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게 17세기란 대중의 힘에 의해 성립되었던 공화주의가 다시 똑같은 대중의 힘에 의해 왕정주의로 돌아간 격동의 세기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혁명이 반(反)혁명에 의해 전복되었던 시기였단 말이죠. 그리고 이 시대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렌즈를 깎던 위험한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1.24 ~ 1677.2.21]는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화주의자였던 그가 떠올린 의문이란, 도대체 반(反)혁명과도 같은 끔찍한 반동이 왜 벌어지냐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는 현실 자체를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이 현실이란 것은 결국 세계 안에서 구성되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그의 탐구는 세계 그 자체에 대한 탐구가 됩니다. 즉, “존재론”이었죠. 스피노자는 인간된 존재를 존재가 자기1 자신의 실존을 유지 보존하려는 힘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힘이 바로 “코나투스conatus”였고, 이 힘을 통해 구성된 실재가 곧 본질이었습니다. 이 코나투스를 위한 욕구가 인간의 의식을 동반할 때 그것이 ‘욕망’이 되었고, 따라서 욕망이란 인간이 자신의 코나투스를 유지 보존하려는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코나투스를 억압하는 왕정주의가, 그것도 어째서 왕정주의의 최대 소외자인 대중에 의해 반(反)혁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재도래하였는지를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피노자의—바티칸의 금서—그 유명한 『에티카Ethica』의 4부에서 그는 선/악, 정의, 죄 같은 개념들을 논하는데, 이들 모두가 인간의 내부에서 나온 본래적인 것들이 아니라 인간이 사회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개념들에 불과함을 논증하고자 했습니다—이 대목에서 니체가 스피노자에게 취해버린 것이기도 하고요. 따라서 스피노자의 정치철학을 따라가자면, 17세기 네덜란드의 현실이란 것은 과거 사회의 배타적 권력을 지녔던 왕이나 귀족과 같은 소수의 위정자들에 의해 구성된 사회적 틀에 의해, 혹은 그 틀의 관성으로 인하여 생겨나버린 노예근성이 대중들의 코나투스를 억압하는 반(反)혁명적 정서를 일으킨 것으로 분석됩니다.
위정자들의 입장에선 이만큼 위험한 철학이 또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현실이 철저하게 구성된 것이라면, 존재론에서 언급한 코나투스를 위하여 인간은 이 기존의 구성을 해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리게 되기 때문이지요. 인간에 대한 존재론, 그리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존재론이 스피노자에게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의 틀을 주었고, 또한 혁명의 유효함을 논증해주었던 것입니다. [하긴 뭐, 신도 해체한 마당에 스피노자가 왕인들 무서워했겠습니까? 그 특유의 평안에 대한 애착만 아니었으면, 아마도 혁명 판을 뛰어다녔을 위인이었을 겁니다.] 스피노자 사후 대략 한 세기 뒤인 1789년 7월 14일 프랑스대혁명의 함성은 역사의 오랜 타성을 이겨낸 대중들의 코나투스를 향한 욕망이 폭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스피노자의 존재론이 옳았던 것입니다.
기독교 파문 당한 것만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초월적 신, 선, 정의, 죄를 해체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신의 권위를 앞세워 초월적 권력을 가지게 되는 군주제를 위협하는 문제도 되는 거였네
ㅅ피노자가 이후 일어나는 민중혁명들의 선구자로도 볼 수 있다는 거네 퍄... 또 스피노자뽕에 취한다
나 이제 스피노자 그래픽 평전 읽을건데 기대된다
재밌겠노. 근데 그래픽평전이 머임?
만화 위인전같은거
ㅇㅎ 그 뜻이 맞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