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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집의 말미를 보면 <영화의 맨살>로 악명 높은 하스미 시게히코의 말을 인용한다. "음악의 분야에서는 19세기에 위대한 작곡가가 많았고 20세기가 되자 위대한 연주가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1960년 이후 연주자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트로 마니아>의 사이먼 레이놀즈의 말 역시 인용한다. "공식 서사 내부에 이숨은 대안적 과거를 발굴하고, 팝의 공식 서사 후미에서 기이하되 비옥한 줄기와 걷지 않은 길을 찾아내 역사의 지도를 다시 그림으로써, 과거를 낯선 외국으로 바꿔놓는다." 곧, 순수하게 '만들어졌다'고 일컬을 수 있는 영광은 과거의 것에게만 주어지고, 현재의 것들은 과거의 재조합이란 방식으로 스스로를 소개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감벤의 <벌거벗음>에서 비슷한 말을 본 적이 있는데, 후대의 예언가들은 예언이라는 독자적인 말이 아니라 현재 온전하게 경전으로 굳어진, 과거에 나온 예언들의 새로운 '해석'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예언을 풀어놓아야 했다는 말이다.
처음 <내가 싸우듯이>를 읽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의 인상과 조금 다르다. 그 당시 나는 이런 일종의 취향 전시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글이나 글 외의 방식에 생소했고, 이런 글도 있을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었다. 지금도 감탄스럽지만, 이것이 새롭다는 의미에서보다는 글을 참 다시 봐도 잘 썼구나, 하는 느낌의 감상에 더 가깝다. 정지돈의 신작들을 둘러보며 다시 찾은 <내가 싸우듯이>에 대한 생각은 이런 식으로 변했다.
<내가 싸우듯이>의 단편들은 대략적으로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상술한 방식처럼 자신의 취향을 토대로 좋아하는 것들을 과시하듯이 재조합하는 단편들. 또 하나는 기묘한 비유를 하나의 소재로 두고 이리저리 그 주위를 돌아다니지만 결국 텍스트 상에선 결코 도달할 수 없고 독자의 맥락을 포함해서만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단편들. 후대의 예언가들처럼 말하자면, 전자는 볼라뇨스럽고 후자는 브라우티건스럽다. (예전에는 DFW를 읽으며 정지돈과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같은 지점에서 출발해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받은 두 작가일 수는 있어도, 둘의 글이 그 자체로 유사하진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전자의 단편들이 더 좋다. 왜냐면 이쪽이야말로 아직까지도 현대의 문화를 더 잘 대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므로 음악 애호가들의 문화를 예시로 이야기하겠다. 플런더포닉스라는 장르가 있다. 다양한 음(음악이든, 아니면 애초에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 음원이든)들을 잘라내고 조합해 아무렇게나 모아놓은, 사운드 콜라주보다는 조금 더 대중음악에 가깝고 매쉬업보다는 훨씬 더 진지한 장르이다. 이 장르에서 중요한 점은 그 음악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느냐도 있지만, 그 음악을 만드는데에 들어간 '재료'가 얼마나 다양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느냐도 한몫 한다. (그리고 이런 재료들의 인지도 차이가 얼마나 균일하게 잘 섞여 있는지 역시.) 오타쿠 문화로 유명한 일본이 이런 장르에 파고드는 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오토모 요시히데大友良英의 <혁명경극>이나 <Memory&Money>처럼.) 그리고 음악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조차, 탑스터라는 방식으로 이를 모방하곤 한다.
이런 장르가 나오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음악이 너무나 자르기 쉬워졌고, 너무나 접하기 쉬워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자르기 쉽다는 말은 이제는 과거와 달리 특정한 음악이라고 하는 것을 명확히 손에 잡히는 음반, 또는 파일로서 구할 수 있고 그렇기에 그 원본의 아우라를 그대로 간직한 채 재료로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접하기 쉽다는 말은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한데, <레트로 마니아>에서 이야기하는 논조처럼 단순히 넘길 수 있고 쉽고 다양하게 추천받을 수 있는 시대라는 말보다는, '할 수 있기에 하지 않는 사람은 능력 부족이 아니라 의지 부족으로 취급받는' 시대라는 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렇다.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옛날엔 그저 이 음악이 좋다는 말로 충분했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이 음악이 어째서 좋은가, 에 대한 해석을 화성학적이나 가사의 시대적 맥락 등의 요소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음악이 어째서 좋은가, 라는 질문에 대해 'XX년 전의 특정 요소 A가 이 음악에서 발전되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리고 실제로 이 특정 요소를 듣기 위해 검색을 하면, 납득할 만한 설명이다. 고전적인 음악은 실제로 정전이 되었기에, 이 정전을 듣지 않고 그 발전이나 변형을 논하는 것은 당연히 웃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정전 역시 전대의 그림자를 찾아야 하지 않느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알려지지 않은 가상의 원류까지. 그리고 이런 '알려지지 않았다'라는 요소는 라디오 방송 시대에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훨씬 큰 페널티였기에, 음악적으로는 '영향을 받았을 것이 틀림 없다'라고 생각되는 요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영향을 받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가상의 조상을 만드는 셈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영향력에 대한 글이나 데이비드 번 등의 컬트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런 경우는 꽤나 많다.) 그렇기에 이것이 반쯤 거짓말이란 것을 알아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하곤 한다. 그럼에도 그것이 자신의 주장에 대한 좋은 근거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에 취미를 깊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런 식이다. 그 점을 생각해보면, 정지돈의 단편들은 이런 심리와 경향을 여전히 잘 보여주고 있는 글이다. 특히,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고 일종의 어리숙한 자기반성을 하면서도 동시에, 이 글이 만족스럽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더더욱. 아마 내가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계속, 정지돈의 글만큼 내게 와닿는 글이 그리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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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에 맞을지는 모르지만 한 번쯤 건드려볼만한 가치는 분명히 있는 책이라고 생각함 ㅋㅋ
포락갤 탑스터식 취향전시 이상이하도 못되는 작품집
님... 감상문까지 ㅈㅈ돈 냄새남
조금 의도했는데 잘됐네 굿.........
예시가 적절해서 확 와닿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