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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돌 숨비소리 > - 신경림 외 (걷는사람)
제주 4.3사건 추모의 목적으로 여러 시인들의 시가 한 편씩 수록된 시집으로 보인다. 어딘가 살짝 프로파간다의 목적으로 쓰인 시들이 많을까 우려됐지만 쉬어간다는 느낌으로 편하게 읽어볼까 한다. (결국, 내 우려는 안타깝게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참고로 첨부된 사진 속 시인들의 명단 외에도 더 있다. 모든 시인들의 이름이 다 나오도록 사진을 찍기 힘들어서 저 정도만 찍어 올린다.
보통의 시집보다 2~3배 분량으로 많다. 시 자체로서 보더라도 잘 쓰인 시는 시집의 분량에 비해 적을 듯했다. 여러 시인들의 시가 한 편씩 수록되어 그런지 시들의 수준이나 스타일이 제각각이었다. 시집 한 권으로 놓고 보자면 굴곡이 심했다.
의외로 잘 쓴 시도 여럿 보인다. 이와 반대로 평범한 중고교 학생들이 백일장에서나 썼을 법한 수준의 시들도 눈에 띈다. 이 시집이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묶인 것과 별개로 시인들의 기량을 비교하는 맛도 쏠쏠하다. 같은 주제의 시를 쓰더라도 수준의 차이는 제각각인 듯하다. 애초에 이런 프로파간다 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시집에 작품성까지 바라는 건 무리일 듯하다.
4.3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내 지식이 부족해서 잘 모르겠으나, 시어에 동백꽃이 자주 등장한다. 무슨 의미일까.
역시 시는 주제와 목적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작품성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시는 시 자체를 추구하고 시 자체가 목적이어야 할 것 같다. 프로파간다도 적당히 섞어야 작품이 된다. 특히 사상에 잡아먹힌 시는 시로서의 가치를 잃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나저나 시집 맨 뒤페이지를 보니 시인들 중 직접 4.3사건을 겪어본 이들은 물론이고 실제 제주도 출신이라서 4.3사건의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본 시인은 의외로 많지 않은 듯하다. 이건 그냥 주제에 맞춰 시인이 상상력을 발휘해 창작된 시들이 많아 보인다. 직접 겪어보지도, 온몸에 와 닿지도 않는데 어거지로 시를 수록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쓴 시인도 여럿 있지 않을까 싶다. 경험을 바탕으로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들이 많지만 어째 내 눈에는 지어낸 내용으로 보인다. 시 자체로 보자면 억지로 눈물샘을 쥐어짜면서 쓴 느낌도 든다. 4.3사건의 비극성과 별개로, 수록된 시 상당수가 허울뿐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절로 든다. 내 눈에는 어딘가 답답한 느낌의 시집이다. 정치성향과 별개로, 이 시집은 ‘무찔러라 공산당’ 같은 반공 포스터나 미 제국주의의 악마들이랍시고 선동 매체를 그려대는 북한의 창작물들과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분명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사람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취급하거나 사상에 문제가 있다고 몰아가거나 제주도민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으냐며 따질 수 있겠으나 솔직한 내 심정을 감추고 싶지는 않다.
아니 근데 김석교의 ‘강동휘 선생님’은 산문시란 말도 아까운 단편소설 수준인데? 이건 아무리 봐도 시라고 보기 힘든데? 당혹스럽다. 프로파간다가 이제는 감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자극하는 것도 모자라 창작물의 장르까지 파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게다가 읽기 힘든 고어와 사투리의 난무에 읽는 내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 시집의 작품성과 별개로, 나는 원래 사투리를 듣는 건 좋아하지만 직접 텍스트로 읽는 건 무척이나 힘들어 하는 사람이다.
4.3 사건 피해자 분들과 유가족 분들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주제와는 별개로 함량 미달의 시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급식이들 백일장에서나 볼 법한 시들의 모음을, 아마추어도 아닌 등단 문인들이 써서 책으로 엮다니. 한국 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나로선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추모의 심정과 별개로 이런 부류의 시들은 읽고 싶지 않다. 제발 시 자체를 잘 쓰도록 노력 좀 하자!
여기서 살짝 오만한 발언을 하나 해야겠다. 4.3 사건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이 시집에 수록된 수준이 떨어지는 시들보다 내가 AKB48 멤버들을 주제로 애정을 표현하며 쓴 글들이 더 수준 높을 것 같다.
한국에서 가장 잘 쓰는 문학 장르가 시라고 생각한다. 한국 시만큼은 대중적이지 않고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자부심을 느껴도 될 만큼 평균적으로 수준이 높다고 보는데 이 시집은 시집 자체의 완성도로 봤을 때 한국 시의 수준에 먹칠을 가하는 수준이다. 내가 너무 사이코패스처럼 잔인한 평가를 한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냉정하게 말하고 싶다. 난 4.3 사건 피해자들을 비난하거나 고인을 모독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시를 시 자체로 읽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하는 쓴소리이다. 내가 AKB48 등의 아이돌을 주제로 헛소리를 지껄이더라도 작품성과 문장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시집에는 심혈을 기울여 쓴 시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시들도 여럿 담겨 있다. 애초에 그런 시들까지 수록한 게 문제다. 한국 시를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한 명의 독자로서 용서가 안 된다. 어떤 주제의 글을 쓰든 글 자체를 잘 써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제발 진지한 주제나 사상, 중대한 사건을 다룬다고 해서 모두가 공감해주거나 작품성이 높아질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건 나도 예전에 글을 쓸 때 종종 저질렀던 실수 중 하나이다.
물론 수록된 시들을 통해 제주 4.3 사건이 얼마나 끔찍하고 비극적이었는지 짐작하는 데는 확실히 도움을 준다. 허나 지나친 프로파간다 목적이 앞서느라 시인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듯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분량 문제로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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