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독갤에서 본 어떤 글에서 사유에 의한 감동을 주지 않고 상황에 의한 감동을 주는 신파는 키치라고 하면서
그 예로 소년만화에서 나오는 신파적인 장면들을 보고 키치라고 했던 걸로 기억하거든.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어떤 글에서는 라노벨에서 감동을 주는 것이 신파라고도 했고.
그 글들을 볼 때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또 생각이 달라짐.
키치는 기본적으로 저급문화가 고급문화의 탈을 쓴 걸로 설명되잖아?
근데 저급문화(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론)인 소년만화에서 저급감동(?)인 신파를 넣는 걸 신파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캠프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내 생각엔 이런 소년만화 같은 저급문화에서 키치라는 건 발생하지 않음.
왜냐하면 그 작가들은 그런 감동을 정말로 예술적이라고 생각해서 쓴다기보다는 자신들의 문화에서 쓰이는 코드를 쓴 거거든.
게다가 독자들도 이런 감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일종의 유희로서 즐기는 편이고.
물론 작가나 독자들 중에는 이런 감동을 진지하게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긴 함. 페이트는 문학이다라고 주장하던 달빠처럼.
하지만 이런 돌연변이(?)들은 금세 진압됨. 왜냐하면 결국 그런 이런 만화나 게임들은 결국 저급 문화거든.
아무리 저런 돌연변이들이 날뛰어도 결국은 '만화 좀 그만 봐.', '야겜이 무슨 예술이야.'라는 말로 진압이 됨.
결과적으로 키치적인 태도가 발생하기도 힘들고 설령 키치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이 나타나더라도 금세 대중들에 의해 사그라드는 거지.
내 생각엔 이런 키치적인 태도는 소년 만화나 상업영화나 대중음악이나 통속 소설 같은 저급문화보다는 예술영화나 순문학이나 클래식 같은 고급문화에서 더 발생하기 쉽다고 봄.
이런 고급문화에서는 저급감동을 주어도 사람들이 저급하다고 말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 문화는 고급문화여서 그걸 비판하는 것 자체가 자신이 저급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거든. 게다가 이런 저급감동은 대중에게 깊은 호감을 주어서 이를 비판하는 것 자체가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사람들은 자신을 기분 좋게 해주는 이런 저급감동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저급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저급한 것을 저급하다고 말하지 못하게 됨.
그 결과로 오히려 저급문화에서는 키치적 태도가 발생하기 힘들지만 고급문화에서는 키치적 태도가 융성하게 됨.
실제로 쿤데라는 로맨스가 섞인 추리소설을 쓰는 아가사 크리스티는 키치라고 하지 않았고(심지어 즐긴다고 했고) 클래식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차이콥스키를 키치라고 했지. 이걸 보면 키치는 흔히 말하는 저급문화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고급문화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음.
나는 이런 의견을 가지고 있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함?
저급문화랑 고급문화를 뒤섞어서 알 수 없게 만드는 핀천을 읽으면 됩니다
쿤데라가 말하는 키치는 문화 용어로서의 키치랑은 좀 다르다고 생각함
난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당장 쿤데라가 키치로 든 것 중에서 저급문화에 해당되는 것이 있었나?
물론 키치적 태도 같은 것은 기존의 키치를 확대한 것이 맞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존의 키치와 다르다고 생각 안 함.
게다가 저급감동은 크리스티도 꽤 쓴 사람으로 알고 있음. 그러면 쿤데라는 크리스티도 싫어해야 하지 않을까.
추리소설은 고오오급 문학입니다만
난 키치가 꼭 저급문화에 고급문화 감성 끼얹는 거라기 보단 고급진 것에 대한 작가의 자의식이나 집착이 이야기의 다른 부분과 동떨어지게 튀어나오면 그게 키치가 되는 것 같음. 일본에서 B급 영화 찍는 감독이나 에로게 라이터들이 키치 소리 듣는 것도 그렇고 단순히 "대중성과 작품성을 둘 다 잡았다!"라며 이상한 뽕 느끼는 걸로는 키치를 설명하기 힘든 듯
그건 키치라기보다는 작가가 키치적 태도를 가진 것이 아닐까.
신파가 현재에 치키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건 과도한 남발로 탈키치화해서가 아닌가 싶음. 만약 예전이었으면 "아 깊은 감동을 주는 스토리에요~" 했을게 이건 좀 싶을 정도로 뻔하디뻔하고 과해서 까이는 거잖음. 시작은 키치였지만 거기서 빠져버린 거 아닐라나.
그건 그냥 클리셰화 아님? 대중들에게 잘 먹히는 이야기를 더 많이 쓰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대중들에게 잘 먹히는 이야기를 영화에 많이 넣으려고 하잖아. 자신들의 저급문화에서 잘 통하는 코드를 사용하는 거니까 더더욱 키치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음?
그니까 시작은 그게 저급이 아니었던 것처럼 보였던 거지. 어쨌든 눈물을 흐르게 하고 감동을 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이게 남발되면서 질려하는 대중들도 생기고 오히려 신파를 기대하고나 의식하면서 예술을 즐기는 부류도 생겨나면서 키치에서 캠프로 분류가 바뀐게 아닌개 하는데
대중들은 처음에는 신파가 고급스러운 것으로 생각했다는 거임? 하지만 그 말이 맞다고 해도 그런 키치적 태도는 어디에서 생긴 걸까? 만약 그런 신파가 야겜 같은 저급문화에서 태어나는 것이라면 대중들이 그걸 고급스럽다고 생각할까? 절대 아니지. 몇몇 돌연변이를 제외하고는 그런 놈들은 생겨나지 않아. 그런 신파를 고급감동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키치는 저급문화에서 발생할 수 없어. 오히려 고급문화에서 발생하는 거지. 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키치는 고급문화에서 발생한다는 이야기가 맞게 되는 거지.
신파라는 키치가 캠프로 바뀌었다는 생각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키치가 고급문화에서 발생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고 봄.
만약 그런 신파가 야겜 같은 저급문화에서 태어나는 것이라면 대중들이 그걸 고급스럽다고 생각할까? -> 만약 그런 신파가 야겜 같은 저급문화에서 태어난 것이라면 대중들이 그걸 고급스럽다고 생각했을까?
물론 모든 저급문화를 대상으로 할 순 없지만 어쨌든 대다수가 공감하는 인생작들이 저급 문화에도 존재하잖아. 참 좋은 영화더라~ 그런 거. 그런데 유행 지나서 10년만 지나가도 금세 뒤떨어졌더고 평가 뒤바뀌고. 당시에는 키치로 인식하지 못하던 작품이 세월이 흘러 껍질이 벗겨지고 오히려 캠프로 즐기는 사람들만 찾게되고. 키치적 태도의 유행도 비슷한 거 같은데
고급문화에서 키치가 나온다기보다는 키치로 인해 저급인 것을 고급으로 인식하고 자리매김한다고 보는게 맞을 거 같음.
하지만 네가 말하는 사람들이 (저급)감동을 받은 작품들을 정말로 예술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예를 들어 7번방의 선물을 시민 케인 같은 영화사의 진정한 예술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지금이 아니라 7번방의 선물이 개봉됐던 시기로 되돌아가서, 그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시민 케인이나 게임의 규칙 같은 예술 영화처럼 예술성을 획득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그들은 정말로 그 작품이 예술적이라고 말할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분명 좋은 영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예술적인 영화라고는 말하지 않지. 설령 그런 사람들이 있어도 비웃음이나 받겠지.
본문에서도 썼듯이 그런 돌연변이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결국은 소수야. 본문에서도 썼듯이 페이트가 문학이라고 주장하던 달빠들이 쳐맞고 얌전해진 것처럼 결국은 사그라들지.
진짜 위험한 건 고급문화의 거장으로 대접받는 작가들이 저급문화에 해당하는 작품을 쓴 경우야. 이런 경우는 그 작가의 이름값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가려버려서 누군가가 그 작품의 저급성을 꼬집어도 다른 사람들이 그를 묻어버리지. '내가 받은 감동을 남들도 받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