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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RZ5zYSDW3yE





< 새벽, 창을 열다 > - 김후란 (시학)



꽤 연배가 있으신 시인의 시집이다. 80이 다 된 연세에 낸 시집으로 보인다. 그 세대 여성분들치고는 이력도 화려한 시인이시다. 진정한 의미의 걸크러시로 보인다.

시집의 전반부에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느낌의 시들이 여럿 보인다. 황혼을 맞이하는 시인의 심정이 느껴져서 나까지 슬퍼왔다.

기교나 격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은은하고 차분하게 지난날들을 돌아보는 듯해 느낌이 색달랐다. 일종의 미리 쓰는 유서와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이 전해졌다. 동시에 생명에 대한 열망도 느껴진다. 역시나 연륜이 담긴 시들이 많다.

시들 자체는 짧은 편이고 어렵지 않은데 마음에 와 닿는다. 온갖 기교로 시어들을 줄줄이 늘어놓는 현대시들과는 차원이 다른 시 세계를 보여준다. 요즘 현대시들은 지나치게 난해하거나 운율을 무시하고 쓸데없이 길게 쓰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이 시집의 시들이야말로 운율과 함축성을 제대로 갖춘 기본기가 충실한 시들이 아닐까 추측된다. 나도 저렇게 늙어가며 시를 쓰고 싶다.

문득, 내가 사랑하는 그녀들이 떠오른다. 자본주의가 탄생시킨 아이돌이란 존재지만, 나와 그녀들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언제나 이어져 있다고 믿는데, 내가 시인만큼 나이를 먹고 그때까지도 살아있다면, 그때에도 그녀들을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아직 나로선 내 스스로에게 답변을 듣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 시집을 읽으며, 우리는 현대시 트렌드를 따른답시고 시의 본질을 잃은 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먼저 떠나보낸 이들에 대한 그리움도 종종 눈에 띈다. 늙어간다는 게 어떤 건지 절로 느껴진다. 왜 노인자살이나 노인우울증이 급증했는지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시인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이 전달하는 감정들을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시를 통해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 혹은 영원한 이별과 맞이하는 느낌이 든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시집은 거들떠도 안 봤겠으나 나도 점차 늙어가서 그런지 시들이 다르게 느껴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5부는 부제가 생명이듯, 앞서 수록된 시들에 비해 밝고 가벼웠다.

문득 떠오른 건데, 예전보다 시집을 읽고 쓰는 내 감상문의 분량이 길어지고, 사유할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나도 모르게 시를 읽으며 영혼이 성숙해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시 덕분에 나 또한 많이 달라진다는 느낌이 든다.

이 시인께도 시집을 잘 봤다고 이메일을 보내드리고 싶은데 너무 고령이셔서 괜히 피곤한 일만 키우는 게 아닐까 싶어 우려된다.

짧지만 가슴에 깊이 와 닿는 시들이 많았다. 이게 진짜 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예상외로 내 마음에 들던 시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