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은 러시아에 많은 변화를 주었고, 세계 역사도 많이 바꾸었다.
물론 이 이야기에선 그것이 바꾼 문학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러시아 제국 자체야 시궁창이었으므로 어떤 식으로든 개혁 자체는 당대 지식인들이라면 원했지만,
모두가 소련을 원하진 않았다.
애초에 볼쉐비키는 다수파란 이름과 달리, 소수에 불과했고, 소련 성립인 10월 혁명도 말 그대로 무력으로 억지로 이긴 결과였으니까.
이후 적백내전 등이 일어나며 러시아는 한동안 개판이 되고, 적지 않은 이들이 소비에트와 볼쉐비키를 피해 유럽으로 망명을 떠난다.
여기엔 대표적으로 독붕이들이 좋아죽은 나보코프가 있고, 또 오늘 이야기할 러시아의 위대한 광대 작가 테피 또한 마찬가지였다.
'테피'는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본명이 아니라, 필명이고, 1872년 러시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테피는 나데쥬다 로흐비츠카야란 이름을 가졌다.
테피의 가족들은 문학을 좋아했고, 테피 또한 어릴 적부터 톨스토이를 즐겨 읽으며, 직접 톨스토이에게도 어린 나이에 방문했던 걸 회고할 정도로 문학을 사랑했다.
당장, 테피의 언니였던 미라 로흐비츠카야 또한 당대 저명한 시인이었고, 요절했지만, 러시아의 사포로 불리며 러시아 상징주의와 은의 시대를 이끈 시인이었다.
이런 집안의 영향 아래, 테피는 어릴 적부터 글을 썼고, 끝내 '테피'란 필명을 탄생시킨다.
테피는 대체 무엇일까?
그녀의 회고에 따르면, 많은 여성들이 남자 이름을 필명으로 당대 썼지만, 그런 건 싫고, 그렇다고 고리키나 아흐마토바처럼 무언가 숭고한 의미를 담은 필명을 쓰기도 싫었다고 한다.
그녀가 택한 것은 어린 시절 알던 한 광대였다.
스테판이란 흔한 러시아 이름을 가졌던 그 광대는 주변 사람들에게 '스테피'란 애칭으로 불렸고, 여기에서 테피는 '테피'란 광대의 이름을 필명으로 삼게 된다.
테피란 이름이 처음 쓰인 것은 그녀의 회고가 맞다면, 짧은 단막극에서였고, 불안과 달리, 그 단막극은 많은 웃음을 주며 적절히 성공했고,
테피의 이름은 당시 러시아에 꽤나 널리 알려지게 된다.
테피는 다양한 글을 발표했다. 정치적인 산문에서부터 시나, 앞서 말한 단막극까지. 장편도 하나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독자들은 무엇보다도 테피의 단편들을 좋아하고 열광했다.
여자 체호프, 혹은 고골의 후계 등등의 평에서 알 수 있듯,
테피는 유머스럽고 대충 따뜻한 단편들로 당시 러시아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물론 이런 가운데, 당장 그녀의 언니였던 미라가 러시아 상징주의자들과 함께 활동했듯, 러시아 후기상징주의자들과 어울리며 그러한 영향 아래 글을 써내려갔지만.
그녀의 독자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가난한 학생들에서부터 심지어, 그녀의 가장 유명한 독자는---
"차르, 로마노프 왕가 300주년 기념으로 출간할 러시아 문학 선집에 어떤 작가들을 넣을까요?"
"JUST 테피."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는 테피의 열렬한 팬 중 하나였다.
기념 선집에 수록할 작가로 오직 테피뿐이라고 답했을 정도로.
그러나 차르 뿐만이 아니었다.
"테피 다이스키!!"
1905년에 잠깐 새로 창간된 신문 일로 레닌과 일한 적도 있었는데, 레닌 또한 테피의 글들을 아주 좋아했다.
이반 부닌이나 불가코프, 조셴코 같은 러시아 작가들도 그녀의 팬이었다.
심지어 러시아 혁명 이후 망명자로서 소비에트를 떠났지만,
그녀의 파리 등지의 러시아 망명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한 글이 소비에트 내로 실시간 불법번역되어 유통되기도 하였을 정도로
온 러시아가 그녀에게 열광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와 손을 잡고..... 소련을 죽인다"
물론 망명 이후 그녀는 같이 망명을 온 여러 러시아 지인과 작가 동료들과 계속 교류하며, 글을 썼다.
말년에 이상한 쪽으로 흐콰하여 무솔리니와 히틀러와 협조한 러시아 상징주의의 아버지 메레시콥스키 등과도 교류는 했고, 이에 대한 회고를 남기기도 한다.
물론 너무 유명해진 것이 그녀에겐 안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체호프'나 '고골'이 당순히 웃긴 작가가 아니듯, 테피 또한 단순히 웃긴 이야기만 쓰는 작가는 아니었다.
결혼생활의 불화나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을 잃고, 격동의 러시아에서 모든 걸 목격한 만큼, 그녀의 삶에도 어두운 면은 많았고,
애매하듯 씁쓸한 이야기도 많았다.
그러나 정작 당대엔 그런 이야기에서조차 테피=유머 작가란 편견 아래 사람들은 유머만 찾았고,
이런 점 때문에 전쟁에서 자식을 잃는 비극을 써도, 그러한 자들을 희화화한다는 이상한 비난을 받는 등 고생을 한다.
아무리 소비에트 내에서 불펌이 되어도,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에트를 떠난 망명 작가는 잊혀질 수밖에 없었다.
2차 대전이 일어나는 와중 타지에 머무는 러시아 망명 작가 또한 유럽에선 점점 잊혀질 수밖에 없었다.
1952년 테피는 파리에서 길고 긴 여정을 마감했고, 많은 20세기 러시아 작가들이 그러듯, 오늘날에 와서 다시 재발굴되며 전기나 번역이 비교적 활발히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여러 이야기들 뿐만 아니라, 망명생활을 담은 회고록이나 러시아에서 겪은 여러 인물들, 톨스토이나 라스푸틴과의 만남 등의 회고 등이 높게 평가받으며 러시아 광대의 재발굴에 앞장서고 있다.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 만델스탐의 노래
- 악어들의 거리
- 독일인이 오리라
-머피를 기다리며 (1)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서 (2) 계승하는 중입니다 (3) 계속한다, 계속할 수 없다, 계속해야만 한다
-저주받은 상징주의자들 (0) 저주받은 시인들 (1) 세계는 한 권의 책을 위해
-스탈린 동무 살려주시게! 내가 번역도 해주지 않았던가?
모더니스트의 선조들
번역해줬으면 좋겠다
약간 사키 생각나네
아직 국어 번역본은 없겠지
올
이런 좋은 글 써줘서 항상 감사합니다! 그런데 인명표기 수정해줬으면 하는데. Лохвицкая라서 '로흐비츠카야'라고 해야되요. 로비츠카야가 아니라... 이참에 로씨야어 좀 배워보시는 건 어떨지 조심스레 건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