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이 19세기 들어 중국과 인도 같은 동양의 대국을 물질적으로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 산업혁명 덕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이 기술과 과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동안 아시아가 기존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동양 철학의 시초는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일 것이다. 그들은 끔찍한 무정부상태의 혼돈에서 질서를 빚어내기를 목표로 했다. 그들의 철학은 그래서 인간의 도리에 대한 것이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맹자의 천명 사상이다. 민심이 따르는 왕조가 천명을 얻고 민심을 잃은 왕조는 천명도 잃는다는 그의 사상은 민심에 따라 하늘의 뜻이 바뀐다는 것이었다. 하늘은 기독교의 하느님 같은 전지전능한 유일자와는 다르고 일종의 자연물이라 볼 수 있다. 즉, 민심이 따르는 왕조는 세상이 뒷받쳐준다는 것이다.
헛소리 같겠지만 고대에는 저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니었다. 집이 벼락을 맞았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벼락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그 설명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대나 중세에는 그렇지 못했고 신의 천벌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럴듯한 답이었다. 현대 과학의 기계론적, 유물론적 세계관이 아닌 목적론적 세계관이 받아들어졌던 때다. 조선왕조실록에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왕이 자책하는 것도 천재지변이 왕의 부덕을 벌하기 위해 일어났다는 목적론적 세계관에 따른 것이다.
주희가 유교를 통해 형이상학을 설명하는 성리학을 만든 것은 인간의 도리가 자연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믿음에 그 기반이 있을 것이다.
한편 서양 철학은 자연철학을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가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을 때부터 정치철학이나 윤리학과는 별개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로마 이후의 중세에는 기독교 신학 외에는 없는 암흑기가 왔다. 사실 교회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데 야만족이라 여겨지던 게르만족이 문명이라 여겨지던 로마를 대체한 중세에 지방 행정, 교육, 문화 등을 유지한 것은 교회이다. 중세가 심심해진 것이 교회 탓은 맞지만 역사적 공로가 없지는 않다. 하여튼 인간도 자연도 아닌 전지전능한 유일신 중심의 세계관은 1000년 가까이 유럽을 지배했다. 그렇지만 교황권이 십자군 전쟁 이후 아비뇽 유수, 흑사병, 비잔틴 제국 멸망, 종교개혁, 로마 약탈, 30년 전쟁을 거쳐 내리막길을 걷자 근세에는 신의 섭리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동양에서 유교는 염철논쟁 같은 일이 있었더라도 결국 사회를 끝까지 지배했다. 이 시대 경험론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의 저작 ‘신기관’은 스콜라 철학에 큰 영향을 준 아리스토텔레스가 ‘기관’으로 연역의 기초를 세운 것처럼 그도 귀납의 기초를 쌓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갈릴레이, 케플러 같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뉴턴이라는 천재가 그 유명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썼고 그 때가 자연철학이 자연과학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동양 철학의 시초는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일 것이다. 그들은 끔찍한 무정부상태의 혼돈에서 질서를 빚어내기를 목표로 했다. 그들의 철학은 그래서 인간의 도리에 대한 것이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맹자의 천명 사상이다. 민심이 따르는 왕조가 천명을 얻고 민심을 잃은 왕조는 천명도 잃는다는 그의 사상은 민심에 따라 하늘의 뜻이 바뀐다는 것이었다. 하늘은 기독교의 하느님 같은 전지전능한 유일자와는 다르고 일종의 자연물이라 볼 수 있다. 즉, 민심이 따르는 왕조는 세상이 뒷받쳐준다는 것이다.
헛소리 같겠지만 고대에는 저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니었다. 집이 벼락을 맞았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벼락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그 설명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대나 중세에는 그렇지 못했고 신의 천벌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럴듯한 답이었다. 현대 과학의 기계론적, 유물론적 세계관이 아닌 목적론적 세계관이 받아들어졌던 때다. 조선왕조실록에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왕이 자책하는 것도 천재지변이 왕의 부덕을 벌하기 위해 일어났다는 목적론적 세계관에 따른 것이다.
주희가 유교를 통해 형이상학을 설명하는 성리학을 만든 것은 인간의 도리가 자연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믿음에 그 기반이 있을 것이다.
한편 서양 철학은 자연철학을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가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을 때부터 정치철학이나 윤리학과는 별개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로마 이후의 중세에는 기독교 신학 외에는 없는 암흑기가 왔다. 사실 교회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데 야만족이라 여겨지던 게르만족이 문명이라 여겨지던 로마를 대체한 중세에 지방 행정, 교육, 문화 등을 유지한 것은 교회이다. 중세가 심심해진 것이 교회 탓은 맞지만 역사적 공로가 없지는 않다. 하여튼 인간도 자연도 아닌 전지전능한 유일신 중심의 세계관은 1000년 가까이 유럽을 지배했다. 그렇지만 교황권이 십자군 전쟁 이후 아비뇽 유수, 흑사병, 비잔틴 제국 멸망, 종교개혁, 로마 약탈, 30년 전쟁을 거쳐 내리막길을 걷자 근세에는 신의 섭리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동양에서 유교는 염철논쟁 같은 일이 있었더라도 결국 사회를 끝까지 지배했다. 이 시대 경험론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의 저작 ‘신기관’은 스콜라 철학에 큰 영향을 준 아리스토텔레스가 ‘기관’으로 연역의 기초를 세운 것처럼 그도 귀납의 기초를 쌓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갈릴레이, 케플러 같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뉴턴이라는 천재가 그 유명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썼고 그 때가 자연철학이 자연과학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이게 언제적 사관이고.. - dc App
중세가 암흑기라는 얘기는 뭐 6,70년대임?
업데이트 좀 누르쇼
추월한적이 없지 항상 서양은 앞서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