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일 2020/10/23
- 30일차 2020/11/21
- 오늘 읽은 책
1. 괴테와의 대화 - 민음사, 장희찬역
540p ~ 652p - 113p
-30일차, 오늘은 무슨 날인가? 이상하게 일이 술술 풀리고 책도 술술 읽혔다.
부딪히지도 걸리지도 않는 날, 이런 날 더 중요한 일을 했어야 했나? 아니지, 오늘 하루 소중하고 편안하게 지내면 그것으로 족하다.
괴테와의 대화를 읽으면서 괴테의 조언에서 느껴지는 통찰만 얻어가려고 했는데, 에커만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 쓴 일기에는 괴테의 모습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래서 새삼 에커만의 글빨이 무척이나 훌륭하게 느껴졌다.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충실히 묘사하면서도, 거기서 떠오른 생각을 가볍지 않게 또 유용하게 써내려가다니.
현실을 겪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그 이상의 무언가를 표현하라고 하였던 괴테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커만도 그렇게 다짐했다. 이토록 풍부한 현실을 경험하면서도 이를 통해 하나의 생각을 이끌어내지 않으면 그야말로 낭비가 아닌가!
그러면서도 뇌절을 하지 않는.. 어떤 적정선.. 이념과 같은 것에 너무 힘을 써서 읽는 이로 하여금 혼란을 느끼지 않게 하기도 하고.
괴테의 제자 답다.
에커만은 이탈리아에서 보았던 연극을 묘사하는데, 과연 괴테와 함께 연극을 관람하며 쌓은 역량이 발휘되는 구나 싶었다.
오케스트라가 가수의 목소리를 묻히지 않도록, 시끄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주를 하면서도, 그 밸런스를 훌륭하게 유지하기 때문에 무대가 훌륭하니
작금의 독일 오케스트라와는 다르다고 했다. 작곡가의 탓도 있었지만 모차르트와 같은 거장들은 이러한 요소까지 고려하기 때문에 거장의 음악에서는 그러한 단점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괴테가 어린시절 모차르트와 만난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에커만은 새삼 괴테가 나이깨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또한 연극에서 밤의 무대가 펼쳐질 때에는, 독일에서는 정말로 밤을 만들어버려 배우도, 무대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실제의 밤이 아닌, 일종의 상징적 밤을 표현하기 때문에, 밤을 묘사하면서도 배우의 표정, 연기, 무대가 온전히 보인다며 분석했다. 훌륭한 연극임에도 멋들어진 장면이 아니면 집중하지 못하는 이탈리아 관객들의 모습을 묘사하면서도, 외국의 관람객이 이 때문에 연극을 잘 관람하지 못한다면 실망하겠지만, 어찌 그들 사이에서 즐겁지 않을 수가 있을까 라며 이탈리의 사람들의 쾌활함을 칭찬했다.
그리고 이런 저런 경험들을 하면서 무언가 깨달았는지, 이탈리아에서 느낀 현실의 풍부함을 묘사하며, 괴테와 나눴던 편지와 대화의 원고,
즉 괴테와의 대화 원고를 완성하길 원한다며, 장문의 편지로 자신의 확고한 결심을 알린다.
괴테는 짧은 조언을 건네며 흔쾌히 허락해주는데, 역시 타고난 인싸답게 부딪힘을 완곡히 해결한다.
괴테의 이런 인싸력은 예술관에서도 드러나는데, 그는 작품을 지을 때 막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막히기도 했지만은, 억지로 일을 진행시키기 보다,
충분한 관찰을 하고, 어떤 착상이 떠오르고 충분히 생각을 하다가, 이런 저런 일이 해결되고 나면 그제서야 며칠 사이 금새 두꺼운 원고를 내놓는 식으로 기계적인 작업방식을 극혐하고, 자연스러운 기분이 들게끔 미완성 원고 사이에 백지를 끼어넣어 비어있는 중간부분을 쓰고 싶어지도록 감상적인 장치 또한 유용하게 써먹었다.
그리고 불가해한 일에 대해서는 애쓰지 말고 해소 가능한 일에 힘쓰라 했다. 그래서 칸트를 높이 평했지.
또, 언제나 관찰이 우선시 되고, 이를 충실히 묘사하되 절대로 사실 그대로 쓰지 않고 일정한 형식을 갖추었다.
그래서 괴테는 자신의 소설 '친화력'에 대해 여기에는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것은 단 한 줄도 쓰여있지 않지만, 자신이 체험한 것을 단 한줄도 그대로 쓰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어렴풋이 짐작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들에게 인간의 형상을 부여하고, 낮은 곳으로 끌어내려 이해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화를 얻게 되었다고 하고, 파우스트도 이런 식으로 쓰여진 작품이라 평했다.
작품의 밸런스를 위해서는 모티프를 활용하는게 좋다고 했는데, 그 모티프가 하나의 틀이자 기준점으로 작동하기 때문인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2부를 써내려가 어느날 책한권 분량의 원고를 내놓았다. 바로 티끌모아 태산이었지.
고대 그리스와 셰익스피어로부터 배운 그의 예술관은 그러한 대원칙 몇가지로 지탱되고 활성화되는 듯 했다.
지금에서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렇다고 괴테의 조언을 진리처럼 따를 필요는 없는 것이
괴테 가 어떤 낡은 파지에 쓰인 구절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말도 그리 어설프진 않군!
그런데 알고보니 그 구절은 자신이 젊은 시절 쓴 내용으로, 20대이든지 60대이든지 각자의 관점에서 맞는 부분이 있기에
나이가 들었다고 무조건 현명한 것은 아니라 말해준다.
그러니 다른 의도를 가지지 말고 순수하게 느끼고 솔직하게 표현하라고 하였을때, 그것을 산맥을 고루 바라보는 60대와는 다른 관점을 쓰게 됨으로
그렇게 써내려간 내용은 그것에 맞는 것으로 오래 남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모든 창조하고 보존하는 것은 여성적인 것으로, 모든 것은 형체없이 어머니 주위를 떠돌아 다니는 어두운 지구 속에서 나와
짧은 시간 생존해있다가 다시 아무것도 없는 그 어머니 곁으로 돌아간다 하였기에, 영원히 남을 것에 욕심 부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
여담이지만, 힘차고 박력있는 것은 남성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 당시 비평가들이 이렇다할 기준도 없이 그저 혼란만 가중시키는 의견을 게시하고 그 의견이 인쇄되어 여기저기로 퍼지기 때문에
어떤 위대한 예술가가 옳은 길을 제시하여도 그 이상한 의견들이 사람들의 생각을 나무 뿌리처럼 휘어감는 다고 하였다. 마치 2020년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위대한 재능과 선의를 가진 사람은 자신을 지킬 수 있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200년의 시간을 넘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들을 통찰했던 괴테와의 대화를 읽자
오늘까지 달린 거리
1530p / 42195p (약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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