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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정은 명조 역사상 최고의 재상으로 평가받는다. 명조에는 법적으로 이전 왕조에서 존재했던 승상 등의 강력한 권한을 가진 신하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장거정은 당시 어렸던 만력제를 대신해 환관 풍보와 만력제의 생모인 태후 이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명조 역사상 가장 습진적인 개혁을 펼칠 수 있었다. 


장거정의 개혁은 우선 문란한 공직기강을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고성법을 통해 육과와 내각이 지방관들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여 관리들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정책을 시행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다. 또 척계광과 이성량을 등용하여 변방을 안정시켰다. 


전국적인 장량 정책으로 토지 결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일조편법을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해 세수를 대폭 증가시키고, 황하의 치수를 반계순에게 맡겨 성공시킨 점 등 장거정의 개혁은 성공적이었고 만력 초반 10년, 명조는 중흥기를 맞이한다.


저자는 장거정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개혁이 최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장거정은 시대가 요구한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그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개혁을 위해서라지만 각종 관직에 자기 사람을 등용하고, 유생들이 공론을 만들어내는 서원을 거의 없애버린 점 지나치게 독선적으로 정책을 수행해 그의 사후 모든 개혁이 물거품이 된 것 등은 비판받아야 한다. 또한 개인적인 면모이기는 하지만 만력제에게 검약을 강조했음에도 본인과 그의 친족들은 공공연히 뇌물을 받았다는 점은 만력제가 장거정에게 반감을 갖게 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즉 저자인 오금성의 평가는 장거정의 이런 점을 너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장거정을 보면 송대의 개혁가였던 왕안석이 떠오르는데, 둘 다 개혁을 추진했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개혁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다른 의미로 장거정의 실패는 시대의 실패이기도 했는데, 기본적으로 황제중심체제인 명조에서 장거정이 그 덩도의 개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만력제의 무한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만력제의 변심은 곧 개혁의 실패가 된다는 뜻이다. 


결국 만력제는 장거정 사후 그를 난신적자로 규정하며 모든 개혁을 장거정 이전으로 되돌려놓았고, 황제 자신은 방탕한 생활에 빠져 국사를 돌보지 않았으므로 장거정의 실패는 시대의 실패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