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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는 책의 표지에 관한 편견이 몇가지 있다. 대체로 유명하지 않은 소설의 표지에 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한데, 책의 뒷면이나 띠지에 과도한 미사여구를 새긴 것이 독서를 마친 나로 하여금 실망감과 당혹감을 선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내가 가진 편견 중 하나이다. 특히 이런 경향은 유명세를 적게 탄 추리 소설에 흔히 찾아볼 수 있었는데, 나의 경우 띠지에 '최고의 두뇌 배틀!' 내지는 '완벽한 트릭!' 등 여타 다른 명작들의 소개에 뒤떨어짐이 전혀 없는 수준의 극찬을 줄줄이 늘여놓은 책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고 많이 소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러한 작품의 질은 그정도의 극찬을 받을 자격이 없을뿐더러, 트릭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조차 버거워하는 졸작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 표지에 대한 첫번째 편견의 이유다.

 또다른 편견은 유명인들과 작가들을 포함한 평론가들의 호평을 책의 뒷면에 가득 채워넣는 일에 대한 것이다. 이는 비교적 작가 이외의 직업으로 유명세를 탄 사람들의 책과 자서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비록 얕은 사견에 불과할 뿐이나 내 경험으로는 저자의 주변인이 책의 표지에 언급한만큼 책이 훌륭하거나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 적이 단 한번도 없었을 정도로 작품과 평론 사이의 괴리감이 만연해 있었다. 이것이 표지에 대한 두번째 편견의 이유다.

 물론 내가 언급한 두가지 편견 모두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잘 알고있는 바이다. 이런 편견에 저항하는 반례를 경험한 일 역시 상당히 많았으며, 이런 경우 사람의 기억은 무난히 좋았던 경험보다 예기치 못한 불쾌한 경험을 임의로 취사선택해 더 크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익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관점이 고작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불쾌한 경험이 불쾌하지 않게 변모하는 것은 아니다. 이 안좋다면 안좋다고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굳어진 편견 때문에, 『고래』의 첫인상 역시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 특히 첫 문장의 "특별하다!"라는 표현은 편견이라는 굴절을 겪어 '모두들 자기 작품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법이지.'라는 조소로 치환되었다. 이 조소는 이 책을 읽는 것을 마친 이후에야 특별하다는 문장 본연의 위치와 의미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내가 고래라는 소설에서 느낀 장점은 책의 표지에 적힌 평론가들이 한 극찬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채로움과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것도 맞고 과거의 전통적인 특징이 물씬 드러나는 작품들과 같은 시대를 이야기하나 전통적 작품들과 결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맞다고 생각한다. 문학적 소양이 일반 독자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의 평과 내 독후감상이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에 괜히 더 뒤떨어지는 필력으로 중언부언하는 결과가 되지 않으려나 싶기는 하나, 일단 써보기로 결정했다. 쓰다보면 나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차이점이나 발상이 자연스레 떠오를 수도 있으니까...

 이 소설은 부두-평대-공장이라는 3부작에 걸쳐 기구하고 굴곡진 인생을 살아간 금복과 춘희라고 하는 한 모녀의 족적을 솜씨 좋은 이야기꾼, 천명관의 입과 손을 통해 설명하고 기술한 소설이다. 사업 수완이 뛰어나고 온갖 기연에 웃고 운 금복과 감수성이 풍부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한 벙어리 춘희는 모녀라는 혈연적인 연결고리를 제외하고는 단 하나의 공통점도 공유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반대의 인물들이며, 서로에 대한 호감도 모녀지간임을 감안하면 일견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금복은 어려서부터 많은 남자들의 손을 타는 등의 여러 우여곡절 덕분에 육체는 영원불멸하지 않음을 깨달아 더더욱 남자를 밝히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여자인 육체를 '포기'하고 남자의 행동과 삶을 살 정도로 능동적이고 정력적인 행보를 보인 인물이었다. 타고난 사업 수완과 자산가와 일꾼들을 홀릴 매력과 인생의 기구함이 겹쳐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협력하며 살아간 여걸이었다. 그런 사람의 자식으로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성향을 지닌 거구의 벙어리가 태어났으니 금복은 더더욱 사업과 타인에게 매진해서 딸을 의도적으로 방치하게 되었고, 결과론적으로 이 시기에 정을 받지 못한 춘희는 평생동안 말을 할 수 없게 됨은 물론 다른 사람을 단 한번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왜인지 질 좋은 벽돌을 계속 만들기를 고집하면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소설의 막바지에 춘희가 긴 기간동안 벽돌 만들기에 열렬하고 쉴새없이 몰두한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데, 나는 그녀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행동을 떠나간 첫 남자에게 표현해 다른 사람의 정을 받고 싶어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고래』에 내포된 사상이나 가치관을 전하는 메세지는 매우 미약하다. 애초 은유, 비유를 사용해 표현한 내용과 형식의 아름다움에는 관심이 없는 책이다. 작가의 가치관이 묻어나지 않은 작품임은 물론, 특정 가치를 표방하고 대표하는 단어조차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고래'가 금복이 숭상하는 거대함과 강한 생명력을 의미한다는 것이 작품의 객체와 가치가 대응되는 경우의 전부이며, 그마저도 거대함과 생명력의 토씨 하나를 빠뜨리지 않고 작품 내부에 담아내 독자의 무분별한 유추와 지레짐작을 거부한다. 그래서, 이 책은 작가가 의도한 방향으로 관념과 의식을 좇아가기만 해도 편안하게 작가의 복안을 뒤따라갈 수 있는 친절한 소설이 확실하다.

 이런 일방적인 소설은 문학 작품의 구절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독자들에게는 불호의 영역에 위치하겠지만, 이 흐름에 반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순종적으로 따라갔을 때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은 확실히 컸다.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개별적인 이야기들을 등장인물의 당위성 가득한 행동으로 아름답게 이어 붙였으며, 솜씨 좋은 이야기꾼을 자처한 작가 천명관의 과장과 허풍은 다수의 이야기들을 풍요롭고 긴장감 있게 전개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금복의 두번째 남자가 1톤이 넘는 밥벌레로 굴러떨어진 것하며 한 많은 노파의 피의 복수, 노파의 딸인 애꾸의 호의 등 온갖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강렬한 필력을 매개로 삼아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에게 설득력 있게 달라붙어 독자들의 마음에 연착륙하게 되었음은 작가의 재능과 노력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의미한다.

 개별적인 이야기들 역시 예측하기 힘들며 재미있다. 작가인 천명관은 이야기꾼스럽게 혹은 넘치는 자신감에 고취된 작가답게 막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한 등장인물들의 생의 마지막을 포함한 큰 굴곡을 가감없이 스포일러한다. 누구누구는 어떻게 생을 마감할 것이고 누구누구는 사후 여왕으로 불릴 것이라는 등 이는 자칫하면 이야기의 독특하고 재미있는 전개가 최대 장점인 이 소설의 특색을 반감시킬 수 있는 장치지만, 힘 있는 필력과 개성 있는 전개 덕분에 오히려 이야기에 대해 더 큰 관심과 몰입감을 선사하게 되는 선작용을 얻을 수 있었다.

 『고래』는 이야기의 전개라는 측면에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뚜렷한 목적의식이나 저의가 없는 소설이기 때문에 머리와 눈으로 즐기는 소설이지 가슴으로 즐길 수 있는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 작가의 목표도 머리와 눈으로 즐길 수 있는 소설을 쓰려 했을 것이다. 진정으로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3부작 중 2부와 3부의 전개는 1부의 전개에 비하면 덜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도저히 연관 없어보이는 기막힌 사건과 특이한 사람들이 산발적으로 등장해 묘한 긴장감과 몰입감을 가져다주는 1부와 1부의 여러 작은 이야기들 사이의 연결과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하나의 큰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다룬 2,3부는 아무래도 재미와 흥미라는 측면에서 다른 위치의 출발선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아쉬움이 있지만, 어쨌든 그는 호불호가 있을 법한 자신의 재능을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방법으로 표현할 줄 알았던 작가였고, 도저히 일원화하기 힘든 개성적인 인물들과 사건들을 힘 있는 문체로 손 쉽고 개성 넘치게 묶어버릴 능력이 있는 작가다. 자신만의 색깔에서 배어나오는 매력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표현하는 것, 그것은 천명관의 법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