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일 2020/10/23
- 21일차 2020/11/12
- 오늘 읽은 책
1. 목소리를 보았네 - 알마, 김승욱 역
164p ~ 225p - 62p
- 3주차, 이틀을 제외하고 꾸준히 책을 읽었다. 이번으로 4권의 책을 완독했다.
비록 모두 독서마라톤 이전부터 읽던 책이지만, 완독한 기록으로 남으니 뿌듯하다.
올리버 색스는 뇌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장애인들에게 특히 관심이 많았나보다
3부에서 청각 장애인 학교의 시위를 소개하면서 자신이 수화를 할 수도, 이해 할수도 없음을 밝혔는데,
수화에 대해, 청각 장애인에대해 이토록 깊고 다양한 전방위적 탐구를 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
그래서인지 참고문헌 리스트만 4장이 된다.
2부에서 수화가 언어로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뇌과학적, 문화적, 언어적 측면에서 면밀히 분석하고 소개함으로서
수화 그 자체는 영어와 독일어처럼 하나의 완전한 문법구조를 가지고 생각 그 자체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인 또 하나의 완전한 언어임을 알려주었다.
부분적으로는 시각언어이기 때문에 형식 그자체로 시공간을 표현할 수있으며, 더 우월한 측면의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시공간을 다룰 수 있는 형식과 문법을 가진 시각 언어라니? 매우 흥미롭다. 영화와의 유사점이 있을 것 같다.
3부에서는
갤러데트라는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청각장애인이 총장을 선임하라는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를 소개하며, 청각 장애인들과 수화를 사회적 측면에서 소개한다.
이 파트를 읽을때 작금의 pc정치가 생각나서 트리거가 눌릴뻔 했으나, 30년전 일이고, 청각 장애인 학교의 일임을 되새기며 찬찬히 읽어나갔다.
이전까지는 청각 장애인 공동체 스스로도 자신들은 각자도생하거나, 변두리 사회에 있던가, 혹은 '동등한' 처지에 있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시위를 기점으로,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화와 역사를 가진 하나의 소수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진행함에 있어, 갤러데트의 일을 소개하다가, 200년전 교육계에서 수화가 언어로서 거부당하던 사회의 분위기로 넘어가고,
이를 타파하는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수화를 '언어'로서 연구한 학자와 그 연구를 부정한 청각장애인들의 일화를 소개하며,
이 간극을 좁히는데 예술가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알려주고는 갤러데트의 일로 다시 돌아온다. 올리버 색스가 집필한 청작 장애인들의 역사서를 보는 듯 했다.
사실은 이 3부 파트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청각 장애인들은 (최소한 이 책에 소개한대로라면) 자신들이 귀가 들리는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우받고
활약하기를 원한다. 실제로 이책에 소개된 어떤 청각장애인이 면접을 잡겠다며 도움을 구하기에, 면접을 대신 잡아주었는데,
면접을 잡기 위해 전화를 걸고, 통역을 구하는 등 기존 사회에서 해야하는 일을 배우려고 부탁한 일을 왜 다 대신해주냐며 화를 냈다는 일화를 소개해준다.
'피보호자'로서 대우받기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귀가 들리는 사람과 경쟁해야한다는 뜻이 된다.
그럼 청각 장애인들과 귀가 들리는 사람이 '동등'하게 경쟁한다면, 그들의 패널티를 감안해주어야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 책은 30년전 쓰인 책이다.
30년전 올리버 색스는 귀가 들리지 않을 뿐, 다른 모든 면에서 동등하고 심지어 우월할지도 모르는 그 소수 민족에 대해 아주 깊게 파고들어
그들의 역사 그자체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 역사가 미래에 펼칠 가능성을 기대하며 30년 전의 기록으로 끝을 맽었다.
그 후, 30년 동안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나로서는 모른다.
얼마전 유퀴즈에서 수화통역인의 이야기가 들려주었다. 수화는 그들의 모국어이며, 자막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복잡한 시각언어이며,
그들 역시 '동등한'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한편으론 소수자이며 장애인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말은 좋다. 동등하게, 경쟁도 동등하게, 사회적 대우도도 동등하게, 욕은 하지말고.
하지만 현재 소수자라는 집단은 그 이름을 가져온 정치집단이 되어, 소수자의 권리라는 미명하에 능력보다는 쿼터제를 요구하는 pc정치가 됬다.
그 영향은 엔터테이먼트 산업까지 지대하게 미쳤고, 거의 대부분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동등' 이 대체 무엇인지 골치가 아프다.
그들을 '동등하지 않은' 존재로 보고 그들을 도와야할지, 그들을 '동등한' 존재로 보고 그들과 경쟁해야할지
사람은 누구나 도움이 필요하다. 그들이 '피보호자'임을 거부한다고 해서 도움을 주어선 안될까?
경쟁은 낭만적이지 않다. 공정한 경쟁도 피터지는 싸움터임에는 변함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동등하게 경쟁하고 싶다고 해서, 그들의 약점을 파고 들어야 할까? 혹은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
막을 수 있다면, 그것을 역이용하는 소수자들이 있지 않을까? 언더도그마일까?
수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귀로 들어서 습득하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한국어는 사실상 습득 불가능한 외국어이기에
그것을 모국어로 사용하라 강요할 수 는 없다. 하지만 한국은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의 나라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청각 장애인들은 소수민족으로 그들의 나라가 없다.
언어적으로 평생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청각 장애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워 적응해 살고 있겠지만, 평생을 다른 나라에서 살아야하는 이들을 위해 전세계적 표준을 만들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말은 쉽다. 모든 영화에 자막을 필수로 넣고, 모든 영상매체에 수화번역을 넣고, 모든 것에 수화를 적용하는...
말은 쉽다. 혹자는 귀가 들리는 사람이 좀 손해를 감수하면 된다고 한다. 자기들이 가진 것은 특권이라면서.
말은 쉽다. 제3 세계에서 굶어 죽는 사람처럼 굶지도 않을 것이고, 팔 다리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 처럼 팔 다리를 자르지도 않을 것이고
눈이 안보이는 사람처럼 눈을 가리고 다니지도 않을 사람들이 대체 어떤 특권을 내려놓는 다는 것일까?
겨울 밤에 얼어 죽지도 않고, 여름 한 낮에 에어컨 틀어놓고 냉방병이니 추워서 온도 조절을 하니 마니 하는 사람들이 어떤 특권을 내려놓을까?
아침에 스타벅스에 들러서 얼어뒤져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마셔야한단 사람들이 대체 어떤 특권을 내려놓을까?
아니,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왜 가진자의 특권을 내려놓으라는 걸까?
그들이 거부하는 '피보호자'가 받는 도움을 주지 않고 그들과 '동등'해지겠다는게 바로 이런 뜻이었을까?
권리 다툼?
그들의 모국어는 수화이기에 한글자막으로 대체할 수가 없는데 영화에서는 자막을 넣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그정도는 내려놓을 수 있는 권리라면 그게 특권이라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들이 정치인이었다면, 과학기술의 혁명으로 청각장애인들의 귀가 들리게 되었을때 누구보다 빠르게 반대하지 않을까?
올리버 색스가 기대했던 가능성이 이런 미래였을까? 올리버 색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정말 많은 의문이 들지만, 명쾌한 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동정심으로 작동하는 작금의 소수자 정치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
즉 그들의 문화와 역사와 특징을 이 책에서 훨씬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확언한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그들과 공존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것들을 이 책에서 다시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청각 장애인과 수화에 대한 알파이자 오메가를 배우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
오늘까지 달린 거리
895p / 42195p (약 2.12%) 2% 돌파!
[완독한 책]
1. 융 기본 저작집, 정신 요법의 기본 문제
2. 죄와 벌
3. 체호프 단편선
4. 목소리를 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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