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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 프로듀스 48 >이 한국에서 방영될 당시, AKB48 멤버들이 한국 땅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벌어졌던 한 일화가 떠오른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어느 팬이 48계열 일본인 멤버들을 보자마자 너무 감격한 나머지 “이게 일본이다! 이것이 일본이다!”라고 외치며 부끄러운 명언을 남겼는데 나는 이 시집을 읽고 “이게 시인이다! 이것이 시집이다!”라고 외칠 뻔했다. AKB48 오타쿠의 부끄러운 모습과 달리 이 외침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 이 시집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오히려 이 시집에 대한 찬양을 외치지 않는 게 더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인과 시집이 세상에 많아진다면 다른 시인들은 시집이 팔리지 않고 독자들의 수준을 맞추지 못해서 절필하거나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시인이 힘을 빼고 썼음에도 후반부에 괜찮은 시들이 여럿 눈에 띈다. 다른 시인들의 시집보다 몇 차원 위의 시집이었다. 스페인 라리가를 평가할 때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제외하고 실력과 순위를 따져야 하며 신의 경지에 다다른 그 두 팀 외의 다른 팀들은 인간계의 정상을 노려야 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이 시인은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합친 듯하다. 라리가와 비슷한 구도의 리그라고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 축구 리그의 ‘셀틱’이란 팀도 떠오른다. 라이벌 팀이던 ‘레인저스’가 파산하며 홀로 스코틀랜드 리그를 씹어 먹는 셀틱의 위상이 내가 느끼는 이 시인의 기량과 비슷해 보인다. 올림픽 종목으로 비유하자면 한국 양궁 대표팀의 수준과도 비슷하다고 본다. 피겨 스케이팅으로 비유하자면 김연아와 국내 다른 선수들의 기량 차이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수식어를 쓰더라도 내가 이 시집을 읽고 느낀 감상과 감성을 격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미안하다. 감상문을 쓰는 양반네가 축구 팬이자 김연아 팬이라서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사흘 굶은 거지가 눈앞의 먹을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속도만큼 이 시집도 순식간에 해치우듯 정신없이 읽었다. 참고로 며칠 굶은 와중에 갑자기 급하게 먹으면 배탈이 나서 큰일 날 수 있다. 웃긴 건, 굶다가 음식물을 갑자기 섭취한 것도 아니고 시집을 급하게 읽었을 뿐인데 정말로 내가 배탈이 났다는 점이다. (사실 요 며칠 동안 워낙 힘든 일이 많았던지라 스트레스로 인해 위장염이 지속됐다) 이런 명작 그 자체를 급하게 연달아 읽은 죗값을 치른 게 아닐까 싶다.
와, 세상에. 이런 시인과 시집이 다 있다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굉장하다. 그 말밖엔 안 나온다. 폭풍 같은 인생 시집 두 권은 연달아 읽다니, 뭔 복 받은 날인가 싶다. (다만 감상문은 사정상 다음 날 아침에 초고를 정리해 쓰게 된 점 양해 바란다)
어쩌면 이 시집을 재독하게 된다면, 내가 뭔가에 씌인 터라 ‘왜 내가 이 시집을 그렇게 극찬했었지? 이해가 안 되네.’라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집을 처음 읽은 그때의 감정과 충격만큼은 반드시 남기고 싶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다. 나는 한국 문학을 비난하고 비웃을 때도 있으며, 한국 문학이 가진 권위와 권력이 무너지기를 누구보다 바라지만 한국 시는 건드리고 싶지 않다. 한국 문학을 진정 알고 싶다면 시를 추천하고 싶다. 시는 깔 수가 없다. 이운재 골키퍼가 인성이나 음주 문제로 논란이 되거나 자기관리 문제로 살이 찌고 소속팀에서 주전 경쟁에 밀리기까지 했다만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수문장으로서는 말 그대로 까임방지권을 갖고 있듯 부디 한국 시는 인정해주길 바란다. 설령 이 시집이 지극히 개인적인 내 취향 때문에 너무 과장되어 좋게 읽힌 것일 수도 있으나 한국 시의 위상은 결코 함부로 깎아내릴 수 없는 존재다.
앞으로 한국의 명시들과 명시인들, 그리고 명작 시집들이 많이 알려지고 읽히기를 바란다.
일본 아이돌을 좋아하며 우월감을 느끼고 대놓고 극찬하는 모습은 부끄러워 보이겠지만, 한국 시를 좋아하며 우월감을 느끼고 대놓고 극찬하는 모습은 절대 부끄러운 행위가 아니며 문학을 사랑하는 이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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