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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 - 신경림 엮음, 김용문 시도자 (글로세움)



신경림이 한국 현대시 백년사 동안 발표된 괜찮은 시들을 모아 엮은 시집이라는데, 김용문 시도자는 왜 따로 책표지에 소개한 건지 잘 모르겠다. 소개 글을 보아하니, 김용문은 도예가라는데 백 년의 우리 시를 백 편의 도자기로 되살린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 책에 그의 이름이 실린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도자라는 것도 정확히 뭘 의미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교과서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유명한 명작 시들이 많이 실린 듯하다.

한용운의 복종을 보니,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고 사랑해달라는 성격의 아이돌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기꺼이 복종하고 싶어진다. 리카짱의 오시헨 금지는 절대 명령!”이라는 캐치 프라이즈가 떠오른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시들뿐 아니라 생소한 시들도 여럿 수록됐다. 역시 자부심을 가질 만한 한국 시답다!

1920년대에서 1950년대의 한국 시들 중에는 한이나 그리움의 정서가 담긴 것들이 많아 보인다. 그 혼란스럽고 힘겨웠던 시절 한국 특유의 감성이 제대로 살아있다.

솔직히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뻔한 시들이 수록됐을 줄 알았으나 의외로 괜찮으며 고리타분하지 않고 신선한 시들도 여럿 보인다. 역시 한국은 예전부터 시의 강국이었다. 백 년 전 세대 시절의 한국 시도 수준이 높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한국의 현대시처럼 기교만 부리고 머리만 굴리며 시어들을 대상으로 갖가지 장난질을 하는 실험적인 시들이 범람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감수성이 느껴진다. 이건 정말 선조들을 보고 배워야 한다. 현대 주류의 한국 시는 옛 시절의 깊이와 감수성을 잃어버렸다.

어릴 때 봤던 시들 중에도, 박두진의 나 윤동주의 서시처럼 다시 읽어보니 감동을 배로 느끼는 경우도 여럿이었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나 김상옥의 묵을 갈다가의 경우에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그리고 이념 싸움 등으로 살벌했던 그 시절의 분위기가 은은하게 느껴진다. 시어들은 자극적이지 않은데 그 시절 혼란스러웠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젊은 시인들은 난해한 기교 따위는 그만 부리고 감수성을 살려 시를 썼으면 바란다. 요즘 한국의 현대시들은 감성이 메마르고 대가리만 굴려 쓰면서 자기 잘난 척 현학적인 척 온갖 허세를 부리는 느낌이다. 일부 원로 문인들이 요즘 한국 문학 작품들은 정신분열증 환자가 쓴 것 같다느니 하며 비판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괜히 그러는 건 아닌 것 같다.

신경림 본인이 엮은 시집인데, 본인이 쓴 시도 수록되어 있어 살짝 웃음이 나왔다. 본인도 이들과 같은 시의 거장이라는 자부심의 속내를 드러낸 게 아닐까 싶다.

2196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한국 현대시들은 확실히 이전 세대의 시들과는 방식이나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래도 괜찮았다. 오히려 눈에 띄는 시들이 더 많아 보인다. 한국은 굉장한 시인들이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듯하다. 역시 시의 나라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이나 독재 정권 치하에서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주제의 시들이 여럿 보인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정말 제대로 된 한국의 운동권은 1980년대가 아니라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세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586세대로 알려진 1980년대 운동권은 순수함이 사라지고 사상에 지나치게 빠져든 것 같다.

기차와 관련된 시들도 여럿 보인다. 역이나 기차는 철도 마니아들뿐 아니라 시인들의 감성도 자극하는 듯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 중이신 안도현, 이재무, 도현신, 정호승 등 낯익은 이름들이 눈에 띈다.

시집 한 권으로 한국사 100년을 훑어본 기분이다.

시집 뒤에 수록된 시인들의 간략한 이력들을 보니 의외로 일제강점기 시절 활동한 시인들 중에 모더니스트가 많았다. 그 이후 기자, 교육자, 의사 등 다양한 이력의 시인들도 눈에 띈다.

1960년대 이후엔 사회운동가 출신 시인들도 많이 보인다. 각 시대별 시인들의 직업도 분류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시집에 수록된 한국 시들이 만족스러웠다. 한국을 대표할 시들을 잘 고른 듯하다. 다만 한국사의 흐름에 맞는 시들을 위주로 선정한 듯해서 어딘가 시대와 상관없이 좋은 시들은 뽑히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지나치게 사회나 역사 등 시대 흐름을 의식해서 엮은 듯했다. 이 문제점만 아니라면 한국 시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이에게는 괜찮은 시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