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https://www.youtube.com/watch?v=BbwqkJ3luZM


< 화가 > - 미쓰다 신조 (북로드) 현정수 옮김



한국에서는 흉가가 먼저 출간됐지만 원래 저자의 집 시리즈는 화가가 첫 작품이라고 한다. 이번 작품도 기대가 된다.

흉가에 비하면 긴장감이 덜했다. 적어도 전반부는 확실히 그랬다.

아니, 그나저나 흉가에서도 그랬다만 집이 이리 무서워서 어찌 산다는 건가? 일상 속 하루하루가 목숨을 건 사투와도 같다. 이번 작품에서 배경이 되는 집이 흉가보다 훨씬 심각하다.

중반부까지만 놓고 봤을 때 이번 작품의 주인공 코타로가 흉가의 주인공 쇼타보다 훨씬 불리한 입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모든 문제와 맞서야 한다. 괴이의 존재도 훨씬 위험하고 강해 보인다. 코타로를 절로 응원하게 된다. 힘내라, 코타로!

흉가에 비해 코타로는 더욱 어른을 신뢰하지 않는 듯하다. 동료인 레나가 흉가에 등장했던 쇼타의 친구보다 어째 더 믿음이 가지 않는다. 쇼타보다 나이는 많지만 여러모로 더 어려운 상황인 듯하다.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줘야 할 집에서 매일 같이 위협을 당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니. 비극이 따로 없다.

후반부쯤 코타로와 레나가 도서관에서 알게 된 반전이 나름 충격적이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전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분량이 아직 백여 페이지가 남아 있다만, 미쓰다 신조의 소설에서 본 반전 중 최고였다.

문득, 코타로가 자신이 어릴 때 살던 집에 돌아왔다는 내용을 보며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이 떠올랐다. 물론 그보다 어떤 면에선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지만.

레나를 보니 해리포터 시리즈의 헤르미온느처럼 느껴진다. 물론 헤르미온느에 비하면 능력이 한참 부족해 보인다. 보급형 헤르미온느라고 치자. 코타로와 잘 이어지길 바란다. 론 위즐리 같은 경쟁자가 없으니 가능할 거라고 본다. (결국 내 바람대로 이뤄졌다!)

흉가에 비해 잔잔하면서 긴장감이 넘친다. ‘흉가가 후반부에서 급박한 전개의 연속이었다면 이 작품은 그보다 속도감에선 덜하지만 긴장감은 절대 늦출 수 없다. 적어도 집에서 겪는 괴이 현상만 놓고 보면 흉가에서 쇼타가 겪었던 일과는 비교도 안 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여러 비밀이 드러나며 재밌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부모도 없고 가난해서 다른 집으로 이사하기 힘든 미성년자의 부동산 문제가 아닐까? 괴이 현상이나 귀신, 신령 같은 존재보다 현실적인 주택 문제가 더 무섭다고 본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제발 부동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주길 바란다. 귀신이나 살인자보다 더 사람을 암담하게 만든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결말을 확인한 채로 읽게 되어 씁쓸했다. 왜 나는 추리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마다 결말을 미리 알고 읽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마치 지금껏 알면서도 중동의 침대 축구에 당하는 한국 축구를 보는 기분이다.

뜬금없이 레나의 오빠 레이지의 방에 아이돌 수영복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는 내용이 나올 때 움찔했다. , 나로선 눈에 훤히 그려지는 장면이다. 내 얘기는 아니지만(내 방에 아이돌 관련 굿즈라고는 어릴 때 샀던 소녀시대 1집 음반밖에 없다!) 내 오타쿠 동지들이 떠올라서 괜히 찔렸다. 아이돌 사진을 덕지덕지 벽에 붙인 것을 자랑하던 지인 한 명이 떠올랐다.

결말로 향할수록 저자의 스타일답게 괴이한 일들 속에 합리적인 추리 요소와 더불어 복선들이 눈에 띈다. 결말을 모르고 봤다면 더 재밌었을 텐데 안타깝다. 흑흑.

저자의 작품 속 이번 괴이 현상은 가장 기괴하며 으스스했지만 동시에 슬픔도 엉켜 있었다. 그래서 더 씁쓸했다.

식칼을 든 시미에가 등장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설렜다. 식칼을 들고 코타로에게 하는 대사도 그렇고. 난 마조히스트 기질이 있어서 칼을 든 여자에게 위협당하는 상상을 종종 하며 설렘을 느낀다. ‘흉가에서 뱀신에게 빙의된 듯한 코즈미 키미를 보며 뱀순이 유우카를 떠올리듯 시미에도 내 취향의 아이돌을 덧씌워서 상상해 본다. 왜 자신을 집사람으로 받아주지 않으냐며 원념을 가진 즛키를... 넘어간다.

작품의 전반부가 괴기 미스터리라면 후반부는 현실적인 추리물에 더 가까웠다. 후반부에는 교묘한 추리적 장치들 덕분에 소설의 장르마저 바뀌는 기분이 들었다. ‘흉가처럼 빙의된 가족들보다 내 취향의 현실적 진행이 만족스러웠다.

일본식 한자를 갖고 이름을 대상으로 종종 복선과 트릭이 등장하는데, 일본어를 잘 모르는 독자로서는 눈치 채기 어려울 수도 있어 보인다.

불길한 전조를 남기며 해피엔딩에 찬물을 끼얹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결론은 광기에 찬 사람이 가장 무섭다.

역시 미쓰다 신조는 괴이 현상이나 비과학적인 괴담 등의 요소를 추리소설로서의 기능과 적절히 섞어 쓸 줄 안다. 보통의 공포물이나 추리물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조합하는 능력이 굉장한 작가다. 자신의 작품 세계관을 누구보다 개성 있게 표현할 줄 아는 보기 드문 작가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