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아직은 끝이 아니야>
읽고 있는 책: <표백>
2319p, 5.49%
<아직은 끝이 아니야>는 웹진 거울의 2018년 '올스타 북'이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올스타가 아닌데 출판되는 것도 웃기다. 그러므로 <아직은 끝이 아니야>에 대한 내 실망은 정당하다. 아니, 이 정도의 글이 거울을 대표한다는 말인가?
이 책에 수록된 단편의 대다수는 언급하고 싶지 않은 수준의 것이다. 매우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직접 읽어본다면 나에게 동의할 거라고 80% 정도 확신한다. 물론 진흙 속의 진주라고 하듯이 좋은 글도 몇 개 있었다.
먼저 "은방장군". 애정해 마지않는 곽재식 작가의 글로 특유의 예측불허한 - 어감을 조금 바꾸면 뜬금없는 - 결말이 돋보였다. 사이비와 과학을 결합하려고 시도했는데,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는 글이 나왔다. 바로 다음 글인 "인간의 이름으로!"도 좋았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법한 주인공이 매력적이었다.
표제작인 "아직은 끝이 아니야"는 별로였다. 도통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달까? 나름의 세계관을 만들어놓은 다음 그것을 받아들일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기묘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글의 주제가 뭐 정치풍자인지 가짜뉴스 비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결말 부분에 여주인공이 몸에 글자를 새기는 장면은 그로테스크한 감성을 주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전체적인 완성도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냄새". 결말 전까지 좋았다. 죽음 직전에만 맡을 수 있는 "냄새"를 추적하는 병약한 주인공이라는 설정은 진부하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글을 뽑아낼 수 있는 소재였다. 작가는 결말 직전까지 기이하고 우중충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다 말아먹었다. 아니, 갑자기 분위기 크툴루?! 어이가 없어서 짜증이 났다. 크툴루 세계관이었으면 그렇다는 암시라도 주던가, 그냥 갑자기 크툴루가 등장해서 "짜잔! 너 사망"하는 것은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이고 작위적인 전개가 아니었나 싶다. 한마디로 별로였다.
평점은 2점. 이게 한국 장르문학의 현 수준이라면 너무 슬프다. 분명히 좋은 작가가 많이 있을 것이다. 좋은 글도 많이 있을 것이다. 웹진 거울, 솔직히 말해봐요. 이 책에 수록된 단편 그냥 제비뽑기로 뽑은 거죠? 그렇죠?
다음으로 읽은 작품인 <표백>은 내 정신을 정화해 주었다. 어제 <열광금지, 에바로드>를 아주 재미있게 읽은 터라 장강명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표백>에 관심이 가서 바로 빌렸다. 그리고 역시 좋은 작품이었다.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기 전에 뒤쪽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고 깜짝 놀랐다. 아니 <열광금지, 에바로드>와 <표백>이 세계관을 공유한다고? 뭐 '세계관 공유'라기보다는 '장휘영'이라는 인물을 매개로 느슨한 끈 정도의 연결을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로도 <표백>에 대한 나의 기대는 50배 정도 불어났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 지 30분이 되지도 않아서 나는 이 책이 '작품'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작품'의 기준은 재미와 의미의 조화이다. 하루키는 재미 80%에 의미 20%, 카뮈는 재미 20%에 의미 80%라면 장강명은 재미 50%에 의미 50%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무거운 의미가 담겨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마치 WD40을 뿌린 것처럼 재미를 곳곳에 배치해 소설이 매끄럽게 굴러가게 한다. 아주 대단한 재능이다.
이 작품에 미리 평점을 매기자면 5점 정도가 될 것 같다. 이미 '작품'임은 증명되었고, 남은 것은 6점을 받아 인생 명예의 전당에 오르느냐 마느냐 정도이다. 내일 완독하면 긴 감상을 쓰게 될 것 같다.
그럼 20000!
저어가 온우주 출판사에서 나온 거울 작가들 단편집이랑 거울에서 매년 내는 중단편선 많이 가지고 있는데 곽재식처럼 pc통신 감성 살리는 경우도 잘 없고 걍 아마추어 순문 느낌 나는 것만 많음ㅇㅇ
온우주 소식지라고 거울 작가들 단편 만화화해서 싣거나 인터뷰 넣은 것도 있는데, 온우주 사장이 작가들 원고료 줄 돈도 없어서 좀 뒤가 안 좋게 끝났음...
... 씁쓸하네 ㅋㅋ 뭐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언젠가는 분명 좋은 글이 우후죽순 쏟아질 거라고 생각함.
그래도 김현중 '묘생만경' 만화판은 원사운드가 그려서 그런가 인터넷에서 꽤 유명하니까 궁금하면 함 찾아보셈
오 되게 좋네. '마음의 지배자'에 수록된 단편이 원작이라고 하는데 꼭 읽어봐야겠다
열심히 읽넹