만 사랑은 그 본연의 가치를 드러낸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이 사랑이다.'
참고로 러셀은 상당히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인데, 감정의 이런 부분까지 연구를 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고
무엇보다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매우 예리하게 예측해내는 면이 있다.
어떻게?
'올더스 헉슬리의 어떤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성욕에 어떠한 가치를 담지 않고 생리적 욕구를 해소하는 이유로만 야스를 하는 모양이다.
이런 태도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금욕주의가 부활하게 된다고 말한다.(중간에 생략한 문장 없음, 내맘대로 문장은 바꿈)'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나아가는 닝겐의 괴상한 면을 짚어내는 것이다.
이 다음 문장이 바로 '사랑에는 고유한 이상과 그 자체에 내재하는 도덕적 기준이 있다'인 것이다.
즉 닝겐들이 원하는 사랑이 바로 고유한 이상과 그 자체에 내재하는 도덕적 기준이라는 것.
이 사람 입장에선 어지간히 사람들이 비합리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3.
사실 우리 시대에도 통용될만한 일이다.
대체로 지금 우리 사회의 연애는 다분히 계산적이며 쾌락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충 내가 2-30명을 상대로 이야기한 결과
행동은 계산적이며 쾌락적인데, 본인이 그러한 것을 인정하기 매우 싫어하고, 또한 상대방이 자기에게 그러지는 않기를 매우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다.
남녀공통이다.
즉 상대방에 대한 존중, 그것이 없는 주제에 바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이... 존나 좆같은 모순;;;
그냥 섹스나 하고 다니면 쿨한 시대라고 하면 될텐데
막상 그런 방식으로 흘러가서 클럽 다니는 게 묘하게 쿨하고 위험한 매력으로 통용되기 시작하니
그 성향에 반대하는 애들도 튀어나와서 노출하지 말라고 비명지르고 다니고
앞서 말했던 얘기가 그대로 다 반영되는...
달리 얘기하면, 사람 사는 세상이란 게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는 말일 수도 있겠다.
4.
사실 뭐 잘못된 관념이나 지식에 기반한 주장들도 있다.
대체로 본인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끌어온 지식들의 경우, 너무 낡아서(1929년 당시의 최신 지식) 믿음직스럽지가 못하고
개중에는 러셀이 유머를 했나 싶을 정도로 위트 넘치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대충 대굴빡만 봐도 이새끼 머리 좋은지 아닌지 알 수 있는데, 이건 유전적인 거라 봐야겠지?'
그러고보니 셜록홈즈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당시 영국에선 나름 핫한 '대가리 결정론'이 있었나보다.
5.
책은 뭐 재미로 읽어볼만하다. 짬을 내어서 읽을 정도는 안 되고, 여가시간에 실실거리면서 읽으면 될 정도이고.
이 사람이 사람을 꿰뚫어보는 그 면모를 배우려고 하면 조그만 책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에세이라 그런지 그냥 재미로 읽으면 될 수준이라 생각함.
날카로운 문장들이 다수 존재하는 걸 봐서, 명문가로 유명한 러셀답게 원문이 상당히 수려할 거로 판단되니 영어공부할 사람들이나 영어에 자신있는 사람들은 봐도 될 듯. 러셀의 문장은 영어공부하기 좋기로 유명하니까, 영어공부하고 싶은 사람도 ㅇㅇ.
책의 제목이 결혼과 도덕이니만큼 결혼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오고, 과학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오면서
마치 영화 '가타카'를 그 시절에 예견해내는 날카로움도 있었고
이런 저런 결혼과 여성인권과 그로 인한 사회 구조까지 대충 잘 추리해내신다.
'법적으로 여성들이 평등을 이끌어냈으므로, 사회적 불평등을 결코 좌시하고 있지 않을 것이며, 결국 비합리적인 불평등에 대해서는 철퇴를 내릴 것'이라는 뉘앙스다.
얼마나 깔끔한가. 법적평등 운운은 투표권 이야기임.
어찌 보면, 이쯤에서 벌써 '아비부재의 서사'도 짐작해낼 수 있을 정도이고.(나는 서사라는 표현을 싫어하지만, 서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써본다.')
새로울 건 없는 얘기지만, 명료해서 좋은 책, 특히 태어나기를 감정고자에 가까운 면이 있던 러셀이 사랑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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