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탐구란 무엇인가?

'누가' 진실을 찾는가? 그리고 '나는 진실을 원한다'라고 할 때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프루스트는 인간이란, 설령 순수하다고 가정된 정신이라 할지라도, 참된 것에 대한 욕망, 진실에 대한 의지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구체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진실을 찾지 않을 수 없을 때, 그리고 우리를 이 진실 찾기로 몰고 가는 어떤 폭력을 겪을 때만 우리는 진실을 찾아 나선다. 누가 진실을 찾는가? 바로 애인의 거짓말 때문에 고통 받는 질투에 빠진 남자이다. 찾기를 강요하고 우리에게서 평화를 빼앗아 가는 어떤 기호의 폭력이 늘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프루스트와 기호들>(서동욱·이충민 옮김, 민음사 펴냄))

<국가론>에서 플라톤은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구별되는 사물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사유를 활동하지 않는 채로 내버려 두거나, 사유에다가 그저 구실에 불과한, 활동이라는 외관만을 씌워 두는 사물이다. 다른 하나는 사유의 재료를 주고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사물이다. 전자는 재인식의 대상이다. 모든 능력들은 이 재인식의 대상에 대해 실행된다. 그러나 재인식은 능력들의 우연한 실행이며, 재인식이란 예컨대, '저건 손가락이야', 저건 사과야, 저건 집이야 등으로 표현되는 판단이다. 반대로, 우리에게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또 다른 사물들이 있다. 그것은 '재인식할 수 있는' 대상들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을 쓰는 사물들, 우연히 '맞닥뜨리는' 기호들이다. (…) 감각적 기호는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것은 기억력을 동원하고 영혼을 움직이게 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영혼이 사유를 움직이게 하고 사유에다 감성이 당하는 압박을 전해 준다. 그리고는 마치 본질이 사유되어야 하는 유일한 것인 듯이 사유에게 본질에 대해 사유하도록 강요한다. (<프루스트와 기호들>(서동욱·이충민 옮김, 민음사 펴냄))





고전철학에서 암묵적으로 전제해왔다는 "사유자는 사유자로서 참을 원하고 사랑한다"는 명제.
그런데 우리가 본유적으로 정말 진리만을 원하고 있는 것인가?

어떤 사물들은 폭력을 쓰며 우리에게 사유를 강요한다. 다른 사물은 외관은 사유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실제론 그렇지 않은 재현의 대상이다. 어떤 사물은 본질(진리)이 사유되어야 하는 유일한 것처럼 보이게 하며 우리에게 그렇게 사유하기를 강요한다.






인상적인 구절임. 좋은 말씀 나눠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